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 33가지 죽음 수업
데이비드 재럿 지음, 김율희 옮김 / 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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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모님의 노화 속도가 나보다 훨씬 빠르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아프다는 얘기가 부쩍 늘었고, 병원 방문 횟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진료과 종류도 다양해졌다.자연스럽게 하지만 막연하게 내 가족들의 죽음은 어떤 형태일까를 생각하곤 한다. 장기전일까 단기전일까. 희망 없는 장기전이라면 어떤 치료가 좋을까. 의료 비용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하고 감당해야 할까.

노인 의학 전문의인 저자는 30여년을 영국 NHS에서 이 분야의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그 동안 겪은 여러 죽음을 목도하며 개인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대비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런 경험과 고민들이 33가지 죽음 수업이라는 부재를 달고 33개의 에피소드로 담겨 있다. 심각한 주제이지만 슬프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오고 때론 뭉클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괜찮은 죽음에 대한 결론에 이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지인의 남편 분이 돌아가셨다. 5년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생존율 0%라는 선고를 받았지만 수술 후 잘 관리한 덕분에 무려 5년을 사셨다. 대체로 컨디션이 좋으셨지만 종국에는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하고 감각이 소실되어 대소변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지인분은 그런 남편을 보며 이렇게 고통스러울 바에는 차라리 환자 본인에게 죽음이 훨씬 편안할 거라는 생각을 하셨단다. 오히려 죽음 후 고통은 죽은 사람의 빈 자리를 고스란히 짊어진 산 자의 몫이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심도있게 다룬 것처럼 죽음이 다가올 때 단순히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를 위해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견디며 비용을 부담하는 것보다는 통증만을 조절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보내는 것이 가장 괜찮은 죽음이라는 것을 이 책으로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다. 나 역시 죽는 시기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부담되지 않도록 적절한 시점에 조용한 돌연사이고 싶다.

🏷 우리는 삶과 죽음을 양자택일로 생각한다.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일종의 스펙트럼이다. 나이를 먹으며 이 연속체의 한쪽 끝에 있는 죽음을 향해 서서히 이동한다 - p.143

🏷 망자란 우리 사이를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주로 보이지 않게 장기 보호시설에 앉아 있는, 기억에서 지워져간 사람들을 뜻한다 - p.144

🏷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질병은 무거운 짐이며 치료도 무거운 짐인데, 둘 사이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 p.214

🏷 우리가 날씨를 통제할 수 없듯이 우리의 목숨을 빼앗는 질병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고통과 자녀들의 괴로움을 연장할 뿐 그 외에는 아마도 이득이 거의 없는 치료를 거부할 수는 있다 - p.238

덧. 죽음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읽다보니 오히려 죽음의 정체가 분명해지고 객관적 현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이고 좀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해 보는 게 더 좋겠다. 아직 죽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죽음의 방식을 다룬 책들을 몇 권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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