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 부른다 - 해양과학자의 남극 해저 탐사기
박숭현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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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단순히 남극 여행기 쯤 되는 줄 알았다. 남극 여행기는 처음이니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펼친 책은 해양 과학자의 남극 해저 탐사기였고 매우 생소한 분야의 탐사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탐사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 공통과학 시간에 배운 지구과학 지식을 모조리 동원해야 했지만 말이다. 단언컨데 그 어떤 여행기보다 흥미진진하다.

책의 저자인 박숭현은 해양학자로 현재 한국 극지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아라온호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연구 탐사선을 타고 매년 대양으로 항해를 떠난다. 주로 지구 내부 물질과 에너지가 나오는 통로인 해저 중앙 해령을 연구하여, 지구 내부 맨틀의 순환과 진화의 문제를 밝히고자 한다. 말이 어렵지만 간단히 이해하자면 남극 바다 속에 숨어 있는 지구 속살을 연구해서 지구의 역사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다고나 할까? 해양학이라는 분야도, 이런 탐사 연구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된 지라 무척 흥미로웠다.

책은 크게 4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에는 첫 해양 탐사부터 남극 중앙 해령을 대상으로 한 첫 아라온호 탐사를, 2장에는 4일간의 남극 중앙 해령 탐사를 위한 40일간의 세계 일주를, 3장에는 첫 남극 탐사부터 호주, 해저 시추 프로그램, 일본,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 연구팀과의 해양 탐사를, 4장에는 해양학, 남북극 환경의 형성, 극지 탐험의 역사 및 판구조론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장까지는 해저 탐사기이고, 4장은 기본적인 교양 해양학에 대한 개괄이다. 만약, 4장부터 이 책이 시작되었다면 분명 100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덮었을텐데, 다행히 남극으로 향하는 첫 아라온호 탐사기부터 여행 매니아인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정말이지 세상에 이런 뿌듯하고 대단하고 특별한 여행기는 없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대학 전공을 정해 두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과를 졸업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고1 때 공통과학을 배우고, 2학년부터 4가지 과학 과목 중 2과목을 선택하던 세대인데 (지금은 어떤지 모름), 그 전공을 위해 당연히 화학과 생물을 선택했고 다른 과목은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 지리와도 밀접히 연관된 지구과학이라는 분야가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이었나 싶었다. 머리 말랑하던 시절에 지구과학을 좀 더 배웠더라면 지금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 훨씬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심하게 뒤늦은 후회를 할 정도!

제한된 시간 내에 극한 날씨 변화에 따라 1분 1초를 다투며 시료 채취와 실험을 해야 하는 해저 탐사 자체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다이나믹했고, 해저 탐사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뿐만 아니라 남극으로 향하는 길이 쉽지 않아 매번 여러 번 비행기를 타고 다양한 도시를 거쳐 생소한 항구 도시에서 탐사선에 탑승하는데, 이 여정 자체가 주는 다양한 문화 체험도 재미있었다. 칠레 발파라이소나 파타고니아, 포루투갈 리스본 등에서의 체류기는 지난 나의 여행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언제 여행을 떠날지 모르는 이 시국에 여행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련해졌다.

기본적으로 여행기가 아닌 해저 탐사 이야기이기에 용어들이 생소해서 진입 장벽이 있을 수 있지만, 고1 공통 과학 시간에 배운 지식이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용어와 활동들이어서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해저 탐사 이야기만 있었다면 지루했을텐데, 외국 연구원들과의 문화 교류나, 탐사선을 타기까지 여정 등이 여행기처럼 어우러져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국가에서 미국이나 유럽도 접근하지 못한 호주-남극 중앙 해령의 탐사를 시작했다는 점을 알게되어 뿌듯하기도 했다. 기존 천편일률적인 여행기에 지쳤거나, 새로운 남극 해저 탐사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사람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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