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우주다 -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이것이 중요한가
디팩 초프라.미나스 카파토스 지음, 조원희 옮김 / 김영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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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팩 초프라의 새 책이 나왔다. 그런데 마이클 셔머가 추천사를 쓰다니. 사이비 과학이라면 치를 떠는 잡지 <스켑틱>의 편집장이 말이다. 예전에 디팩 초프라가 한 과학자와 대담한 책이 있었는데, 거기선 초프라 vs 과학자의 대립 구도였다. 소위 영성 vs 과학같은. 그런데 이 책은 소개글에서부터 과학과 영성의 만남(아인슈타인과 타고르의 만남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이라는 분위기를 풍기더니, 실제 내용도 이전의 디팩 초프라 책들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다. 게다가 그의 전매특허 같던 아유르베다나 신비주의의 냄새도 별로 나지 않는다. 그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공동저자인 미나스 카파토스와의 공동작업이 뭔가 변화를 가져온 모양새다. 한국에도 자주 방문하는 과학자인 것 같은데(유튜브 자료도 꽤 있으며, 무려 노벨상 후보로 추천된 석학), 두 사람의 인터뷰나 대담 형식이 아니라 아홉 가지 이슈에 대해 추리 문제를 해결하듯, 한목소리로 다양한 관점을 들여다보며 명백히 틀린 가설들을 하나씩 제거해 간다. 가능한 가설과 가정을 쭉 늘어놓고, 현재까지 발견된 과학적 사실과 이론에 입각해서 모순되거나 불일치하는 것은 걸러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남은 이론 또는 가설이라면, 앞서 살펴본 다른 것들보다 더 신빙성 있는 게 아니겠는가? 소거법으로 남은, 의식과 우주에 대해 그나마 신빙성 있는 관점이 책 제목으로 이미 스포일러 된 참여우주또는 의식이 있는 우주’, 다시 말해 인간적인 우주.

 

얼핏 보면 신비주의나 일부 종교에서 말하는 물아일체아함 브라마스미다 마음이다하는 말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좀 다르다. 읽어보니 좀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번 읽어서인지 아직 명확하진 않다. 책 자체가 정교하게 쌓아 올린 투명한 구조체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여기선 개인의 특별한 체험으로 뭉개며 논리적 비약을 거쳐 아함 브라마스미!’ 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많은 과학적 정보와 이론, 실험들에 의해 차곡차곡 정리된 어떤 논리적 구조 속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결론에 도달하는 서술 구조다. 아마 종교나 물리학에 정통한 분들이 보면 더 잘 분석해주시겠지... 코로나 끝물인지 요샌 강연회도 많던데, 이런 책은 저자/역자 강연회 같은 행사라도 열면 질의응답이 꽤 시끌시끌할 것 같다.

 

아무튼 양자역학과 우주론, 의식과 관찰자 이슈를 꽤 깊게 다룬다. <시크릿>류의, 부자되고 소원 이루라는 책들이 이름만 빌려 쓰는 그 양자역학과는 정말 차원이 다르다. 파동, 입자, 고양이, 그러고는 갑자기 간절히 소원을 빌면 우주가 들어줄 거야하는 얄팍한 상술 냄새가 나는 양자역학이 아니라, 읽다가 몇 번이나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이런 내용이 다 있었어?’하는 그런 수준의 양자역학이다. 아인슈타인 시대 때부터 최근까지, 양자물리학과 우주론에서 다루는 중요한 개념들이 거의 다 나오는 것 같다. 정말 물리학자가 썼다는 티가 팍팍 난다. 초끈이론에 멀티버스(다중우주)는 물론이고, 식물의 광합성에 그런 신비한 원리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예전 디팩 초프라 책을 생각하며 가볍게 주문했다가 갑자기 교양과학의 세례를 받은 셈이다.

 

그래서 좀 어렵긴 하지만, 선의 일화나 신비주의에서 다룰 법한 의식의 문제를 과학 이론과 실험으로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두껍지도 않은 책에, 굉장한 밀도의 정보가 담겨 있다. 모르긴 몰라도, 디팩 초프라의 이름으로 나온 책들 중 가장 밀도 높고 빡신 책이 아닐까 싶다. 읽다가 보면 되게 두껍고 현란한 과학책을 보는 느낌인데, 고개를 들면 그냥 작은 책 한 권이 까꿍? 하며 달랑 있다. 아니 이 작은 책에 이런 내용이 골고루 담겼다고? 말이 어려운 게 아니라, 새로운 개념, 관점들이 자꾸 등장해서 소위 현실이나 의식에 대한 시각을 자꾸 돌아보게 만든다.

 

시각하니까 말인데, 책 초반에 우리가 본다라는 경험이 얼마나 이상하고 신비로운 것인지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미리보기에도 나와 있는데, 이 책에서는 보기듣기처럼 우리가 늘 경험하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 현상조차 실은 얼마나 이상하고 놀라운 일인지 되새김하게 해준다. 불교의 이근원통 수행법도 떠오르고, 요즘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챗GPT 등 인공지능 분야에서 스스로를 의식적 개체로 자각하는 이슈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보는 자, 듣는 자를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에서 선불교와도 통하는 뭔가가 있다.

 

양자역학이라면 원자보다 더 작은 아원자 상태에서나 발생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미시세계가 아닌 우리 현실, 거시세계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니, 알고 보니 스마트폰이며 인터넷이며 다 양자역학의 확률과 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관찰자의 개입은 스마트폰의 작동 따위를 가볍게 넘어선다.

 

관찰자 문제(보는 자)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다룬 책은 일반적인 양자물리학 책은 물론 불교나 종교 책에서도 거의 못 본 것 같다. ‘이 뭣고?’ 하며 불교 공부하시는 분들, ‘난 야르하며 자아탐구하는 분들이 보더라도 자극이 되지 않을까? 특별한 체험도 좋지만, 개인적 체험이 그를 둘러싼 사회 속에서 실제로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블교의 보살이나 연기를 언급하지 않지만, 과학적 의심의 끝에서 이와 비슷한 뭔가를 결국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도 신선했다.

PS. 결국 나와 현실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내용인데, 그래서 관계란 문구가 초반에 반복되었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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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드™ 2023-05-19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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