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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사상사의 굴절
이택후 지음, 김형종 옮김 / 지식산업사 / 1992년 8월
평점 :
절판
90년대 동구권의 몰락으로 세계는 중국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공산주의 국가. 아니, 실제로 정확한 공산주의라는 것은 존재한 적이 없다고 하니 사회주의 국가인가? 어쨌든 말이다. 하지만 20세기가 지나고 새로운 밀레니엄이라는 시대에 중국의 공산주의는 변질됐다. 자본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여 시장을 개방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듯 했지만 중국은 자본주의에 먹힌 느낌이다.
자본은 이제 새로운 시장으로서 중국을 노리고 있고 중국 기업 역시 이윤을 늘리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 역시 부르주아 계급의 공산당 입당을 허락한다고 한다. 1920년대의 중국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공산당에 입당하고 그들에게는 각자 목적이 있다. 자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고,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 방식만이 존재했던 것 같으며,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중국의 개방을 본 사람들은 맑시즘이 이제 종언을 고했다고 말한다.
독일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은 왜 망한 것일까? 흔히 말하듯이 사회주의 당의 경직성 때문에? 맑시즘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혁명의 수단으로만 이용한 레닌이나 스탈린 때문에? 그도 아니면, 좌파 쪽에서 말하듯이 미국을 비롯한 거대자본에 의해 살 길이 막혔기 때문일까? 다들 자신의 입장에서 이유는 한가지씩 대고 있다. 중국은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이택후는 중국의 맑시즘의 경직성을 가장 큰 이유로 들면서도 맑시즘을 포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문화혁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단순히 문화혁명의 폐해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으며 새로운 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중국은 그 구망에의 열망과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맑시즘의 혁명적, 실천적 성격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것을 우리는 맑시즘의 중국화라고 불렀다. 이택후는 이 시점에서 이론적 기초를 튼튼히 해야할 것을 강조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공산당이나 사회당 등 집권세력의 경직성과 위계질서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확실히 맑스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 68년 파리를 강타했던 혁명 역시도 좌파의 관료화와 위계적 권위를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점들은 물론 지적되어야 할 문제이다. 역사 속에서 맑시즘이 고고하게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우뚝 서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이택후와 마찬가지로 맑시즘이 종언을 고했고 맑스의 한계는 이미 진작에 드러났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맑시즘은 아직도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충분히 그 자체로 의의를 가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맑시즘은 혁명의 철학이다. 그리고 혁명의 철학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혁명의 형태는 급작스러운 것이 아닐 것이며, 68 혁명에서 보여지듯이 일상적이고 작은 혁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맑시즘은 그 혁명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혁명은 일시에 일어나서 모든 것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혁명을 유지하여 재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은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울산 영화제에서 <밥, 꽃, 양>의 상영이 실패했다. 울산현대자동차 파업과정에서 식당 아주머니들을 해고하고 협상을 타결했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파쇼적인 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오점을 기록한 영화를 상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노동자들이, 혹은 좌파 진영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자본 뿐만이 아니라,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노조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맑시즘을 어떻게 착취해야 할까? 옛날과는 다른 운동방식으로, 점진적으로, 가능하면 실패하지 않는 방법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구절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의 철학일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건설의 철학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