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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평점 :

새로운 작가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하다. 김인숙 작가는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무척 궁금한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작은 이빨로 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순식간에 날 사로잡았고, 진과 진이 들려주는 이기적이고도 쓸쓸한 사랑앞에서 한 없이 작아짐을 느끼기도 하였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진 고통에 찬 슬픈 이야기들. 『미칠 수 있겠니』라는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미쳐 날뛰는 세상속으로, 그 한복판에서 슬픔을 주체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 삶 또한 돌아보게 되었다.
진과 진은 이름이 같아 더욱 운명적이라 느낀 듯하다. 그 둘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사랑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남편 유진을 위해 마련한 섬으로의 휴가가 그와의 이별을 야기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섬에 다녀온 후 진은 그곳에서 살고싶다는 유진과 함께 할 수 없어 홀로 떠나보내고,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그 낯설음에 몸서리쳐질만큼 예리한 무언가를 느낀 진은 섬으로 떠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둘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그런 이야기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두근 거리는 가슴, 은밀한 떨림과 의심, 그리고, 망설임과 그 망설임을 한꺼번에 압도해버리는, 그 무엇도 확실하다고 할 수 없으나 확실하다고 믿고 싶은, 결정적이라고 믿고 싶은, 그냥 이거, 바로 이거라고 말하고 싶은.... 그 모든 불분명한 감정과 추상어들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났다.' 혹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났다.' p. 145]
섬에서 만난 꽃같은 아이.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고, 죽이리라 마음먹었고, 죽일 것이다.... 진에게 과연 무슨일이 벌어진 것일까. 진과 유진사이에 어떻한 시련이 닥쳐오는 것일까. 급작스레 발생한 지진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정신이 나가 그야말로 미친 세상 속 미친 사람들 뿐이되어버렸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진이 찾고자 한 기억은 어떤 것일까. 평생 기억하고싶지않은 기억을 끄집어내 진에게 얻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를 고통으로 부터, 슬픔으로부터 꺼내줄 수 있을까.
[책 읽는 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김인숙 작가를 만났다. 같은 책을 읽고도 그녀가 하는 말은 유독 공감을 불러왔다. 세상을 즐겁고, 좀 더 따뜻하면서 어찌보면 예리하게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녀의 글이 궁금했고 이런 내 앞에 신작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가 찾아왔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글 속에서 잔잔함을 느꼈고, 대 재앙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들 속에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도 고요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 하고 무너져 버릴 것만같은 진의 모습 속에서 내가 바라보고자 한 것은 어떤 것일까, 그녀에게서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진을 따라가는 내내 나도 무언가로부터 슬픔을 이겨낼 돌파구를 살짝 엿본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고마운 책을 만난 기분이란 이런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