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의 전장에서 - 최초의 항생제, 설파제는 어떻게 만들어져 인류를 구했나
토머스 헤이거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100여년 전만 해도 1차 세계대전 전장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상처 감염으로 죽어나갔다. 감염 시킨 세균도, 그 세균을 다루는 방법도 몰랐으니 감염 부위를 넓게 잘라내고 다시 감염되지 않는 행운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의대생 신분으로 참전하여 부상병을 돌보던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전쟁과 감염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다. 그는 상처 자체는 전쟁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에 이은 감염은 틀림없이 과학으로 예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 파멸적인 광기에 맞서겠노라고 신과 나 자신에게 맹세했다.” - p.38.

지금 우리는 항생제 남용을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최초의 항생제는 1930년대에 개발된 설파제였다. 설파제는 20여년에 걸쳐 도마크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집착에 가까운 노력과 바이엘이라는 독일계 제약사 그리고 국가의 협업이 만들어 낸 마법의 탄환같은 존재였다. 이 책에는 이 최초의 항생제가 어떤 기나긴 여정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항생제 탄생의 명암 그리고 개발 이후 의료 방법이나 질병 통제 방식, 신약 개발 방식 등 사회에 미친 영향이 총체적이고 집약적으로 담겨있다. 여러 감염 질환에 대한 특이적 세균을 찾아내는 과정이나 세균에 작용하는 특정 화학 물질의 구조를 발견하는 일, 최초로 약을 개발하여 인정 받고 세계적으로 통용되기까지 험난한 여정의 단계 단계가 모두 소설만큼 흥미로웠다.

항생제 남용이 무서운 이유는 세균의 내성 발생이다. 감염 질환이 발생하면 항생제로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허나 모자란 양을 써서 세균을 남겨두거나, 자주 사용하여 세균이 적응하게 만들거나, 너무 많은 양을 써서 내성을 가진 세균을 증가시키지 않도록 적절한 양을 적절한 기간 동안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항생제에 내성이 발생하면 그 항생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되고 더 강력한 또 다른 항생제가 개발되어야 한다. 최초의 항생제를 개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본과 시간이 소요되었는지 보면, 지금 우리가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당연하게 존재하던 약의 당연하지 않은 역사를 생각할 때 좀 더 신중하고 분별있는 항생제 사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 이후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이 책도 제목만 보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책이라 오해했다. 현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항생제의 탄생 과정을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상세히 밝혀주는 고마운 책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기적같지 않은 과정으로 기적처럼 항생제가 나타났 듯, 현재 전세계에서 동시 다발로 이루어지는 연구 개발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도 정복할 수 있는 마법 탄환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첫 기적의 약물 설파제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과학에는 사실 ‘기적’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다. 대단한 약물이 발견될 때마다 두 가지 상반된 결과가 따른다. 하나는 긍정적이고 치유적이고 이로우며, 다른 하나는 부정적이고 종종 의도와 다르고 이따금 치명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 우리도 명심해야 한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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