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파랑의 궤도
네이선 밸링루드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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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화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한 우주 모험담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서부 개척기의 황량한 정서를 우주로 옮긴 듯한 스페이스 웨스턴의 분위기 위에 성장소설과 코즈믹 호러가 겹쳐지면서, 이 소설의 화성은 미래의 이상향이라기보다 인간의 외로움과 결핍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변경의 땅처럼 느껴진다.

이야기는 지구와의 연락이 끊긴 '침묵' 이후의 화성을 배경으로 한다. 화성의 핵심 자원인 '스트레인지'는 원래 연료로 사용되던 광물이었지만, 정제되지 않은 채 드러나면서 사람들을 기이하게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 세계를 가로지르는 것은 총잡이 영웅이 아니라 열네 살의 소녀 애너벨이다.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 않은 애너벨이 낯선 공포와 인간의 폭력성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점이 이 소설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인류는 화성을 새로운 시작의 땅으로 상상했지만, 결국 그곳에도 계급과 차별, 고립과 욕망이 함께 이주해 있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라는 제목은 묘하게 슬프다. 붉은 먼지로 가득한 화성에서 파랑은 이미 너무 멀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인간다움과 질서,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화성은 이미 그 궤도에서 이탈한 장소다. 붉은 먼지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질긴지를 이 소설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묻는다.

#불가능한파랑의궤도 #문학수첩 #네이선밸링루드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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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한국 엄마에게 -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민낯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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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한국엄마에게는 노르웨이 입양모의 시선으로 국제입양의 역사와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본 책이다. 가난과 수치심 속에서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시대, 그리고 그것을 '더 나은 삶'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온 산업의 민낯을 차분히 드러낸다.

책이 고발하는 문제들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구조의 실패다. 불완전하거나 조작된 정보, 허술한 출생 기록, 부모 동의 과정의 허점, 아동의 권리에 대한 체계적 무시. 무엇보다 당국이 이 문제를 알고도 충분히 조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입양기관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수치심과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이용해 부모에게 포기를 압박했고, 입양제도는 결국 사회가 아이들을 직접 돌보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루고도 이 문제를 외면해왔다는 점에서 그 무게는 더욱 무겁다.

작가는 자신 역시 이 구조에 가담한 사람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양국 모두 입양 대신 왜 그 부모를 돕지 않았는지 묻는다. '사과 바구니 속 유일한 바나나', '바람에 날리는 씨앗처럼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입양인들의 표현은 그 질문에 무게를 더한다. 낯선 하얀 세계에서 성장하며 겪는 인종차별, 정체성의 혼란, 감사해야만 한다는 압박과 침묵의 강요는 성공 서사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삶의 무게였다. 책의 마지막 메시지는 조용하지만 단호하다. 아이를 '보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책임 있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 "아이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기는 일은 사회적이자 세계적인 규모의 실험이며, 막대한 인간적 위험을 내포한 행위다"(p.392)라는 문장이 오래 남는다. 인도주의라는 이름 아래 가려졌던 상처들을 꺼내 보이는 동시에,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묻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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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지옥
김인정 지음 / 아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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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지면과 웹을 통해 발표되었던 김인정 작가의 8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내 독서 스펙트럼이 넓지 않은 탓에, 소설집으로서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으레 장편 한 권 분량쯤이니 금세 읽히겠거니 했는데, 예상보다 오래 붙잡혔다. 시간뿐 아니라, 상념까지도.
고서에서나 건져 올렸을 법한 낯선 단어와 표현 앞에서 몇 번이나 멈춰 섰고, 문장을 되짚어 왕복했다. 성큼성큼 읽어내지 못하는 내 비루한 어휘력과, 저 앞에서 손짓하는 작가의 깊고 풍부한 언어 사이의 간극이 선명했다.
덧없는 사랑, 신의와 몰락, 배신과 복수.
복수에 스민 연심, 부질없는 욕망.
그 모든 것이 결국 삶을 향해 되돌아오는 잔혹한 서사다.
지루한 천국보다 다정한 지옥이 나은 걸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 했던가.
삶이란, 결국 살아내는 것.

8편중 내맘에 남은 한편은 이 소설이다.
*권커니, 그대여 종일토록 취하시라*
제목마저 긴 이 짧은 소설은 마치 열두 폭 인물산수 병풍처럼 장면이 겹겹이 펼쳐진다. 한겨울 눈밭과 세찬 바람이 스며들 듯, 읽는 내내 눈이 시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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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소년
개럿 카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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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럿 카의 데뷔작 '바다에서 온 소년'은 아일랜드 드니골만의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바다 위, 파란 플라스틱 통 안에서 발견된 한 아이의 등장은 마을에 미묘하면서도 점차 커지는 변화의 파동을 일으킨다.

'바다에서 온 아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신비롭고 영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느닷없이 가족의 일원, 동생이 되면서 이야기는 곧 현실적인 갈등으로 번져간다. 영웅으로 비상하지도, 파국으로 무너지지도 않는다. 대신 보이지 않는 균열이 천천히 깊어진다. 갈등과 시기, 그리고 그 안에 스며 있는 깊은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익숙하게, 더 깊이 마음을 건드린다.

읽는 내내 다섯째 아이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끝내 그 경계를 넘지 않고, 보다 잔잔한 방식으로 관계의 균열과 회복을 보여준다.

내 아이들이 성장해 각자의 삶을 준비하는 시기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크리스틴의 입장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역동적인 앰브로즈에 비해 눈에 띄는 행동은 적지만, 원가족과의 끊어낼 수 없는 관계 속에서,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크리스틴은 묵묵히 중심을 잡는 인물이다. 마치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배를 붙들고 있는 닻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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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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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 겸재 정선』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우리 고미술을 멀리서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현대미술을 주로 보아온 탓에 조선 회화는 늘 어렵고 단정하게 굳어 있는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 인식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건 겸재정선미술관에서 풍속화와 기록화, 계회도를 마주했을 때였다. 그림 속 장면에 이야기를 덧대어 보기 시작하자,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어떤 ‘삶의 기록’처럼 다가왔다. 이어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새 나라 새 미술’ 전시, 호암미술관에서의 대규모 겸재 정선 전시를 차례로 경험하며, 조선시대 미술은 점점 낯선 영역이 아니라 이어져 있는 감각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특히 ‘금강산’이라는 하나의 주제가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화가들에게 반복되고 변주되어 왔는지를 겸재정선미술관 개관 16주년 전시 <아! 금강산>에서 확인했을 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선명하다. 수많은 해석과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시선은 다시 겸재 정선으로 되돌아온다. 그 원형 같은 힘이 무엇인지 궁금해진 순간, 이 책은 정확한 타이밍에 손에 들어왔다.

유홍준의 글은 단순한 해설을 넘어선다. 강의와 전시를 통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이 책을 통해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작품의 큰 흐름뿐 아니라 화면 구석의 필치, 장난스럽게 숨겨둔 위트까지 집요하게 길어 올린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그림은 더 이상 ‘설명해야 이해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말을 걸어오는 장면으로 바뀐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보는 태도’다. 이전에는 화면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려 애썼다면, 이제는 시선을 머물게 하고, 작은 붓질 하나에도 시간을 들이게 된다. 어쩌면 겸재 정선의 진짜 힘은 거대한 금강산의 장관이 아니라, 그 안을 천천히 걷게 만드는 시선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읽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부분은 흘러가고, 다시 희미해진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덮는 책이라기보다, 곁에 두고 자꾸 펼쳐보게 되는 책에 가깝다. 전시장에서 작품 앞에 섰을 때, 혹은 기억이 흐릿해질 때마다 다시 돌아오게 되는 하나의 기준점처럼.

겸재 정선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이자, 동시에 오래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해설서. 이 책은 나에게 ‘고미술을 보는 법’을 새로 만들어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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