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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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 p.349

SF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제까지 읽어 본 SF 소설 중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고 빛났다. 테드 창의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심오했고,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은 갈수록 난해했으며, 한국 작가들의 SF 소설은 안타깝게도 완성도가 아쉬웠다. 그래서 갖게 된 SF 소설에 대한 편견을 모조리 깨 준 작품이다. 일단 진심을 담아 강력추천! 읽는 동안 뭉클했던 순간이 몇 번이었는지 셀 수도 없다.

실수로 인지+학습 능력을 갖게 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빠르게 달릴 때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경주마 ‘투데이’
소프트 로봇 영재이자 콜리의 구원자 ‘연재’
휠체어에 의지하여 스스로세상에서 고립된 소녀 ’은혜’
화상으로 배우의 삶을 포기하고 소방관인 남편마저 화재로 읽은 엄마 ‘보경’

다리가 부서져 폐기 직전인 로봇, 관절이 망가져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경주마, 가족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고 소외되면서도 담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인간 중심 세상에서 로봇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고립 vs. 연대, 갈등 vs. 화해, 죽음 vs. 삶을 이야기하며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고작 20대 후반인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것을 아우르고 품어 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라고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은 작가 소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꾸며, 작가적 상상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늘 고민했지만 우주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꿈꿨다는 천선란 작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SF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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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4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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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거야.”

P.286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에요.”

책을 읽으면서 수 없이 뭉클함이 찾아왔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마음을 관통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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