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섬 환상책방 12
이귤희 지음, 박정은 그림 / 해와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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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없다.

 

나중에 나중에, 집을 사면 그때 행복해질 것이다. 그네 매달고 마당에서 강아지 기르고 화단 가꾸고 감나무도 심을 것이다. 행복은 모두 집을 사서 이사를 한 그때 이후로 유예하겠다, 라고 말하는 독자가 있다면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이다.

 

이 작품을 읽은 나는 집을 사지 않아도 지금 당장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탈 것이다. 집안에서 기를 수 있는 반려견을 찾을 것이다. 감나무는 포기하고 베란다에 작은 화단을 만들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 국내의 소소한 나들이를 포기하거나 유예하고 있다면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일 것이다. 세계여행이라니, 그런 거창한 꿈은 필요 없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지금, 이번 주말에 당장 아이와 함께 놀이동산에 갈 것이다.

 

놀이동산에서 느릿느릿 열차를 타고 빙글빙글 목마를 타고 비누방울을 만드는 마술사를 만나고 얼음궁전에 들르고 피에로의 풍선을 얻어 팔에 끼울 것이다. 가족들과 그렇게 즐거운 하루를 보낼 것이다. 소떡과 우동을 사먹고 분홍분홍한 솜사탕을 녹여 혓바닥을 만든 후 우리중 누구 혀가 제일 빨간지를 내기할 것이다. 하하호호 깔깔깔 요란한 웃음소리까지 다 찍히는 사진을 아낌없이 찍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을 소중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그러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누군가가 먹이를 주고 그것을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안온한 삶은 좋은 걸까 좋지 않은 걸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 이 삶의 하루인 오늘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작가는 고양이 인생(묘생)에 대해 썼지만 사실 이 작품은 우리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양이 이야기로 은유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쉽게 이입된다. 더 절박한 느낌을 얻는다. 

 

작품에 나오는 여러 캐릭터들도 실상은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고약한 행동의 나쁜 캐릭터조차도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모두 이해가 되고 애틋해진다. 어쩌면 내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많은 슬픈 일을 겪고 나서 고양이섬 따위는 필요 없다. 난 그냥 여기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겠다라고 말하는 벨이 이해된다. 절반의 포기와 절반의 희망으로 지금 서 있는 여기에 뿌리 내리려는 벨, 정글같은 세상을 슬프고 따듯하게 바라보는 벨에게 완벽하게 감정이입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도 또한 따듯하고 약한 존재였다. 슬픈 일을 겪으면서 강해지고 나이 먹으면서 더 지혜로워지는 존재였다. 이귤희 작가의 '고양이섬'에 나오는 고양이, 고양이들처럼…….

 

재미있고 슬프고 따듯한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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