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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에티켓 -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당신의 마지막에 관하여, 개정판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6년 6월
평점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죽음의 에티켓"
비로소 죽음에 대한 인간의 예의를 만나다.
책은 죽음이 시작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곧이어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쓰여 있다.
P.12 "인간은 평생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걸 부인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실 죽음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죽음일 뿐, 단 한번도 당신의 죽음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을 보지 않고 회피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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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본 죽음은 새엄마의 죽음이었다.
세상의 생과 사의 묘한 에너지에 정신적 성숙을 거치던 단계였음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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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의사는 어느 때부터 희망을 완전히 버릴까요? 어느 시점에 적용 가능한 모든 치료법이 소용없게 될까요? 정확히 언제 중환자는 임종 환자가 될까요?
P.84 경계를 넘는 것은 뭘까요? 호흡 한 번? 아니면 그 직후? 심장박동? 그 후의 정지 상태? 죽음의 특징 중 하나는 죽음이 딱 어느 순간에 시작되었는지 그 정확한 시점을 규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새엄마는 담낭암이셨는데 6개월간 병원에 계시다가 어느 날 퇴원을 하시고 집에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날 돌아가셨다.
사람의 죽음을 처음 본 나는 무서웠고 충격이었고 신비했다. 생명이 끝에 닿으면 한 번에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점차 하나씩 꺼져가는 게 느껴진다. 온기가 식어가고 동공이 빛을 잃고 몸이 축 늘어진다.
생명이 없어지는 그 순간은 시공간이 바뀌는 느낌이다. 울고불고 잡으려 해도 생과 사의 경계가 눈에 보일 때, 소름이 끼친다. 분명 내 목소리, 가족들 목소리, 주변의 소리들은 들리는 게 느껴진다. 다른 기능들은 서서히 멈춰가는데 청각은 가장 나중에 닫힌다는 것을 그때 몸소 느꼈다.
새엄마는 2012년 5월 초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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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제일 먼저 사라지는 감각은 후각인데, 죽는 순간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라지기 시작해서 미각과 함께 없어집니다. 뭘 먹는다는 행위는 당신을 잃지 않으리라는 가장 명확한 상징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마지막 상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오랜만에 밖에서 가족 식사를 했다. 새엄마는 도통 식사를 하시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하셨다. 나는 아프시니까 소화가 안 되니까 못 드시는 건데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시는 건지 이해가 안 되면서도 이해가 됐었다. 먹어야 살아나는 걸 아니까...
P.70 당신은 먹지 않아서 죽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죽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입니다.
P.71 하지만 죽음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죽음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한 부분입니다.
P.93 각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저 사망자들입니다. 누구나 홀로 죽는다는 것. 그의 죽음은 유일무이한 사건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의 역설입니다.
P.108 지금 막 생명 하나가 꺼졌습니다. 남겨진 이들은 이 사실과 싸우는 중입니다. 이 상황에 맞는 적당한 표현을 찾는다면 '추락' 같은 단어가 떠오릅니다.
정신없는 와중에 장례를 치르고 여러 행정 절차들을 밟아야 한다. 장례식장은 어디서 할지, 관은 어떤 걸로, 수의는 어떤 것으로, 유골함은... 너무 슬프고 힘든 와중에 선택할 것들은 너무나도 많고, 정신이 하나 없이 몽롱한 3일이 흐른다.
입관식에는 시신에 염을 하는데 시신은 밀랍인형 같다. 영혼이 나간 육체를 보고 있으니 이상하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다.
발인을 한다. 영정사진과 관을 운구차에 실어 나른다. 그리고는 화장장으로 간다. 관은 뜨거운 불에 태워진다. 몇 시간 후 고인은 흰가루가 되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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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0~141 당신의 의지를 미리 분명히 해 놓지 않은 경우라면, 법이 정한 시신에 대한 결정권은 배우자, 자식, 부모 순으로 갖게 됩니다. 당신은 어느 장소에 묻히기를 바랐나요? 어쩌면 아무도 그걸 모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살아있을 때 한 번도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돌아가시기 전 새엄마는 절에도 가시고 교회도 가시고 성당에도 가셨다. 특정한 종교를 두고 살아오시지 않으셨다. 나랑 같이 성당에 갔을 때는 많은 금액의 헌금을 내셔서 놀랐었다. 그만큼 두렵고 무서우셨던 것이겠지... 뭐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간절한 맘이셨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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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례식에는 나를 생각해주고 아껴주던 이들이 오길 바란다. 그날의 추모식은 많이 슬퍼하지 말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전에 나는 구름과 산, 나무, 자연을 보며 훗날 자연의 일부가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수목장을 했으면 좋겠다.
남겨진 이들 중 제일 걱정되는 것은 아무래도 딸이겠지.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그들은 당신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을까? 충분히 느끼고 있을까? 난 무엇을 하지 않은 걸 후회하고 어떤 것을 자랑스러워 할까?.. 이 마지막 두 질문은 앞으로 계속 생각해봐야겠다.
이 책은 모든 인간의 마지막 여행, 애도와 장례, 시신의 물질적 귀추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진지하고 날카로우며 유니크한 사색으로 독일 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이 죽으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죽음은 언제 시작되는가? 죽음의 길은 어떤 경과로 진행되는가?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항상 죽음을 염두해두며 살아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매 순간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하면서 살려고 한다.
그런데 또 딜레마가 생긴다. 이렇게 내 이야기를 SNS에 남기다가 언젠가 내가 떠나면 이 기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 될 수도 있겠지. 일상에 젖어들어 물건에 욕심부리고 많은 것들을 사고 탐내고, 그런 것들을 브레이크 밟자. 물건도, 욕심도, 마음도 수시로 정리하자. 곧 이사도 가니 옷과 짐부터 비워야겠다. 산뜻하게 깔끔하게 깨끗하게 가고 싶으니.. 적어도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