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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ㅣ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요 몇 달간 내 삶은 정리되지 않은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이리저리 뒤틀려 헤매는 듯한 느낌이었고 작은 흔들림에도 내 맘은 요동쳤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우울증이 걸린 사람처럼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배철현 교수의 전작 ‘심연’을 읽었던 터라 그의 글은 익숙하면서도 반가웠다. 책을 읽기 전에 심연을 다시 꺼내보았지만 생소했다. 그저 읽고 덮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내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책장 속에 갇힌 책 한권으로 남았겠지.
운명론은 아니지만 다시 그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저자의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그는 고전문헌학자이자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는 최초의 문자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공부하였고 인류가 남긴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도 그 일환으로 심연-수련을 이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묵상집으로 특별히 자신의 울림을 듣기 위해 침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목차를 살펴보면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고 세부적인 목차로 장마다 핵심이 되는 키워드로 장을 구성하고 있다. 큰 타이틀 제목을 살펴보면 평정,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시간 – 부동,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 포부, 나에게 건네는 간절한 부탁 – 개벽, 나를 깨우는 고요한 울림 등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챕터가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깊이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 언어학자답게 단어의 어원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내 삶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한 번 읽고 덮을 것이 아니라 매일 머리맡에 두고 조금씩 곱씹고 묵상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밑줄 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어떤 부분을 책갈피에 끼워둘까 하다가 ‘고유’라는 챕터에서 눈길이 갔다.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개성은 마음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자신이 뿌리를 내린 토양에서 자양분을 얻고, 자기만의 모양으로 줄기와 가지를 낸다. 개성은 그 사람에게 ‘고유’하다. 유일하면서도 거룩한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인류가 남긴 고전들은 바로 이 문법을 적어놓은 나침반이다. 고전 작가들은 그 길을 은유라는 장치를 통해 서술한다. 은유는 인간이 가진 언어의 부족함 때문에 생겨났다.”
조금 엉뚱한 생각인데 시중에 나오는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고전을 읽어야 한다며 떠드는 그 이유가 ‘성공’이다. 누구처럼 성공하려면 고전을 읽어라. 아이러니하게도 고전은 성공을 발판이 아니라 자신을 찾게 해주는 나침반이었다. 결국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찾는 것이야 말로 성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세계적인 사업가나 정치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