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운 중국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이욱연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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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줄

은 넓고 자원은 풍부하다는 것을 일컬어 지대물박 地大物博이라고 한다. 중국은 땅이 넓고, 모든 것이 있을 정도로 자원도 풍부하다는 옛날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말이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것을 결국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고 말한다. 하늘이나 자연 등에 인간 삶을 궁극적으로 결정한다는 중국인들의 생각을 상징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하늘의 뜻, 즉 천명天命만 기다리라는 뜻은 아니다. 일을 계획하고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 뒤 천명을 기다려야 한다.
 
중국 역사에서 첫 왕조는 하나라, 두 번째 왕조는 상나라인데, 으로 수도를 옮긴 뒤 전성기를 맞아서 은나라라고도 부른다. 특히 물품을 교환하는 중개업이 발달하여, 지금 우리가 물건을 중개하는 사람을 상인商人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유래가 된 나라이기도 하다.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교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상나라 사람이라는 뜻인 상인이라고 불렀고, 이때부터 이 말이 유행해 지금까지 쓰이게 된 것. 상나라를 이은 주나라는 세련된 정치 제도를 갖추고 봉건제와 종법제를 결합하여 새로운 통치 질서를 만들었다. 봉건제에서 은 일정한 땅을 막아서 경계를 가른다는 뜻이고, ‘건建은 세운다는 뜻이므로 봉건제는 땅을 나누어서 각각 나라를 세워 다스리는 제도를 말한다.
 
춘추전국,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글씨체가 다르면 알아보기 힘들어 소통이 힘들었던 한자 글자체를 소전체小篆體로 통일하고, 숫자가 들어가는 것도 6으로 통일한다. 이렇게 진나라는 영토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을 하나로 통일한 일통一統 제국이었다.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글자도, 사상도, 제도도 하나로 통일하는 중국 역사의 전통이 진시황 때 마련된 것이다.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측면도 있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운영하는 방법에서 하나의 원형을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중국을 영어로 China 라고 하는데, 이 명칭도 어원이 진나라를 가리키는 Chin인 것을 보면 진나라는 여러모로 중국의 토대인 셈이다.
 
우리는 중국 글자를 한자漢字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한어漢語라고 부르고, 자기 민족을 한족漢族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이라는 글자는 특정 왕조의 이름을 넘어 중국문화와 중국인들의 뿌리를 상징한다. 진나라가 망한 뒤 세워진 한나라 때 시작되어 지금까지 활용되거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는 유학, 그리고 한의학이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이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다시 재건하고 있는 비단길도 한나라 때 처음 개척한 것이다.

베이징 사람, 상하이 사람, 광저우 사람을 비교한 농담을 하나 소개한다. 어느 날 중국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베이징 사람들은 외계인을 보자마자 지금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단다. 상하이 사람들은 전시회를 열어서 돈 벌 궁리를 한다고 한다. 그럼 광저우 사람들은? 목욕을 시킨 뒤 요리 방법을 생각한다고..
 
흔히 농담처럼 중국 지도자 중에는 부패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바보나 멍청한 사람은 절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이는 정치인이자 행동가로서 대부분 오랜 기간을 두고 행정 및 통치 능력 등 여러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특히 극심한 빈부격차를 보면 더욱 그렇다. 중국이야말로 돈 있는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형편이니 자본주의 나라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자동차 운전에 비유해 이런 농담을 한다고 한다. 중국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나라라고. ‘겉은 붉지만 속은 하얀 나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실은 자본주의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인을 상대해 본 외국인들은 중국인이 가식적이라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도무지 속마음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실 외국인들이 중국인에게 이런 불만을 느낀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중국 근대 초기의 서양 선교사 '스미스 신부는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행동 특성에 주목해, 중국인에게는 연극 본능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치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하고 마땅히 해야 하는 말, 주어진 역할에 맞는 말만을 한다는 것이다. 전심 어린 말보다는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 주고, 나의 체면을 보존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만약 누군가 자기 체면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더없는 모욕이자 수치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수치와 모욕을 겪은 사람은 자신의 잘못 여부와 상관없이 그 경험을 가슴 깊이 새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둘 사이의 인간관계는 끝난 것이다. 그 사람은 상대를 자기 체면을 깎고 모욕을 준 사람으로 평생 기억할 것이다. 개인 차원이든 국가나 민족 차원이든 중국을 상대할 때는 체면을 존중해주는 것이 대화와 교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시작이다. 중국 사람들에게 던지는 한마디가 체면을 중요시하고 자존심 강한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가슴 깊이 상처를 줄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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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독 꿈꾸는돌 15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윤수정 옮김 / 돌베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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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원더가 없었다면, 저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현립 소라자와 고등학교에 star dog 한 마리가 떴다. 이름하여 wonder dog!


상자에 버려진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입학식장에 들어선 고1 신입생 고마치 겐타로는 강아지를 돌봐줄 방편으로,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던 '반더포겔' 이라는 동아리에 가입한다. 그리고는 반더포겔 선배들의 도움에 힘입어 반겔 정신, 즉 '스스로 결정하고, 양심에 기초해 스스로 책임지고 행동하며, 새로운 인생을 이룬다'는 항목을 '자주, 자각, 자립'이라는 교훈에 걸맞는 내용이라며 학교장과 교감을 설득하기에 이르는데...


강아지의 이름은 동아리의 이름을 따서 원더(반더포겔의 '반더'와 '놀라움'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wonder를 일본에서는 모두 '원더'로 발음된다)가 되었고, 반더포겔 부원 모두 쉬는 날에도 원더를 돌봐주기 위해 등교하는 등 양심에 기초해 스스로 책임지고 행동하는 생활을 익혀나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교실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모두가 나란히 서서 같은 일을 하는 데 서투른 학생은 학교라는 폐쇄된 사회에 가둬 놓아서는 안 된다.는 반더포겔 지도교사 다이치의 교육관이 부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 학생들 스스로 원더를 돌보며 자신들이 열중할 수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부원들이 원더로 인해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순간에도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팽개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더포겔 부원들이 원더를 키우고 가르치는 것 같지만, 원더 덕분에 부원들이 배우는 것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원더 돌보기'라는 목표를 가지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부원들은 다른 데서 맛볼 수 없는 만족감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만족감이 있었기에 미래에도 계속 무언가를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반더포겔은 독일어로 철새를 의미한다. 철새처럼 들과 산을 걸으며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반더포겔 정신은 소라자와 고등학교의 양호교사인 기시다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교사의 역할에 대한 다음의 이야기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요한 건 수업같은 게 아니야. 뭐라고 해야 하나.좀 더 전체적인, 사람됨이나 행동거지나, 그런 게 중요한 거야."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이런 일을 생각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우리들에게도 원더가 있었으면 좋겠다. 원더와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가야 할 곳에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전망 좋은 산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어느 덧 목표인 산 정상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고, 산꼭대기에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았을 때의 상쾌함도 맛볼 수 있겠지.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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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 Friends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히스이 고타로 지음, 금정연 옮김, 단바 아키야 사진 / 안테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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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이름이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겨 읽어볼 수밖에 없었던 책이랍니다!

 

 

이 책의 저자인 금정연 작가의 번역서니까요~

내가 참으로 부러워하는 직종이 리뷰어, 즉 서평가인데

그 중에서도 알라딘에서 일하던 분들을 특히 좋아한다는... ㅋㅋㅋ

완전 개인의 취향인 거져...

 

 

<Hug, friends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의 표지를 잘 살펴보면 하단에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라고 적힌 글귀가 보이죠?

그리고 커다란 북극곰 한 마리가 귀여운 허스키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셔요.

책 내용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이 사진 한 장으로 리뷰 만사형통 ..! ㅎ

 

 

 

 

사진 작가인 단바 아키야는 홋카이도 쿠시로시 출신으로 주로 북극곰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5학년 여름방학때 동물원에서 사육사를 돕는 방학숙제 덕분에 북극곰을 처음 만나고는 “ 북극으로 가야겠다고, 가서 꼭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다짐대로 1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북극곰을 만나고 있으며, 북극곰에 대한 사랑의 징표가 바로 이  작은 사진집!

이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던 행운이 찾아 온 것 부터가 기적의 시작이라고 봐도 좋을 듯~

 

 

당신이 누구건 얼마나 외롭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나.

보기 전까진 상상도 못했던 경이로운 풍경처럼 꿈꾸던 그 이상의 기적이 당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 올 거야.

기적은 반드시 일어나. 반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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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서른 살
멜리사 뱅크 지음, 심혜경 옮김 / 예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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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웃의 리뷰, 간직하고 싶어 옮겨왔어요~ 

그리고 대신 알라딘에 올려봅니다!


인생은 한번 뿐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한번 뿐인 삶에 한번뿐인 사랑은 없다.

내가 여고생 시절 좋아하던 윤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사랑은 변하지 않아 단지 사랑하는 상대가 변할 뿐이야.'라고.

내가 느끼기에 정말 자유로운 여성이였던 그 윤리 선생님의 말씀은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참 사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사랑'이라는것 자체는 변하지 않는거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계속 변할뿐.

그게 어릴땐 부모님이 였다가, 동네 남자 꼬마였다가, 멋있는 학교 선배였다가, 직장 동료였다가 기타등등 기타등등...

 

서툰 서른 살의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삶에 있어 사랑에 있어 서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보기에 정말 괜찮은 여자이며, 성숙해 보였던 오빠의 여자 친구도.

그녀의 첫 남자 제이미도,

자신의 나이만큼이나 연상이였던 매력남 아치도,

찌릿~ 아! 이남자야 싶은 로버트도

모두 어딘가 조금은 서툰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그래서 정말 정말 너무 매력 적인 그들.

그들의 연애담을 따라가다 보면 아 맞아!! 싶은 순간이, 큭큭 둘의 밀당에 웃음날때가, 아.. 나도 사랑 하고싶다 하는 순간이

자꾸만 찾아온다.

아 정말 나에게도 보니와 페이스가 필요하다!!

나에게도 사랑의 조력자가 필요하단 말이다!!

 

누구와 사랑을 하게 되도, 나이를 하나둘씩 먹어도 삶과 사랑에 있어서는 조금씩 서툴러서 실수 하기도 하고,

내 그 서툼을 누군가가 채워주기도 하면서 살아 가는게 행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나의 서툼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그 서툼을 받아드리고 채워 나가려고 하는 그 노력이 삶에 있어서 사랑에 있어서의 성공이 아닐까.

나는 그녀가 계속 그렇게 서툴게 서툴게 사랑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한 나도.

서툴지만 천천히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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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서른 살
멜리사 뱅크 지음, 심혜경 옮김 / 예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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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이웃 블로거님의  리뷰입인데 허락을 받고 대신 올려드립니다.   멜리사 뱅크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글이라서요.. ^^  
 
 지난 주 내내 감당하기 버거운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책들 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이다 오늘 모처럼 소설을 읽었다. 내 블로그 이웃님이 번역하신 소설이다. 첫 번역 작품이라고 하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번역이라 번역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빠진 문장들이다. 제목은 < 서툰 서른 살>. 굳이 쟝르를 따진다면 90년대 중반무렵 영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2-30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주로 다루는 칙릿 소설 장르에 속한다. 아마 <내 남자는 바람둥이>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인데, 원제는 <The girls' guide to hunting and fishing > 라는, 톡톡 튀는 제목을 갖고 있다. 오랜만에 이야기가 있는 소설을 읽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아, 이런게 소설이지, 하는 생각에 혼자 웃음을 짓고 말았다. 
 

작가는 멜리사 뱅크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 소설은 그녀가 2000년에 발표한 첫 데뷔작인 셈인데, 첫 데뷔작에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행운을 얻었다. 그럴만큼 이 소설이 미국 젊은 여성들의 감수성을 찌릿하게 건드렸다는 얘기이리라. 그래, 미혼 남녀의 가장 큰 관심이 무언가. 노골적으로 말하면 짝짓기요, 고상하게 말하면 사랑의 문제가 아니던가. 학교에선 인생에 관한 건 전혀 배우지 못하니, 대학을 졸업해도 인생 문제에 관해선 그저 왕초보 운전자마냥 서툴기 짝이 없고 좌충우돌하게 마련 아닌가. 일에서나 사랑과 연애에서나, 어느 것 하나 막상 부딪치면 만만한게 없게 마련이고, 그래서 의도와 목표와는 다르게 사태가 제멋대로 꼬여버리게 마련인 것. 
 

도대체,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타인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 것이며, 거기에 골치 아픈 사랑이라는 문제까지  곁들여지면 이런 문제들이란, 내가 요즘 빠져 길을 잃고 있는 <시간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만큼이나 알쏭달쏭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는 문제들 투성이인, 말 그대로 '지뢰밭' 같은 어떤 것이 아닌가. 
  

그럴 땐, 차라리 이 책의 원래 제목처럼, 이성을 '제대로' 사냥하거나 낚을 수 있는 가이드북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소설이, 문학이 그나마 간접적인 인생학교가 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종의 인생 가이드북 역할을 해 줄 '수도 ' 있다는 것 아닌가. 나도 어린시절부터, 아니 대학시절부터라도 열심히 연애소설이라도 읽었더라면 사태가 조금 더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철학책은, 폼만 거창하게 잡을 뿐, 실제 세상살이엔 그닥. 아, 그래, 대학 1학년 때,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발견하곤 아하, 나는 잠시 그 책이 오비디우스가 쓴 <연애론>처럼 작업기술에 관한 책인 줄 알고 읽다간 집어던졌더랬다. 

 

이 소설에, 주인공 제인이 14살 시절이던 때, 막 청년이 된 오빠가 여덟 살 연상이 처자를 여름 별장에 데려왔을 때 주인공에게 한 대목 인용해준 프로이트의 <문명속의 불만> 에 나오는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박장대소했다.  

" 들어봐,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지. '젊은이들에게 섹스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사회로 내보내는 건 극지탐험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여름옷을 입히고 이탈리아의 호수 지도를 챙겨주는 것과 같다."  

백 번 맞는 말이지. 아직 어떤 고도한 문명도 그걸 제대로 가르쳐 주는 문명은 없다. 그래서 주인공 제인도 서른이 되도록 여전히 사랑법을 몸소 겪으면서 배울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선 주인공 제인이 만나는 세 남자가 나온다. 오빠의 사랑 이야기를 포함하면 네가지가 되겠다. 달콤 섹시하지만 철이 덜 든 남자, 스물 여덟 살이나 연상인 중년남이지만 여전히 치명적인 매력도를 가진 남자 - 이 이야기가 <내 남자는 바람둥이>의 이야기다 - 그리고 친구 결혼식장에서 한눈에 반해버린 만화가 남자.      

세번째 남자에 빠진 주인공은 결국 친구가 소개해 준 '끔찍한 책'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법>이란 책을 읽기까지 하면서 이번에야말로 한번 제대로 해보리라 작심한다. 소설은 이 세번째 남자와 어디까지 진도가 나가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어떻든 시작은 순조롭게 되어가는 것 같지만, 이후는 글쎄, 독자들의 상상에 맡길 일이다. 
 

쉽게 읽히는 문장, 간간히 보여주는 재치있는 표현의 미덕도 있지만 이런 소설의 승부수란 결국 이야기 자체의 힘에 있는 법, 이런저런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고, 죽네사네 하다간 이별하고, 그러다간 또 다른 사랑에 빠지고 하면서 우리는 인생과 사랑을 배워가는 것, 젊은 여성 독자들이 이런 재치 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을 느끼고,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는 듯 스스로의 연애방식을 되돌아 볼 수 있으면 이 소설은 충분한 값어치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로선, 기왕에 연애와 사랑을 테마로 다룬다면 주인공 여성의 나름의 비평과 분석도 조금 더 들어갔더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세 가지 이야기 이상으로 더 풍부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어쩌면 작가는 그런 것조차 군더더기로 여겨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데만 주력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 어딘가엔 그야말로 사랑의 대가라고 불릴만한 그런 대가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에 속하는 우리는 사랑법에 관한 한, 늘 서툰 초보나 다름 없다. 도대체 서른 살에도 서툴면, 언제나 숙련된 배관공처럼 숙련된 연인이 된단 말인가? 사랑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늘 움직이는 무엇인지라, 인간만사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의 기술이고, 그 중에서 제일 어려운게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조물주는 왜 이런 문제까지 좀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못했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아니면 차라리 간단하게 생식만 하게 만들어놓던지. 하긴 사랑이 '비의' 에 속하는 신비롭고 까다롭고 어려운게 아니었더라면, 소설을 비롯한 인간의 문화적 삶도 참으로 허허롭기 짝이 없었을 터이다. 다른 독자들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숙련도를 남몰래 측정해보게 되려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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