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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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원고료지원
#이키다서평단

이 소설은 “한쪽은 사라져야 한다”는 시의 마지막 문장에서 시작된다.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는, 이어지지 못하고 끝내 평행선만을 걸어가는 여성과 남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읽다 보면 환경에 맞춰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일자리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는 섬뜩함이 느껴지는데, 정말 이 책의 제목대로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버린 걸까.


🙎‍♂️ 아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방식이 그래. 그냥 아일랜드의 관습이야. 보통 아무 의미도 없어.

🙎‍♀️ 우리한테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믿든, 설거지를 돕지 말아야 한다고 믿든, 결국 파보면 다 같은 뿌리야.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날 저녁의 기억이 별로 없었다. 나중에 설거지를 도와줄 필요가 없어서 기뻤다는 것 밖에.


각 단편 속에서 여성들을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는 꽤 뚜렷하게 구분된다. 정성스러운 요리와 아침에 같이 눈뜨는 것 외에 어떠한 불편함도 감수할 수 없는 남자1. 당연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으레 그렇듯이 얕잡아 보는 남자2. 보호해야 할 꽃처럼 바라보는 남자3.

이중에 꽃으로 보는 건 그래도 괜찮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셋 다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다. 게다가 꽃을 아끼고 보호하다 수틀리면 꺾을 수도 있는 거고.. 특히 마지막 편은 하 💨

클레어 키건은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온 기형적 권력 구조와 그 속에서 자라난 비틀어진 인식이, 인간관계에 어떤 이물질과 균열로 이어지는지를 그려냈다. 특히 클레어 키건 특유의 생략과 여백의 미가 이번에도 돋보였는데,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어? 이게 큰 문제가 돼?’라거나 ‘아 무슨 마음인지 완전 잘 알겠어’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소설 밖에서 이 감상의 간극 또한 평행을 이룰 때, 이 책의 제목대로 정말 너무 늦어버린 걸지도.

한 번 보고, 두 번 읽고, 회독을 달리할 때마다 못 보고 지나쳤던 여백의 진가가 드러나는 클레어 키건의 신작 소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너무늦은시간 #클레어키건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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