망한 공원에서 만나 도넛문고 13
오미경 지음 / 다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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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은 아직 어스름했다.”


짧고도 고요한 첫 문장은 마치 이 이야기의 전체 분위기를 암시하듯, 

절망의 바닥에서 깃드는 미약한 빛처럼 다가왔다.



주인공 수하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모든 걸 잃고, 

‘세모방’이라 불리는 낡은 4층 빌라의 꼭대기 층으로 이사한다. 

친구들 사이의 미묘함 속 이별, 가족 내 소외감, 경제적 어려움까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숨이 턱턱 막히는 현실 속에서 

수하에게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준 공간은 동네 끝 '망 공원'이었다.



하지만 이 ‘망한 공원’은 이름과 달리 무언가를 키워내는 곳이었다.

매일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이온,

축구공 하나에 인생을 거는 민들레, 

침묵을 품은 노숙자,

다정한 정희 씨와 공주, 

무언가를 잃었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여는 이들이 그곳에 있었다. 



모두가 뭔가를 망가뜨린 채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조차 희망의 조각을 꺼내놓을 줄 아는 존재들이다.




이온이는 “가끔은 세상이 나를 위해 마법을 걸기도 해”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이 이야기는 마법이 깃드는 방식이 결코 거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때, 그 작고 단단한 끈이 삶을 조금 더 견디게 한다는 걸 말이다.




책은 일곱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지만, 

그 각각이 하나의 세계처럼 긴밀하게 얽히고 연결되어 있다.

버려질 챕터는 하나도 없고, 의미 없이 지나가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구조적으로도 정교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수하가 친구를 외면하고, 

결국 소중했던 관계를 잃고 죄책감에 무너지는 장면은, 

어쩌면 우리 아이들 대부분이 겪었거나 겪게 될 내면의 질문이다. 

그 선택 앞에서 망설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른인 나조차 쉽지 않은 문제다.

이 책은 그래서 아이들만을 위한 소설이 아니다.



어쩌다 중요한 것을 놓친 적 있는 모든 어른에게도, 

관계의 끈이 툭 끊어져본 적 있는 이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다.


p.28

공원은 매일 밤 알을 품었다.

그리고 새벽에 그 안에서 생명이 깨어났다.

능수벚나무 아래 나무 그루터기,

새의 깃털을 단 소나무,

고양이 모모랑 다른 고양이들,

어쩌면 노숙자랑 후드 티 아이도

공원에서 부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수하는 날마다 궁금했다.

오늘은 알에서 무엇이 깨어날지.

 

 

이온, 정희씨, 공주, 민들레, 희수 등

모든 이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하실래요?


📚 도서출판 다른의 협찬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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