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곁에 있기 - 취약함을 끌어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돌봄의 세계들
고선규 외 지음 / 동녘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참 따뜻하다. 근데 내 서평은 좀 무거워질 것 같다. 누군가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은 쉬운것 같으면서도 어렵고 때론 힘이드는 것 같다. 누군가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은 상대와 함께 삶을 버텨내고 상대의 감정이 내게 전이되며 그 감정을 오롯이 받아내는 것 같다. 


책 제목을 보고는 누구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책표지상에 나와있는 장애인을 뜻하는 가? 어르신들을 뜻하는 것인가? 동물을 뜻하는가? 아이들을 뜻하는가.. 아니면 가족? 연인?..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며 궁금한 책이고 왠지 모르게 끌렸다.


이 책의 6명의 사례들을 읽고 나는 그동안의 내인생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돌봄에 관한 기억들과 누군가들이 생각 나서 책을 읽고 내 사례를 풀어내는 내 스타일의 서평을 쓰기가 조심스럽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자세한 내막들을 설명할 순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터치해가본다.


먼저, [취약함과 다시 관계 맺는 삶]에서 나온 이야기와 같이 내게도 가까이에 인지저하환자이신 분이 계셨다. 내가 미국에 있었을때 미국인이셨던 이모부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돌아가시기 몇년 전부터 인지저하환자이신 190이 넘는 키의 할아버지가 버겁다고 느끼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우리는 시간날때마다 요양병원에 계신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찾아뵐때마다 마음은 착잡했고 안좋았다. 당연히 침상에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할아버지께서 끼고 계셨던 반지나 여러 물품들이 매번 없어졌다. 그때 일부의 요양병원이 어떤곳인지 알 수 있었다. 최대한 할아버지께서 편안한 대접받으시길 바라며 간호사나 보호사들께 팁도 많이 줬던것 같다. 그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였다. 항상 마음이 속상하고 찜찜했지만서도 집에서 모실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 나도모르게 그런 마음을 회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어렴풋이 인생의 말로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두번째 사례로 또 우리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 몇년간 요양병원에 계셨다. 어릴때 미국에서 다닐때도 마음이 안좋았지만 한국에와서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할아버지를 찾아뵐때마다 고통스런 기분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계신 병실에는 죽지못해 누워계신, 죽음을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 일렬로 침상에 누워 계셨고 그 풍경은 참 암담했다. 너무너무 속상하고 슬프고 안타까운데도 어찌할 수 없었던 현실속에 나는 또 회피하는 마음을 배웠다. 

세번째 사례로 몇년전 우리 할머니께서 잠시 편찮으셨던 시기가 있었다. 육체가 아프니 정신적으로도 힘들어하셨는데 할머니를 전담해서 돌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요양병원에 모셨고 한동안은 요양병원에 계셨다. 나는 엄마에게 할머니 집으로 데려오자고.. 할머니 내가 돌보겠다고, 겁없는 (사실 겁 많았다. 그러나 앞서 겪었던 두분의 할아버지를 보고.. 몇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힘듦의 마음을 느껴서인지..) 말을 했다. 지금은 다행이도 몸도 마음도 많이 건강해지셔서 다시 집에서 잘 지내시고 계신다. 


P.64 할 수 없다는 결과보다 할 수 있다는 의지에 방점을 찍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관계를 맺어가자. 삶을 쌓아가자. 일상을 보완하자. 마음속에서 무언가 서서히 달궈지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는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볼 수 있겠다는 용기였다. 


이 부분을 읽는데 내마음이 놓였다.

저자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가 다시 집으로 모셨다. 


 그러면서도 p.78 내적인 힘을 위해서는 돌봄관계에 심리적 거리감을 두어야 한다. 심리적 거리감은 아픈 사람을 두고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이 아니다. 소진되지 않고 돌봄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핵심이다. 심리적 거리감 없이 돌봄받는 사람과 나를 동일시하면 '나'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부분을 읽고 내가 첫번째 두번째 사례에서 표현했던 '회피하는 마음'은 심리적 거리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타인의 감정을 쉽게 전이받는다. 그래서 다른사람의 고통이나 슬픔이 바로 흡수되어 버려서 더 힘듦을 느끼는데 내게 필요한 것은 심리적 거리감이었다. 이기심이 아니라 내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었다. 죄책감이 들던 마음이 조금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P.76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 그게 삶이지.' 나의 취약함과 잘 관계 맺을 때 타인의 취약함과도 잘 관계 맺을 수 있다. 자신을 잘 돌봐야 타인도 잘 돌본다. 자기돌봄이야말로 더 나은 모든 것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러니 무언가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자신부터 돌봐야 한다. 내가 돌봄의 시간 속에서 익힌 가장 투명한 진실이다.


12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새엄마도 생각났다. 

갑자기 암선고를 받고 딱 6개월동안 병원에 계시다가 집으로 퇴원한 날 돌아가셨다. 병원에 계실때 나는 공시생이었어서 나밖에 그나마 여유로운(?!)자유로운(?!) 사람이 없었다. 새엄마의 병간호는 나의 몫이었다. 바로 옆에서 63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새엄마의 고통과 아픔을 다 보고, 생 살에 갈고리 바늘 끼워넣는.. 사람이 마치 짐짝 같은 느낌을 받는.. 몇시간이고 등 문질러 달라는 (담낭암은 등쪽에 고통이 온다).. 점점 야위어가는 모습을 보는 나도 죽을 맛이었다. 간호하고 저녁에 다른 가족과 바톤터치하고 집에 오면 코피가 나고 지옥같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각자 몫의 눈물단지를 채울 수 있도록] 챕터에서는 사별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P.100 일상에서 분리되어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추락한 것 같다


P.102 사별전과 완전히 다른 시간과 공간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구토가 날 정도로 어지러운 느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 같은 것들이다. 


죽을을 맞이할때 느껴지는 감정을 잘 서술해놓았다. 나는 새엄마께서 돌아가셨을때 처음으로 죽음을 바로 옆에서 보고 느꼈다. 정말 저 감정들이 맞다. 세상을 뜨기 직전과 직후를 보면서 정말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추락한 것과 같이  뭔가 다른 차원이 있다는 걸 느꼈다. 처음으로 느껴본 충격적인 감정이어서 그런지 장례를 치르면서도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시기는 이때였다. 돌봄을 제대로 해보았다고도 말 할 수 있는 시기다. 얼마나 돌봄이 쉽지 않고 힘든일인지... 그러나 그 후에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느낌은 얼마나 큰지 안해본 분들은 모를 것 같다. 


[다음에 만나도 정신질환자겠지만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챕터에서는 그동안의 연애 관계가 떠올랐다. 


P.204 관계를 논할 때, 사람들은 흔히들 관계가 공평하기를 바란다. 주고받는 비율이 비슷하길 원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일 듯하다.... 받아본 사람이 실천할 수 있다... 모든 걸 내어주고 그것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불균형'한 상태가 때로는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공평한 관계이길 바랐지만 더 퍼주는 연애를 했던것 같다. 근데 나이가 먹고는 오히려 사랑을 주는게 행복이다는 느낌을 까먹고 있었다. 재고 따지고 내가 이정도 했으면 너도 이정도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점점 살아왔던것 같다. 모든 걸 내어주고 그것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글귀만 읽더라도 마음이 따뜻해지는걸 느꼈다. 


이 챕터의 저자는 정신질환자라고 한다. 근데 나는 이 부분의 내용이 정신질환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같았다. 어찌보면 정상인이라고 하는 우리들도 크고 작은 미세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특히나 이 챕터는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많았다. 


P.205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보면 다른 지평이 열린다. 미래의 변수에 대한 수용성과 유연함을 더 많이 배양한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불행한 경험이나 나쁜 상황을 겪어냈다는 것이다.


P.207 모든 관계에는 약점이 있다. 깨져버린 부분이 회전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람들은 저 구슬은 이미 깨졌군, 하며 다른 관계를 찾는다. 하지만 그 조각난 부분이야말로 정신질환자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는 우리의 일부이다. 그 조각들은 살면서, 시간이 흐르며, 관계가 깊어지며, 긴밀한 사이가 되고 서로 도우면서 생겨나는 새로운 결정들로 채워진다... 내가 손해를 본 오늘이 훗날의 보살핌받는 미래가 될지 모른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의 상흔을 이해하게 된다.


P.209 서로 상처를 주면서 다퉜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자신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이해하게 되었다...우리는 비슷한 궤도를 도는 우주의 물체처럼 한 시기를 공유하고 있다.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P.213 잔잔한 걱정과 상대를 챙기는 마음, 배려와 다정함이 있을 뿐이다. 그건 아마 관계 속 거의 모든 것에 스며들었을 터였다. 비가 고르게 내리지 않는 것처럼, 어느 부분은 진하고 어디는 연하지만 내게 깃든 살피는 마음은 관계이후에 색이 바래지더라도 원형을 찾을 수 있다.


P.214 빗물이 고르게 고이지 않는 것처럼 어떤 곳은 깊은 웅덩이고 어떤 곳은 덜 젖은 땅이었지만, 서로에게 스며든 살피는 마음은 관계를 지속시키는 강한 동력이 되었다. 점점 솔직해졌고, 얼룩덜룩한 면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던 관계였다. 우리는 관계의 '가성비'를 따지지 않았다. 노력의 가성비나 효율 같은 것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상대가, 내가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P. 215 한사람이 50퍼센트가 아닌 100퍼센트를 다할 때 다른 사람은 그것을 비로소 진정 어린 돌봄으로 받아들인다. 할당받은 분량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 돌진해야 우리는 상대가 자신에게 진심임을 깨닫는다.


스며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스며들어 그 누군가가 내옆에 있는게 당연해 지는 것이 두렵다. 없어지면 오는 공허함과 상실감, 고통이 크기때문이다. 


스며드는 것에 대항할 것이 떠올랐다. 

그 누군가에게 진심 100%로 다가가는 것. 내 마음 다해 온전히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세심하게 배려하고 사려깊게, 품어주고 사랑한다면 스며듦 이후에 어떤 상황이 와도 후회할 일이 없을 것 같다. 


P.215 '손절'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타인에게 감정노동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요즘, 불필요한 사회활동을 낭비로 생각하며 소위 소시오패스 같은 것이 되길 선망하는 사회인 지금, 나는 여전히 전력을 다해 돌진해야 진심임을 깨닫는 낡은 방식을 고수한다. 


뜨끔했다. 타인에게 감정노동하기 싫다고 얼마전에 얘기했다. 감정낭비 시간낭비 하기 싫다고... 특별히 타인과 접점이 없으면 만남이 필요할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감정낭비 안하고 불필요한 만남은 안하는 것이 쿨하고 깔끔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근데 문장으로 읽으니,  혹여나 나에게 진심이었을 타인에게 (물론 아무나, 아무에게나 다 받아준다는 게 아니라.. ) 뭔가 나와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감정낭비, 시간낭비하는것이 싫다라며 차단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마음이었을지 느껴졌다.


P.218 장기적인 관계를 희망할수록 서로가 '안정성'을 담보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관계에 있어 많은 경우 직접 솔직히 말을 전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추측이나 짐작 등을 피하고, 말을 돌리지 않고 최대한 직설적으로 묻는 것도 갈등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다.


P.219 우리는 갈등을 만드는 요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P.230 관계가 깨지고 망가지는 이유는 한쪽의 명백한 잘못 때문이 아니라, 서로 조율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한 번 실패한 구도의 관계를 다시 만들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관계를 지속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알려주었다. 나도 여러관계들을 통해서 얻은 통찰들이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들이 맞았다고 느꼈다. 최대한 솔직하게 전달해야 하며 추측이나 짐작은 하지 않는것이 내 자신에게도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서로가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가 중요한것이며, 회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잘 조율해 나가는 것이 서로를 단단하게 결속시키고 더욱 성장시킨다. 


관계에 있어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적당히 알려줘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P.233 "자신을 보살피는 존재에게 어떤 기분이 듭니까?" 인터뷰 대상의 100퍼센트가 "고맙다"와 "감사하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정말로 보살피는 상대에게 감사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마움과 감사함 이외에 우리가 돌봄을 받는 데서 느끼는 풍부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쩌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이들은 반사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고마움'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공감했다. 타인이 나를 위해, 보살펴주고 돌보아 주는 것에서 느끼는 감정은 당연 감사함 고마움이지만 그 외에 표현하지 못할 설명하지 못할 찡한 감동과 감정을 느낀다. 곁에서 상황을 함께 견디고 이겨내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것이 느껴지는 순간인건가.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돌봄'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희생'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돌봄'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사랑'이다. 특히 사랑중에서도 상위범주.. 


이 서평의 처음에 말한 누군가는 장애인이 될 수도, 인지저하환자가 될 수도, 사별자가 될 수도 정신질환자가 될 수 있으며, 우리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우리 부모님이, 친구가, 아이가, 연인이 될 수 있다. 즉, 돌봄은 누구에게나 해당이 되는 것이고 지금 당장이 아닐지라도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세상이 서늘해지며 점점 '돌봄의 사회화' 시장화로 이어지는 형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 돌봄의 본질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동녘 출판사에서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