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 나노로봇공학자, 우리와 우리 몸속의 우주를 연결하다
김민준.정이숙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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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작 <이너스페이스>라는 영화를 기억하는지. 슬프게도 나는 기억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슬픔은 1987년작을 기억할 만큼 세월을 살았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영화는 초소형 잠수함을 타고 우연히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인체 내부를 탐험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사람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눈으로 본 인체 내부 장기의 장면이 정말 인상 깊었기에 어린 시절 봤던 영화 중 구니스와 함께 특별히 기억하는 영화이다. 이 책은 SF 영화 속 허구인 줄만 알았던 이너스페이스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학자이자 연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 인간의 눈으로는 존재를 확인할 수조차 없는 로봇을 연구하고 만드는 공학자다. 뜬금없는 난독증을 고백하며 시작하는 교양 과학서와 교양 에세이를 넘나드는 이 책을 나는 이렇게 세 단어로 정리하고 싶다.

[혁신, 융합, 덕질]

김민준 교수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끊임없이 개척한다. 기존 나노로봇을 향상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마이크로 사이보그와 트랜스포머 나노로봇을 만드는 등 연구 성과 뿐만 아니라 한국 대학 출신으로 미국에서 교수가 되고 자리를 잡기까지의 과정이나 겹치지 않는 다양한 국적과 전공의 학생들을 연구팀으로 구성하는 것, 그러한 과정을 이렇게 책으로 기록한 것 등 매 순간을 혁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학문과의 끊임없는 교류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학자는 한 우물을 깊게 판 사람으로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다. 그러나 김민준 교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과감히 우물 밖으로 나가 다양한 환경과 사람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 언급된 자신의 인간 관계나 연구 활동 등이 언행 일치를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덕질이라고 과학이나 공학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이 책을 정리한 것은 저자 자신이 자신이 하는 연구를 정말 좋아하고 즐긴다는 것이 글에서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부러울 정도였다. 언어나 인종 장벽, 다른 교육 연구 환경 등 분명 궤도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난독증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이러한 업적을 이룬 것은 분명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2장 나노로봇의 변천사를 다룬 부분은 장벽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공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학창 시절에 배운 온갖 지식을 총동원하고 학문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과학자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했던 연구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에 무척 자부심을 느끼며 흥미롭게 읽었다. 더군다나 이너스페이스를 현실화하는, 즉 나노로봇을 통해 인체 내 표적 치료를 지향하는 내용은 내가 하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아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나머지 부분은 저자 자신의 자서전에 가까운 에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신에 대해 주변 사람에 대해 그리고 나노 공학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한국의 교육이나 연구 환경과 정책에 관한 내용은 공감하고 생각할 부분도 많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한국 과학자로서 위상을 떨치고 있는 저자의 활동들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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