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은 아름답다

-‘나는 아름답다’를 읽고-

 

 ‘나는 아름답다’의 주인공 선우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사는 고등학생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괴롭다. 거기다 소통이 되지 않는 친구들과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에 둘러싸여 학교생활이 너무나 힘겹다. 나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부산에서 살던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제주도로 가족이 흩어져 이주를 했다. 고2인 작은 오빠와 심장병으로 휴학을 해 대입을 앞둔 큰오빠와는 헤어져야 했다. 부모님은 생활고에 바빴고 나는 심한 외로움에 몸살을 앓았다.

 선우가 시인을 꿈꾸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으로 개똥철학자라 불린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며 이해 못해 소외시키는 친구들이다. 중학교 시절 방송부활동도 하면서 나를 인정해주시는 여러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던 학교를 떠나야 했던 나였다. 낯선 제주도에 버려져 있는 듯한 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책을 읽거나 항상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캐릭터를 그리며 학교생활이 겉돌았던 나와 선우가 닮아있다. 문학소녀라고 불리는 나도 지독하게 혼자였다.

 선우를 ‘개철’이라 이름 짓는 반친구들 중에서 그나마 준수라는 친구가 있다. 이혼을 한 아버지와 함께 살아서인지 엄마 잃은 선우와 함께한다. 나도 여고시절 친구가 많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끼리끼리 노는 친구들 그룹에 끼지 못하고 문학책에 빠져 책읽기에서 내 마음을 달래고 기대었다. 우리 집은 가게를 했기에 나도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언제나 학교와 가게, 집을 오고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시험 때가 되면 가게에서 놓여나 집에서 조금이나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재미있는 소설책에 빠졌던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했는지 안다.

 선우의 인생은 어머니를 닮은 미술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더욱 힘겨워진다. 미술선생님은 선우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선생님과 제자를 뛰어넘을 수 없다. 하숙집 딸인 홍미는 선우를 모함해 담임선생님은 선우를 더욱 불량아로 내몬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선우를 향한 홍미의 집착이다. 그런 홍미와 홍미의 단짝 친구인 글을 쓰는 소현이를 함께 만나는 선우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대입을 앞두고 동네 독서실을 다녔다. 거기서 만난 한 남학생을 짝사랑했다. 홍미처럼 대담하게 다가가지 못했다. 어느날 그가 이야기 하자고 했다. 나를 좋아한다는 남학생의 친구로서 친구의 얘기를 하며 한번 만나 주라고 부탁했던 그였다.

 ‘난 니가 좋아, 넌 내가 어떻니?’라고 묻고 싶었던 나였다.

 그저 먼발치에서 마음을 앓던 나는 용기를 내서 독서실 옥상에서 만났다.

 “난 네 친구랑 사귈 생각이 없어. 그렇게 말했는데 너도 알지? 난 니가 좋아. 대입시험 끝나고 연락 해줄래?”

 정말 용기를 냈지만 그는 거절을 해왔다. 친한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그의 단호한 어투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미묘한 감정의 엇갈림을 선우도 비슷하게 느꼈을까.

 나는 가게를 하는 집안 형편에 매우 속상한 적이 많았다. 방과 후 친구들과 놀러갈 기회도 갖지 못했고 여가활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오빠들은 가게를 보지 않고 자유시간이 많은 편이어서 더욱 어머니를 원망했었다.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을 했지만 영향이 있었다.

 선우는 떠나보낸다. 어머니와 수현이다. 미술선생님도 결혼한다고 가고 홍미도 준수를 만난다. 여전히 외톨이로 지내야 할 선우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학교를 자퇴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려는 날개를 펼친다. 한정된 공간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도약에서 어떤 깨달음이 느껴진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그러진 세상을 박차고 진짜 세상을 껴안는 선우의 몸짓이 아름답게 비춰진다. 

 문학이 좋아서 학과를 선택했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졸업을 하고나서 내가 원하는 다른 계열로 편입을 위해 2년여를 노력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영어학원을 갔다. 회사에 출근해 일했고 퇴근 후엔 편입학원에서 밤늦게까지 노력했다. 나의 열정을 불태웠던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길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선우처럼 과감하게 학교를 그만두지는 않았지만 무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시간은 흘렀고 원하던 학과로 진학하진 못했다. 아직도 나에게는 아픔으로 남아 쉽게 말을 못한다. 세상탓, 부모탓, 시간탓, 운탓……. 얼마동안은 편안했지만 여전히 내 가슴에 짐이 된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하지만 한정된 결정 속에 최선이었음을 인정하련다. 누가 뭐라 해도 내 길이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가 종착점이 아니듯 부지런히 내가 걷는 이 길을 사랑한다. 나 자신을 알고 믿으며 최선을 다하는 내가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 2007년 5월 푸르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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