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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반야심경 - 260자에 담긴 부처의 지혜를 가장 쉽게 읽다
요코타 난레이 지음, 곽범신 옮김 / 더웨이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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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반야심경은 제목만 보면 반야심경의 260자를 차근차근 풀어 설명하는 입문서처럼 보인다. 나 역시 각 구절의 의미를 따라가며 경전을 이해하는 책을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니 이 책은 문장 해설서라기보다 반야심경의 핵심인 공(空) 사상을 중심으로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야기하는 강연집에 가까웠다.
딸이 아직도 그 책을 읽고 있냐고 물을 정도로 오랫동안 가방에 넣고 다녔다. 분량이 많은 책은 아니지만 한 번에 몰아 읽히는 종류는 아니었다. 외출하며 지하철에서 한 챕터씩 읽었고, 마치 강연을 듣듯 조금씩 따라갔다. 실제로 강연을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라 그런지 저자가 독자 앞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책은 반야심경의 문장 하나하나를 해설하기보다 '모든 것은 변한다', '고정된 실체는 없다', '집착이 괴로움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여러 사례와 비유를 통해 반복해서 설명한다. 같은 주제가 여러 차례 등장해 다소 느리게 읽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은 개념을 이해시키기보다 몸에 익히게 하려는 선불교 특유의 방식으로 보였다. 덕분에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공이라는 개념이 조금씩 현실의 고민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반야심경을 공부하기 위한 참고서라기보다 반야심경이 가리키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경전의 뜻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불교의 핵심 사상이 오늘의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볼 만하다. 책을 덮고 나서도 반야심경의 모든 내용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붙잡고 있던 생각과 감정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건넨 가장 큰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처음만나는반야심경 #반야심경 #불교 #자기계발 #불교철학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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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공약 - 표와 피의 잔혹사
김주석 지음 / 9월의햇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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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전공, 드라마 조감독 출신 김주석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최근 차분하고 잔잔한 책들을 읽다가 오랜만에 손에 쥔 스릴러, 그것도 정치 스릴러였다. 유세 차량 소리를 배경 삼아 읽으니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글의 속도감에 올라탄 채 눈을 뗄 새도 없이 마지막 장에 닿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에 읽어서인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제주도지사 선거를 둘러싸고 정치인과 경찰, 선거캠프 관계자, 동네 노인들까지 진영과 신념, 종교와 이권—각자의 욕망이 민낯을 드러낸다. 가족끼리도 입에 올리기 꺼리는 소재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듣는 정치 이야기가 소설 속으로 옮겨지니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신념은 통장 잔고 앞에서 무력했고, 욕망은 도덕보다 훨씬 더 선명했다.'(p.40)
경찰인 주인공 승표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경찰로서의 신념은 욕망 앞에서 흔들리고, 욕망을 숨긴 채 선거판을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을 잃는다. 소설은 거창한 정치 담론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나라의 선거란 건 결국 덜 썩은 사과를 고르는 일이라는거.'(p.338)
씁쓸한 문장이지만, 책을 덮고 나니 그 말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선거보다 사람이었다. 누구나 신념을 말하지만 결국 욕망과 이해관계 앞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이 소설은 피 튀기는 살인사건보다도 그 흔들림의 순간들을 더 섬뜩하게 보여준다.
#살인공약표와피의잔혹사 #살인공약 #김주석 #9월의햇살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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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 - 그곳에 살아 있는 감각과 기억에 대하여
아키코 부시 지음, 박지영 옮김 / 멜라이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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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는 제목 그대로 낡고 사소해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 관한 책이다. 건축문화잡지사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저자는 집의 안과 밖을 오가며 공간과 사람, 물건과 계절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읽는 동안 자꾸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과 더 좋은 것을 향해 달려가지만, 정작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오래 곁에 머문 것들인지도 모른다. 집 한구석의 물건, 매일 지나치는 길, 무심히 바라보던 창밖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바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경험도 떠올랐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물과 공간이 단순한 기능을 넘어 기억과 감정을 품고 있다는 시선이었다. 어떤 물건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오래전의 시간과 감정을 불러낸다. 그것은 물건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쌓인 시간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둘러보고 오래 바라보는 태도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읽고 나니 내가 무심히 지나쳐 온 낡고 사소한 것들에도 저마다의 자리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새롭게 보는 법이 아니라, 이미 곁에 있던 것들을 다시 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낡고사소한것들의자리 #아키코부시 #멜라이트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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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이유
이고은 지음 / 잔(도서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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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이유>는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대신, 삶을 오래 통과해온 사람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감정들을 조용히 들려준다. 아빠의 죽음, 엄마의 죽음, 그리고 반려견의 죽음까지. 작가는 삶의 깊은 상실 앞에서 무너지고 울부짖지만, 끝내 작은 꽃과 나무, 바람과 동물들에게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만난다. 느린 걸음과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문장들은 마치 잔잔한 브이로그를 보는 듯 편안하게 스며든다.
작가와 나는 살아온 지역도 세대도 다르지만, 이상할 만 큼 간직한 기억들의 결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또한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틈에 어린 시절 살던 동네나 시골 할머니댁에 도착하곤 했다. 오래전 기억들이 길어 올려졌다.

'사랑했던 것은 사라지지 않고, 계절처럼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p38)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소중했던 사람과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향기나 오래된 풍경처럼 어느 날 문득 삶 속으로 돌아온다. 작가는 숲의 파도 소리, 풀의 모양새, 아카시아 향기 같은 사소한 풍경들을 통해 삶에 대한 감사를 천천히 되새긴다.

특히 '아름다운 것들만 배 깊숙이 간직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낸다. 무거워진 나의 배가 버티지 못하고 침몰하지 않도록' (p66)이라는 문장은 오래 남았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기억을 모두 붙잡는 일이 아니라,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품고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위태롭던 작가의 삶은 '어둠이 밀려오는 바다 위에서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배한 척'(p132)처럼 읽혔다. 오징어잡이배 불빛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서도 누군가는 생을 지탱하기 위해 치열하게 빛을 내고 있다는 증거였다'(p134)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삶을 버텨내는 사람들에 대한 조용한 애정이 전해졌다.

계절의 이유는 거창한 위로나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모두 이 삶이라는 바다 위를 함께 건너가는 존재라고, 그리고 사랑했던 것들은 결국 다른 계절의 얼굴로 다시 돌아온다고 잔잔히 이야기해준다.

#계절의이유 #이고은 #잔출판사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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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파랑의 궤도
네이선 밸링루드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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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화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한 우주 모험담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서부 개척기의 황량한 정서를 우주로 옮긴 듯한 스페이스 웨스턴의 분위기 위에 성장소설과 코즈믹 호러가 겹쳐지면서, 이 소설의 화성은 미래의 이상향이라기보다 인간의 외로움과 결핍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변경의 땅처럼 느껴진다.

이야기는 지구와의 연락이 끊긴 '침묵' 이후의 화성을 배경으로 한다. 화성의 핵심 자원인 '스트레인지'는 원래 연료로 사용되던 광물이었지만, 정제되지 않은 채 드러나면서 사람들을 기이하게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 세계를 가로지르는 것은 총잡이 영웅이 아니라 열네 살의 소녀 애너벨이다.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 않은 애너벨이 낯선 공포와 인간의 폭력성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점이 이 소설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인류는 화성을 새로운 시작의 땅으로 상상했지만, 결국 그곳에도 계급과 차별, 고립과 욕망이 함께 이주해 있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라는 제목은 묘하게 슬프다. 붉은 먼지로 가득한 화성에서 파랑은 이미 너무 멀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인간다움과 질서,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화성은 이미 그 궤도에서 이탈한 장소다. 붉은 먼지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질긴지를 이 소설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묻는다.

#불가능한파랑의궤도 #문학수첩 #네이선밸링루드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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