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이런 책을만들고 나면 딱 천 마리의 학만 접어 선물 듯한 기분이 든다. 학을 더 이상 접을 수 없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것은 물론이다.
- P197

더 넓고 얕은 물에 있는 독자들을 만나겠노라고 생각한다. 낚싯대를 던져 한마리의 큰 물고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그물을 넓게 쳐 멸치 떼를 끌어올리듯 한꺼번에 많은 독자를 건지길 바란다.
- P153

이른바 명문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이가 이력서를 냈다.
기출 문제에 대한 정답 같은 삶만 살아온 듯한 지원자에게 우리는 큰 기대를 걸었다.  - P106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오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류를 인정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일을 배우고 있다.
- P102

내가 태양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한 발짝 물러나 햇빛이 모든 사람과 만물을비추도록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생명의 빛으로 만물을 무르익게 할 수 있다는 것.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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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작아시모프Isaac Asimos(1920-1992)의 원칙이라 부르는 그것은 그가 쓴《틀림의 상대성 Relativity of Wrong》 (1988)에 이렇게 잘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틀렸다. 지구가 구체라고 생각했을 때, 그들도 틀렸다(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는 뜻이다 - 옮긴이). 하지만 당신이 지구가 구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과 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두 집단을 합친 것보다 더 틀린 생각을 가진 것이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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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로 찍어도,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도, 삶은 결국 증발한다.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해 몇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넷플릭스에 공개한 인생이라 해도 예외는될 수 없다. 비록 싸구려 커피는 그 당시의 즐거움을 잃었지만, 나의 일상에는 비슷한 즐거움이 얼마든지 남아있다. 굳이 카메라로 찍고 온라인에 업로드해 많은 이들과 공유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종류의 즐거움 말이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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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대비할 수 없는 것. 즉 무지가 곧 공포다.
- P205

볼 때마다 백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풀어야 되는 기분을 느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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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내가 하는 일에 비해서는 많이 받고, 내가 할수 있는 일에 비해서는 너무 적게 받는다"고 했다는데, 적어도 앞부분 절반은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 같다. 간혹 강연이나 방송 출연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땀을 흘린 대가가 아니라 나를 판 대가로 돈을 번 게 아닐까 의심에 빠진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잃는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더 그렇다. - P223

과연 어떤 책이 최후의 순간 나의 간택을 받을 것인가? 내가 쌓아 올린 ‘읽지 않았지만 읽고 싶은 책들의 왕국‘에서는 내가 왕이고 대통령이고 슈퍼스타다. 메모 앱 문서의 목록을 훑어볼 때면 좋은 책들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온다. 자신을 읽어달라고, 그런데 이 왕국에서 나는 상당히 ‘나쁜 남자‘라, 별 이유도 없이 유력 후보들을 물리치고 우연한 즉석만남을 즐기기도 한다. - P234

흔히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는 말을 한다. 어떤 책을 읽고 특정 주제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책을 읽고, 거기서 또 다른 책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책이 책을 부르며 앞이 넓어지는 선순환을 일컫는다. - P243

책과 독서 문화의 미래에 대해 나는 비관적 긍정이랄까 낙관적 체념이랄까, 그런 상태다. 책이라는 매체에 대해서는 분명한 믿음이 있다. 길고 복잡한 의미를 전하는 도구로 이보다 충실하고 효율적인 수단은 없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책이 멸종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거 같다. 일간지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내 커리어에 대해 "망하는 업계에서 망하는 업계로 이직했다"고 농담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내심 빨리 망하는 업계에서 천천히 망하는 업계로 옮겨왔다고 생각한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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