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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실의 (양장)
마테오 리치 지음, 송영배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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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리치는 1583년 명나라 말기에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들어왔다. 마테오리치는 예수회의 적응주의 노선에 의해 중국의 의복을 입고 한자어를 익히는 등 토착 문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명나라의 고위 관료들과 친분을 나누게 되었고 풍응경, 이지조를 천주교로 개종시켰으며 이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천주실의를 완성하게 되었다. 천주실의는 천주의 존재에 대해 토론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국의 유학자를 비롯하여 조선의 선비들을 사로잡은 천주교 교리서라고 할 수 있다. 

천주실의는 8개의 주제로 분류되어 있다.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것이 진실인지, 물리적인 하늘과 천주는 어떻게 다른지, 사람의 영혼은 과연 불멸하는지, 귀신과 혼에 대한 유학의 이론이 옳은지, 윤회와 짐승의 살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천당과 지옥은 존재하는지, 인간 본성의 선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천주를 신앙하는 서양에서는 어떠한 풍속이 있는지 등이 주제이며 각 장마다 첨예하게 맞서는 두 종교의 이론을 문답식으로 풀어나간다.  

핵심적인 주제를 몇 개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가 만물의 이성 능력을 함유하고 만물을 조화, 생성한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바로 천주입니다. 어찌 유독 '이'라고만 말하고, '태극'이라고만 말하십니까?"(97쪽) 마테오리치는 성리학의 '이'가 바로 천주임을 설득한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만물시생의 원인인 '태허' 를 서양에서는 '천주'라고 부른다며 보유론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천주교의 영혼 불멸을 불교의 윤회와 같은 맥락으로 보는 이들에게 인간의 지성적 영혼을 납득시킨다.   

"사람의 영혼이 다른 몸으로 가서 다시 세상에 태어남에, 혹 다른 사람이 되거나 혹 짐승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들 본래 존재의 지능은 반드시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236쪽) 마테오리치는 불교의 윤회설은 영혼 불멸의 이론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혼은 본래의 지성을 갖고 있으니 짐승으로 태어나 살아갈 수 없으며, 윤회로 인해 짐승이 된 사람을 위해 금육하고 재계를 지키는 사람들의 행위도 어리석다는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천주실의>을 읽고 천주의 실체를 받아들인다. 형이상학적인 태극도설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만물시생의 원리를 분명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그 놀라운 체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쉽게 읽히는 책들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한 자 한 자 풀이하며 골똘히 읽는 책은 영혼에 각인된다. 사람의 지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과연 그 지성은 생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소멸되는가? 정답이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독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신의 모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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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 걷는사람 시인선 106
임주아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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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아의 시는, 저마다 간직한 내밀한 상처를 응시하게 한다. 골방에 웅크리고 앉았던 시간을 통과해야 어른이 된다. 어린 자아를 연민한 사람만이 슬픔을 환유할 수 있다. 임주아가 삶을 은유하는 방식은 발랄하고 통쾌하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언어 감각으로 서사와 비서사의 경계를 즐기는 시인, 임주아는 시인의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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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아의 시는, 저마다 간직한 내밀한 상처를 응시하게 한다. 골방에 웅크리고 앉았던 시간을 통과해야 어른이 된다. 어린 자아를 연민한 사람만이 슬픔을 환유할 수 있다. 임주아가 삶을 은유하는 방식은 발랄하고 통쾌하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언어 감각으로 서사와 비서사의 경계를 즐기는 시인, 임주아는 시인의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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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가 공직에 취임한 이듬해 피렌체는 루이 12세의 공격으로 전화에 휩싸인다. 중앙집권국인 프랑스는 공화국으로 분열되어 전력이 약한 이탈리아를 자주 침략했다. 외교업무를 보던 마키아벨리는 파리에 파견되어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 그 무렵 로마냐 지방에서는 체사레 보르지아가 등장하여 아버지인 교황과 프랑스를 등에 업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세력을 넓혀간다. 피렌체의 외교관으로서 체자레를 만난 마키아벨리는 그의 대담성과 세심성, 기만과 잔인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단호한 태도 등에서 위대한 군주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체자레가 후견인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각하자 이탈리아의 안정에 기대를 걸었던 마키아벨리의 희망도 사라진다. 피렌체는 다시 혼란에 휩싸인다. 마키아벨리는 당시 권력자인 소데리니와 함께 국민병을 조직해 나간다. 그러나 또다시 혁명이 일어나서 소데리니는 몰락하고 메디치가의 전제정치가 시작된다. 마키아벨리는 구정권에 봉직했다는 이유로 투옥, 석방된 뒤 시골로 내려가 군주론을 집필한다. 군주론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체자레 보르지아다.

군주론은 통치자를 위한 정치학이다. 책의 내용은 국가의 성격, 종류, 형성 과정, 유지, 패망에 대한 사례와 분석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강력한 군주와 자국 군대만이 나라의 영토를 지키고 백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자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군주는 때로 선보다 악을 택해야 하며, 관대하기보다는 인색해야 하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가 간의 신의는 저버려도 된다. 백성에게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군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며, 용병은 애국심이 없고 외국 원군은 백해무익하니 국민병을 양성해야 한다. 군주만 바라보는 측근을 옆에 두고, 그들의 말을 듣되 일정한 거리감을 둔다. 요새와 성을 쌓는 것은 필요에 따라 가능하나, 성을 쌓는 일로 원성을 듣지 않도록 한다. 가장 강력한 요새는 백성의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다. 명성을 얻는 방법으로는, 전쟁을 계속하여 백성의 불만은 잠재우고 영토는 넓히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군주상은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악함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잔인한 군주로 통했지만, 로마냐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지방을 통일하여 평화와 안정을 가져온 체자레의 통치 형태를 군주의 모범으로 삼는다. 그러나 잔악함을 남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시라쿠사의 아가토클래스는 자기 편을 배신하여 학살하는 등 잔악성을 남용하여 자비심을 저버렸고, 페르모의 올리베르토는 자신을 키워준 후견인을 살해하여 끝이 좋지 않았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가해 행위는 단번에, 은혜는 오래도록 베풀어야 함을 강조한다. 무력일지라도 국가 전체를 위한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항이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운명이다.”(102P)

마키아벨리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음을 상기시킨다. 세상일이 신의 계획대로 운명지어진 것이라고 보는 이는 애쓰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반은 운명이고, 반은 자유의지다. 운명은 강물과 같아서 범람하고 굽이치며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인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노도에 휩쓸리고 만다. 그러나 평온할 때 제방을 쌓고 운명을 대비하면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여 메디치가에 바친 목적은 빈사에 빠진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함이다. 경제와 문화적으로는 뛰어나나 국력이 약하여 야만족의 침입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의 무기력한 운명을 끝내고 영광을 회복하라는 충언이다.

무력만이 단 한 가지 남은 방법이라면 무력도 신성한 것이다.(105P)

마키아벨리는 도덕을 정치에서 분리시키고, 통치자의 잔혹하고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합리화한다. 그의 친구들은 군주론의 사상이 위험하다고 여겨 메디치가에 헌정하지 못하도록 만류한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 사후 출간되지만 교황청에서 금서로 분류하여 판매를 불허한다. 이후로 군주론을 탐독한 이들은 나폴레옹, 히틀러, 무솔리니 등 세상의 권력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군주론이 쓰여진 배경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당위와 '어떻게 사는가'의 현상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상적인 국가론을 논한 철학자들과 달리 현실적인 군주론을 펼친 마키아벨리의 책을 앞에 두고 잠시 숙고한다. 이는 비단 군주에게 국한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 학교, 사회, 정치, 기업 등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우리는 도리와 힘 사이의 힘겨루기를 경험한다. 군주론의 주장대로 현실 앞에서 당위를 저버려도 되는가? 마키아벨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성공을 특별한 사례로 평가한다. 당위를 위해 본성을 버리는 일이 일반적이라면, 본성을 누르고 당위를 높이는 일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영광에 이르는 길임이 분명하다. 마키아벨리가 꿈꾼 통일 왕국의 군주는 겸허하고 인자하며 정의를 사랑하고 잔혹을 미워한 군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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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3 - 나만의 십자가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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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혁명 전권을 완독했다.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천주교인의 기구한 삶이 장하게 펼쳐져서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곡성 덕실마을과 미륵골에 숨어 살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나라가 적으로 간주했으니 산속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면서도 감사와 기쁨이 있었다. 그들의 공동체에는 세상의 질서와 다른 '사랑과 나눔'의 세계관이 있었다. 말이 앞서는 이들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들녘은 아가다의 헌신으로 이시돌이 되었고, 짱구는 마름 봉식의 시신을 거두려는  동정녀들을 돕다가 신자가 되었으며, 길치목은 전주옥의 교인들에게 감화되어 시몬으로 거듭났다. 믿으라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참된 삶 속에서 신을 발견했다. 교우촌 사람들은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이름자도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치명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나라의 계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의 영관을 받았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김탁환 작가는 섬진강처럼 도도하게 흘러간 그들의 삶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신앙을 지키며 올곧게 살았던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를 세세히 복원했다. 천주교 박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사랑과 혁명, 다시 말하면 '사랑의 혁명'일 것이다. 사랑으로 이룬 혁명은 실패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비천하게 살았던 옹기꾼들의 삶,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교우들의 신앙이 우리의 현재를 추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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