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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평점 :
#도서제공 #서평단
조선총독부에서 개최한 어린이 글짓기 대회 수상작을 모은 《제국의 어린이》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일제강점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불의에 맞선 독립운동가나 일본에 의해 고통받는 선조들의 모습 대신, 학교 수업에 참여하거나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심부름하는 등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범함 속 여백은 오히려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저자는 글 속 여백의 상황과 맥락을 해설하면서 조선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의 글을 구분하지 않고 실었다. 이를 통해 가난과 유복함, 전쟁과 아버지에 대한 인식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다.
또한 조선 아이들의 글에서 묘하게 이질적인 표현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패거리에게 맞고도 학급 청소를 하는 친구를 보며 “그렇게 맞아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곧은 마음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라고 표현한다든가, “나도 빨리 센닌바리를 하고 싶다. 내가 꿰매어 드리면 병사님들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혹은 “이제부터 어머니와 저는 항상 국어(일본어)로 대화하기로 하였습니다.” 등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임에도 어쩐지 섬뜩하고 불편한 인상을 받았다.
🔖총독상 모범 문집 속의 착하고 모범적인 얼굴, 그 만들어진 얼굴(혹은 가면)은 종주국인 일본인 어린이들보다 식민지인 조선인 어린이들에게 더 두텁게 씌워져 있었다. 이런 얼굴 – 가면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씌워진 것일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경각심을 느낀 부분은 편집 가능성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의도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된 글은 자칫 ‘조선인은 미개하며,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해 상냥한 일본인이 이끌어줘야 한다. 그리고 조선인은 이를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로 결론 낼 위험이 크게 느껴졌다. 더욱이 아이들의 글은 맥락과 구조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피지배계층으로서 일반 시민으로 편입되기 위해 스스로 검열하며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쉽게 이용될 수 있었다.
이 책 속 아이들의 글에는 순수한 일상이 담겨 있지만, 동시에 권력이 씌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여전히 입맛대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상황에서 만약 과거의 일이라고 역사를 잊거나 등한시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광복 80주년을 맞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된다.
#제국의아이들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