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가 공직에 취임한 이듬해 피렌체는 루이 12세의 공격으로 전화에 휩싸인다. 중앙집권국인 프랑스는 공화국으로 분열되어 전력이 약한 이탈리아를 자주 침략했다. 외교업무를 보던 마키아벨리는 파리에 파견되어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 그 무렵 로마냐 지방에서는 체사레 보르지아가 등장하여 아버지인 교황과 프랑스를 등에 업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세력을 넓혀간다. 피렌체의 외교관으로서 체자레를 만난 마키아벨리는 그의 대담성과 세심성, 기만과 잔인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단호한 태도 등에서 위대한 군주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체자레가 후견인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각하자 이탈리아의 안정에 기대를 걸었던 마키아벨리의 희망도 사라진다. 피렌체는 다시 혼란에 휩싸인다. 마키아벨리는 당시 권력자인 소데리니와 함께 국민병을 조직해 나간다. 그러나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서 소데리니는 몰락하고 메디치가의 전제정치가 시작된다. 마키아벨리는 구정권에 봉직했다는 이유로 투옥, 석방된 뒤 시골로 내려가 군주론을 집필한다. 군주론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체자레 보르지아다.

군주론은 통치자를 위한 정치학이다. 책의 내용은 국가의 성격, 종류, 형성 과정, 유지, 패망에 대한 사례와 분석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강력한 군주와 자국 군대만이 나라의 영토를 지키고 백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자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군주는 때로 선보다 악을 택해야 하며, 관대하기보다는 인색해야 하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가 간의 신의는 저버려도 된다. 백성에게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군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용병은 애국심이 없고 외국 원군은 백해무익하니 국민병을 양성해야 한다. 군주만 바라보는 측근을 옆에 두고, 그들의 말을 듣되 일정한 거리감을 둔다. 요새와 성을 쌓는 것은 필요에 따라 가능하나, 성을 쌓는 일로 원성을 듣지 않도록 한다. 가장 강력한 요새는 백성의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다. 명성을 얻는 방법으로는, 전쟁을 계속하여 백성의 불만은 잠재우고 영토는 넓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군주상은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악함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잔인한 군주로 통했지만, 로마냐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지방을 통일하여 평화와 안정을 가져온 체자레의 통치 형태를 군주의 모범으로 삼는다. 그러나 잔악함을 남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시라쿠사의 아가토클래스는 자기 편을 배신하여 학살하는 등 잔악성을 남용하여 자비심을 저버렸고, 페르모의 올리베르토는 자신을 키워준 후견인을 살해하여 끝이 좋지 않았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가해 행위는 단번에, 은혜는 오래도록 베풀어야 함을 강조한다. 무력일지라도 국가 전체를 위한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이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운명이다.”(102P)

마키아벨리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음을 상기시킨다. 세상일이 신의 계획대로 운명지어진 것이라고 보는 이는 애쓰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반은 운명이고, 반은 자유의지다. 운명은 강물과 같아서 범람하고 굽이치며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인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노도에 휩쓸리고 만다. 그러나 평온할 때 제방을 쌓고 운명을 대비하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여 메디치가에 바친 목적은 빈사에 빠진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함이다. 경제와 문화적으로는 뛰어나나 국력이 약하여 야만족의 침입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의 무기력한 운명을 끝내고 영광을 회복하라는 충언이다.

무력만이 단 한 가지 남은 방법이라면 무력도 신성한 것이다.(105P)

마키아벨리는 도덕을 정치에서 분리시키고, 통치자의 잔혹하고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합리화한다. 그의 친구들은 군주론의 사상이 위험하다고 여겨 메디치가에 헌정하지 못하도록 만류한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 사후 출간되지만 교황청에서 금서로 분류하여 판매를 불허한다. 이후로 군주론을 탐독한 이들은 나폴레옹, 히틀러, 무솔리니 등 세상의 권력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군주론이 쓰여진 배경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당위와 '어떻게 사는가'의 현상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상적인 국가론을 논한 철학자들과 달리 현실적인 군주론을 펼친 마키아벨리의 책을 앞에 두고 잠시 숙고한다. 이는 비단 군주에게 국한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 학교, 사회, 정치, 기업 등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우리는 도리와 힘 사이의 힘겨루기를 경험한다. 군주론의 주장대로 현실 앞에서 당위를 저버려도 되는가? 마키아벨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성공을 특별한 사례로 평가한다. 당위를 위해 본성을 버리는 일이 일반적이라면, 본성을 누르고 당위를 높이는 일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영광에 이르는 길임이 분명하다. 마키아벨리가 꿈꾼 통일 왕국의 군주는 겸허하고 인자하며 정의를 사랑하고 잔혹을 미워한 군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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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3 - 나만의 십자가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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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전권을 완독했다.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천주교인의 기구한 삶이 장하게 펼쳐져서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곡성 덕실마을과 미륵골에 숨어 살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나라가 적으로 간주했으니 산속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면서도 감사와 기쁨이 있었다. 그들의 공동체에는 세상의 질서와 다른 '사랑과 나눔'의 세계관이 있었다. 말이 앞서는 이들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들녘은 아가다의 헌신으로 이시돌이 되었고, 짱구는 마름 봉식의 시신을 거두려는  동정녀들을 돕다가 신자가 되었으며, 길치목은 전주옥의 교인들에게 감화되어 시몬으로 거듭났다. 믿으라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참된 삶 속에서 신을 발견했다. 교우촌 사람들은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이름자도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치명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나라의 계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의 영관을 받았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탁환 작가는 섬진강처럼 도도하게 흘러간 그들의 삶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신앙을 지키며 올곧게 살았던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를 세세히 복원했다. 천주교 박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사랑과 혁명, 다시 말하면 '사랑의 혁명'일 것이다. 사랑으로 이룬 혁명은 실패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비천하게 살았던 옹기꾼들의 삶,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교우들의 신앙이 우리의 현재를 추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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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2 - 천당과 지옥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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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전권을 완독했다.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천주교인의 기구한 삶이 장하게 펼쳐져서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곡성 덕실마을과 미륵골에 숨어 살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나라가 적으로 간주했으니 산속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면서도 감사와 기쁨이 있었다. 그들의 공동체에는 세상의 질서와 다른 '사랑과 나눔'의 세계관이 있었다. 말이 앞서는 이들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들녘은 아가다의 헌신으로 이시돌이 되었고, 짱구는 마름 봉식의 시신을 거두려는  동정녀들을 돕다가 신자가 되었으며, 길치목은 전주옥의 교인들에게 감화되어 시몬으로 거듭났다. 믿으라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참된 삶 속에서 신을 발견했다. 교우촌 사람들은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이름자도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치명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나라의 계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의 영관을 받았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탁환 작가는 섬진강처럼 도도하게 흘러간 그들의 삶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신앙을 지키며 올곧게 살았던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를 세세히 복원했다. 천주교 박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사랑과 혁명, 다시 말하면 '사랑의 혁명'일 것이다. 사랑으로 이룬 혁명은 실패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비천하게 살았던 옹기꾼들의 삶,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교우들의 신앙이 우리의 현재를 추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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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1 - 일용할 양식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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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전권을 완독했다.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천주교인의 기구한 삶이 장하게 펼쳐져서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곡성 덕실마을과 미륵골에 숨어 살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나라가 적으로 간주했으니 산속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면서도 감사와 기쁨이 있었다. 그들의 공동체에는 세상의 질서와 다른 '사랑과 나눔'의 세계관이 있었다. 말이 앞서는 이들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들녘은 아가다의 헌신으로 이시돌이 되었고, 짱구는 마름 봉식의 시신을 거두려는  동정녀들을 돕다가 신자가 되었으며, 길치목은 전주옥의 교인들에게 감화되어 시몬으로 거듭났다. 믿으라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참된 삶 속에서 신을 발견했다. 교우촌 사람들은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이름자도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치명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나라의 계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의 영관을 받았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탁환 작가는 섬진강처럼 도도하게 흘러간 그들의 삶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신앙을 지키며 올곧게 살았던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를 세세히 복원했다. 천주교 박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사랑과 혁명, 다시 말하면 '사랑의 혁명'일 것이다. 사랑으로 이룬 혁명은 실패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비천하게 살았던 옹기꾼들의 삶,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교우들의 신앙이 우리의 현재를 추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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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레시피 - 요리 하지 않는 엄마에게 야자 하지 않는 아들이 차려주는 행복한 밥상
배지영 지음 / 웨일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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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지 않는 엄마에게 야자하지 않는 아들이 차려주는 행복한 밥상.” 책 표지 상단에 적혀 있는 문장을 읽으며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요리하지 않는 엄마? 야자하지 않는 아들? 아들이 차려주는 밥상?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책을 뒤집어 뒤표지를 살펴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저녁밥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못해서 남편이 해 주는 밥을 먹다가, 이제는 고딩 아들이 해주는 밥을 먹는 엄마는 매일 얼마나 맛있게 먹어줄지 고민이다.” 작가의 글에는 아들이 만드는 요리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탐색을 마치고 본격적인 독서에 들어갔다. 아들이 야자를 하지 않게 된 사연이 23쪽에 나와 있었다. “5월의 어느 수요일, 제규는 정규수업 종례가 끝나자 선생님을 뒤따라갔다. 보충수업에 빠져야겠다고, 그 돈으로 신선한 재료를 사서 저녁밥을 해야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6월부터 일찍 가라고 허락해주었다.” 복도에서 담판을 짓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담백하고도 우아했다. 스승은 보충수업 안 하고 어떻게 대학에 갈 거냐는 충고를 잊었고, 제자는 다음 날 아침 6시에 버섯 리조토를 만들어 스승에게 가져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는 아들에게 박찬일 셰프의 칼럼을 읽게 했다. 요리사의 평균 급여는 바닥이고, 노동시간은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보다 길고, 신분 보장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아들은 그래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모자의 담판도 흥미로웠다. 엄마는 아들을 요리학원에 보내고 직접 장을 볼 수 있도록 지시했다. 아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채소와 해산물을 조금씩 샀다. 미래의 요리사는 다른 아이들이 야자하는 시간에 요리학원에 가고, 저녁을 짓고, 음식 만화책을 읽고, 영화에 나온 요리를 따라하고, 동생의 간식을 만들어주고, 친구들을 데려다가 밥을 해 먹였다.

소년은 요리 레시피를 공책에 기록했다. 영어로 옮기기도 했다. ‘아픈 엄마를 위해 아들이 끓여주는 죽’이라는 부제가 붙은 ‘죽’의 레시피를 살펴보았다. “쌀을 불리고, 불린 쌀을 빻고, 당근을 다지고, 물을 조절하며 끓이고 … 소금으로 간을 한다.” 레시피는 평범했지만 레시피를 한 줄로 요약한 문장은 예사롭지 않았다. “오래 끓일수록 맛있고, 단순할수록 맛있다.” 음식과 삶의 공통점을 소년은 알고 있는 듯했다.


책을 읽는 동안, 처음에 가졌던 오해가 풀렸다. 요리는 엄마의 일이 아니라 가족 중에서 더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 야자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 진정한 자립은 타인을 위해 요리할 때 시작된다는 것.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을 내공 깊은 작가의 가족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입시 공부라는 궤도를 벗어나 홀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소년이지만, 무언가가 되어가는 그를 응원하는 가족이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제규는 자기 생활을 맘에 들어 한다. 지금은 집에서 밥을 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생기면 그만둘 수도 있다. 엄마가 학교 공부 안 하는 아들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유도 안다. 직접 겪으면서 자기 길을 가는 고등학생에게는 멋짐이 있는 거니까.”

소년의 레시피를 덮으며 저녁 메뉴를 골랐다. 꿈이 여물어가는 날엔 단단한 꼬막무침. 씻는 과정이 요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꼬막으로 가족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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