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점심
엘리자베스 바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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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으흠~ 첫 점식식사에 잠자리를 가졌다고? 와우~!^^ 다소 놀라운 문장으로 첫 이야기의 물꼬를 튼 『파리에서의 점심』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맛있는 이야기로 흡족함을 안겨주었다. 미국 뉴욕커인 아가씨가 프랑스인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의 알콩달콩하다 못해 달달함의 행복을 보여주는 '몰튼 초콜릿 케이크'(책 속 레시피 중 한가지) 맛을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겪어가는 사소한 오해들이나 새로운 발견도 책 읽는 즐거움을 한층 끌어올린다.
 

[그웬달은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도. 하지만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이 남자와 - 넥타이 하나 없고, 화장실이 냉골인 집에 살며, 코카콜라 주식회사의 원칙에 반대하는 남자와 - 평생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파리도 있었다. 아름답지만 선뜻 곁을 내어주지 않는 도시. 나풀거리는 주름 장식과 그윽한 향기로 상대를 실컷 유혹하고는 작별의 키스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는 소녀와도 같은 도시다.   p.142]
사랑하는 청춘남녀의 연애 이야기와, 글로 읽어도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며, 파리 하면 떠오르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느낌까지 더해지니 완벽한 삼박자가 만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탄생되었다. 익숙한 곳을 떠나 산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결심일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다해도 모든것이 낯설고 새로운 것들 투성이인 곳에서는 즐거움 속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이 공존할텐데.... 엘리자베스는 새로운 꿈과 사랑하는 그웬달과 함께하기위해 짐을싸고 그의 작은 보금자리에 둥지를 튼다.
 

상상만으로도 입속에서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같은 빵으로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고(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사러 나갈만큼 매혹적인 맛이 분명 할것이다!) 옛정취가 물씬풍기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거리를 걸으며 산책을 즐기고, 신선한 채소와(프랑켄슈타인 뇌를 닮은 뿌리채소를 꼭 보고싶다.^^) 매끈한 몸통을 자랑하는 고등어와 눈 맞출 영광(?)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이 있는 곳. 엘리자베스의 이러한 삶들이 한없이 부럽고 프랑켄슈타인 뇌를 닮은 뿌리채소를 넣어 만든 '으깬 감자와 샐러리 뿌리 요리'도 꼭 맛보고싶어졌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내가 파리에 정착한 이후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단 1킬로그램도 찌지 않은 주요 원인이리라. 프랑스 요리 1인분은 미국 요리 1인분의 반 정도밖에 안되지만 먹는 시간은 두 배가 걸린다. 결과는 다들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p.217]
프랑스 여자들은 정말 모두 날씬할까? 책 속에 소개된 여러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평균적인 미국인 몸매를 거인처럼 느끼며 비키니입기를 두려워한 대목에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양껏 먹으면서도 평생 살 찔 걱정없이 산다는건 어떤 행복일까?^^ 어느 CF 속 대사처럼 "비키니 몸매, 문제없어!" 라며 당당시 외칠 날이 오길 바라본다.
 

표지부터 무척 사랑스럽던 책은 내 기대감을 져버리지 않으며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처럼, 때론 신선한 치즈와 함께하는 와인의 유혹만큼이나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운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주인공들의 영화같은 연애이야기와 책 속 묘사만으로도 근사한 레스토랑들의 분위기며, 프랑스 사람들 특유의 성격과 사고방식, 그리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길것만같은 요리들까지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즐겁게 읽었다. 어렸을적부터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식사하는 꿈을 키워오던 나였다. TV속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어가며 대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을 보며 어린 마음에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어다. 엄마께선 어린 딸이 하도 좋아하니 한 날, 포크와 나이프를 사오셨다. 돈까스를 튀겨주시는 날이면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소녀가 되었고, 서걱서걱 서툰 칼질을 하며 엄마를 향해 함빡 미소짓는걸 잊지않았다. 음식은 이처럼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을 일깨워주기도하는 고마운 선물이다. 엘리자베스와 그웬달은 지금도 사랑이 듬뿍담긴 음식과 함께 추억을 쌓아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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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 스파이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
이언 플레밍 지음, 권도희 옮김 / 뿔(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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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 시리즈는 너무도 유명해 오히려 제대로 본 적이 없다.(난 이상하게 히트친 작품은 안보거나 못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빠께서 워낙 액션영화를 좋아하시는 덕분에 007시리즈 또한 즐겨보시고, 덕분에 종종 옆에서 띄엄띄엄 본적은 여러번이다. 멋진 제임스본드와 그의 옆엔 항상 아리따운 본드걸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 나타나 빵! 빵! 총을 난사하며 멋지게 적을 무찌른다. 그리고 아리따운 여인의 키스를 상으로 받는 제임스 본드. '웅진문학에디션 뿔'에서 007시리즈가 출간되었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아빠와 함께 읽어도 좋을 것같단 생각도 즐거움을 더했다. 여러편의 시리즈 중 제목이 매력적인 책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가 제일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난 뭐니뭐니해도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니까!
 

비비안은 여행 중 한 모텔에 머물게 되었고, 관리인의 제안으로 그곳에서 잠시머물며 여행경비를 마련하기로한다. 모텔에서의 마지막 날, 관리인 부부는 떠나고 실제 주인이 아침에 나타나면 열쇠를 주고 떠나는 임무가 비비안에게 주어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제인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본다. 어린시절부터 빼어난 외모와 멋진몸매로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진정한 사랑을 얻지못한 비비안은 날개를 꺾여버리고만다. 상처뿐인 유년시절을 뒤로하고 이제 자신만의 멋진 인생을 살기로 다짐한 제인앞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폭풍우가 휘몰아치던 그 밤 그들이 나타났다. 2인조 깡패는 비비안을 위협하고 죽음의 공포를 불어넣는다. 과연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떡해서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보려 시도한 비비안은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만다. 그럼, 이쯤에서 등장해 주어야 할 인물은? 띵똥~! 바로바로 제임스 본드. 그가 짜잔~! 하고 멋지게 등장해주실 차례가 돌아왔다. 제임스 본드에게 첫눈에 반한 비비안은 과연 무사히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굉장한 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난 그를 잃을 수 없다! 그를 놔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떠날 것이고, 나 역시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어떤 여자도 그런 남자를 영원히 잡을 수는 없다. 아무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고독하게 혼자 걸어가야 하는 남자다.   p.177]
 

매우 익숙하고 단순한 구조로 설정된 이야기는 007영화가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악질적인 등장인물과 그들을 처치할 나쁜남자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제임스 본드, 그리고 명랑하며 매력적인 아가씨까지. 이 단조로운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속 세상은 위험이 도사리지만 평온하고, 냉정한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바람을 따라가듯 정겨운 느낌마저 감돈다. 시대적 배경이 주는 즐거움과 그만의 분위기적 매력까지. 007이 내게 준 즐거움은 '추억'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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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걸 선언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3
수잔 보트 지음, 김선희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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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으로 태어나 다이어트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1년 365일을 다이어트와 함께한대도 과언이 아닌 친구들을 여럿보았다. 부작용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지고 요요현상으로 그전보다 더욱 후덕한 몸매를 자랑하기도하는 등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다이어트를 경험해본적 있고(안먹던 아침 챙겨먹기, 점심은 맘껏먹기, 저녁은 우유와 간단한 식품한개) 별다른 운동없이도 6개월정도 꾸준히 실천하니 이것만으로 몇킬로그램의 몸무게가 감량되었다. 또한 막상 내가 살이 쪄보니 일상생활에 소소한 불편함이 생기는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래걸으면 숨쉬기도 벅차고, 땀도 쉽게나고, 무기력 해진다. 무엇보다 예쁜옷을 입을 수 없다는 슬픔이 크다.
 

『팻걸 선언』의 주인공 제이미는 통통함을 넘어서 뚱뚱한 체격을 당당히 내세워 학교신문에 '팻걸 선언'이라는 기사를 실으며 자신의 존재성과 팻걸, 팻보이들의 차별에서 오는 고통과, 자신들도 보통 인간들과 다름없는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녀또한 자신의 식욕을 억누르지 못할까 염려되어 친구들앞에선 음식을 먹지않으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자신의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날까 걱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말라깽이들만 위하는 이 세상에서 팻걸또한 예쁜옷을 입을 권리와 멋진 남자친구와 데이트 할 권리와 당당히 세상을 누빌 권리를 찾고자 한다. 더이상 무시당할 수 없다!! 
[이 예쁜 셔츠를 망가뜨릴까 봐 정말 걱정스러웠지만 셔츠를 옷걸이에서 벗겨내 머리 위로 집어넣었다. 팔이 가까스로 셔츠에 들어갔다. 천이 왕창 늘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셔츠를 가슴께로 내릴 수가 없었다. 배는 말할 것도 없고.   p.40]
오... 제이미가 꼭 이 어여쁜 셔츠를 사 입을 날이 오길....
[소강당에는 책상과 의자가 붙은 일체형 책상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 젠장. 망했다! 가장 가까이에 서 있던 시험 감독관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중략) 이 말라깽이 여자는 내가 일체형 책상에 몸을 끼워 넣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절대 상상도 못할 거다.   p.162]
얼마전 한 드라마에서 뚱뚱한 남자가 카페 의자에 앉았다 끼어서 일어나지 못해 낑낑대던 슬픈 장면이 떠올랐다.
 

제이미에겐 그녀를 한없이 여리여리하게 만들어줄 멋진 남자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가 한마디 상의도없이 목숨을건 위험한 수술을 하겠다 선언한다. 제이미의 남자친구또한 팻보이라고 불릴만큼 덩치가 좋은데 날씬한 세상에서 당당히 살고싶은 욕망이 그를 죽음의 위험까지 무릅쓰게 만든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 가여운 소년을 몰아세운단 말인가!
[착각 4. 가엾고 외로운 팻걸은 데이트를 할 수 없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내 남자친구 이름은 버크 웨스틴이다. 버크는 우리 학교 미식축구부에서 중앙 수비수를 맡고 있는데, 우리가 댄스파티에 갔다 하면 춤이란 춤은 모두 싹쓸이하며 무대를 휘어잡아버린다.   p.12]
 

책 속에선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뚱뚱한 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차별받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고등학생인 주인공을 내세워 더욱 솔직한 표현력과 유쾌함으로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많은 생각할 것들과 우리사회에 만연하고있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깊은 의미를 되새겨본 좋은 시간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제이미들이 진정 당당한 인생을 맘껏 즐길 수 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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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린 - 어느 기지촌 소녀의 사랑이야기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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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라 했다. 진실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 했다. 숨가쁘게 읽어내려간 책은 뒷표지 문구 그대로였다. 혼혈아인 아이린을 닮은듯한 표지속 여인의 모습또한 아름답지만 슬퍼보인다. 1990년대 중반 미군기지에서 카투사로 근무한 주인공 정태와 기지촌 여성 아이린과의 슬픈 사랑 이야기. 그 속엔 뜨거운 사랑뿐 아니라 한국을 도와주겠다고 온 미군들의 횡포와 그들만의 쓸쓸함 또한 잘 나타나있다.
 

["여기가 왜 한국이야? 여긴 미군기지라고. 캠프 험프리스 주소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나 알고 떠들어? 니네 한국 정부의 기록에도 여긴 캘리포니아 주로 되어 있어. 너희를 지휘하는 게 누구야? 캐슬 대령이지? 니들 생활을 누가 통제해? 중대장 제니랑 인사계 데이비스잖아. 니네들이 영어를 쓰는 게 당연하지. 병신아, 똑똑히 알아둬. 여기는 미국 땅이야."
둘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렀다. (중략)
"분명히 말하는데 여긴 우리 땅이야. 평택 안정리. 한국이라고."   p.154~155] 
 

이 책을 통해 카투사 라는 군복무를 처음 알게되었다. 우리나라에 주둔해 있는 미군들을 도와 전력을 보충한다는 의미로 아주 오래전부터 생겨난 것이라 한다. 한국군에비해 생활환경도 뛰어나고 몸도 편하지만 미군들과 생활하는게 썩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미군부대 주변에 있는 기지촌 사람들은 폭력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아이린이 있었다. 첫 만남부터 나약하기만 한 그녀를 지켜주어야 겠다는 강한 믿음과 의지가 정태에게 생겨났다. 아직 너무도 어린 그녀를 그 악몽같은 곳에서 끄집어내야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정태에겐 힘이 없었고 돈도 없었다. 그저 그녀를 향한 절절한 마음뿐.
 

한국사람들을, 한국 여성들을 깔보는 미군들을 보며 분노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들의 쓸쓸함을 안타까워하고, 주체할 수 없는 똘끼를 가진 등장인물에 조마조마하며 주인공 정태와 아이린의 사랑이 끝까지 무사하길 기도했다. 순간순간 울컥 치밀어오르는 화를 느끼다가도 금세 재미난 에피소드에 뜨악 한 웃음을 짓기도했다. 미군들의 폭력과 만행을 지켜보며 나라의 힘없음을 가슴아파했고, 책을 읽는 내내 전차에 깔려죽은 두명의 소녀들이 생각났다. 그 때 우리정부는 무엇을 했었는가. 그 미군들은 어떻게 되었던가. 벌써 그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 잊혀진 듯 하여 가슴이 아프다. 
 

이재익 작가의 책은 『압구정 소년들』에 이어 두번째 만남이었다. 두권모두 술술 읽히는 글 솜씨와 뜻하지 않는 반전의 재미를 보여주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만난 그의 글은 모두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씌여진 소설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진실되면서도 재미있고 또한 가슴시리게 다가왔다. 앞으로 이재익 작가의 책을 주목 할 것만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 얼마전 여름에 아주 잘 어울릴 공포소설이 출간되었던데 반가운 마음으로 다음책을 만나길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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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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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작가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하다. 김인숙 작가는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무척 궁금한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작은 이빨로 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순식간에 날 사로잡았고, 진과 진이 들려주는 이기적이고도 쓸쓸한 사랑앞에서 한 없이 작아짐을 느끼기도 하였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진 고통에 찬 슬픈 이야기들. 『미칠 수 있겠니』라는 강렬한 제목만큼이나 미쳐 날뛰는 세상속으로, 그 한복판에서 슬픔을 주체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 삶 또한 돌아보게 되었다.
 

진과 진은 이름이 같아 더욱 운명적이라 느낀 듯하다. 그 둘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사랑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남편 유진을 위해 마련한 섬으로의 휴가가 그와의 이별을 야기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섬에 다녀온 후 진은 그곳에서 살고싶다는 유진과 함께 할 수 없어 홀로 떠나보내고, 남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그 낯설음에 몸서리쳐질만큼 예리한 무언가를 느낀 진은 섬으로 떠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둘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그런 이야기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두근 거리는 가슴, 은밀한 떨림과 의심, 그리고, 망설임과 그 망설임을 한꺼번에 압도해버리는, 그 무엇도 확실하다고 할 수 없으나 확실하다고 믿고 싶은, 결정적이라고 믿고 싶은, 그냥 이거, 바로 이거라고 말하고 싶은.... 그 모든 불분명한 감정과 추상어들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났다.' 혹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났다.'   p. 145]
 

섬에서 만난 꽃같은 아이.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고, 죽이리라 마음먹었고, 죽일 것이다.... 진에게 과연 무슨일이 벌어진 것일까. 진과 유진사이에 어떻한 시련이 닥쳐오는 것일까. 급작스레 발생한 지진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정신이 나가 그야말로 미친 세상 속 미친 사람들 뿐이되어버렸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진이 찾고자 한 기억은 어떤 것일까. 평생 기억하고싶지않은 기억을 끄집어내 진에게 얻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를 고통으로 부터, 슬픔으로부터 꺼내줄 수 있을까.
 

[책 읽는 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김인숙 작가를 만났다. 같은 책을 읽고도 그녀가 하는 말은 유독 공감을 불러왔다. 세상을 즐겁고, 좀 더 따뜻하면서 어찌보면 예리하게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녀의 글이 궁금했고 이런 내 앞에 신작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가 찾아왔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글 속에서 잔잔함을 느꼈고, 대 재앙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들 속에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도 고요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툭 하고 무너져 버릴 것만같은 진의 모습 속에서 내가 바라보고자 한 것은 어떤 것일까, 그녀에게서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진을 따라가는 내내 나도 무언가로부터 슬픔을 이겨낼 돌파구를 살짝 엿본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고마운 책을 만난 기분이란 이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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