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찍어도,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도, 삶은 결국 증발한다.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해 몇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넷플릭스에 공개한 인생이라 해도 예외는될 수 없다. 비록 싸구려 커피는 그 당시의 즐거움을 잃었지만, 나의 일상에는 비슷한 즐거움이 얼마든지 남아있다. 굳이 카메라로 찍고 온라인에 업로드해 많은 이들과 공유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종류의 즐거움 말이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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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대비할 수 없는 것. 즉 무지가 곧 공포다.
- P205

볼 때마다 백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풀어야 되는 기분을 느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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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내가 하는 일에 비해서는 많이 받고, 내가 할수 있는 일에 비해서는 너무 적게 받는다"고 했다는데, 적어도 앞부분 절반은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 같다. 간혹 강연이나 방송 출연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땀을 흘린 대가가 아니라 나를 판 대가로 돈을 번 게 아닐까 의심에 빠진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잃는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더 그렇다. - P223

과연 어떤 책이 최후의 순간 나의 간택을 받을 것인가? 내가 쌓아 올린 ‘읽지 않았지만 읽고 싶은 책들의 왕국‘에서는 내가 왕이고 대통령이고 슈퍼스타다. 메모 앱 문서의 목록을 훑어볼 때면 좋은 책들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온다. 자신을 읽어달라고, 그런데 이 왕국에서 나는 상당히 ‘나쁜 남자‘라, 별 이유도 없이 유력 후보들을 물리치고 우연한 즉석만남을 즐기기도 한다. - P234

흔히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는 말을 한다. 어떤 책을 읽고 특정 주제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책을 읽고, 거기서 또 다른 책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책이 책을 부르며 앞이 넓어지는 선순환을 일컫는다. - P243

책과 독서 문화의 미래에 대해 나는 비관적 긍정이랄까 낙관적 체념이랄까, 그런 상태다. 책이라는 매체에 대해서는 분명한 믿음이 있다. 길고 복잡한 의미를 전하는 도구로 이보다 충실하고 효율적인 수단은 없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책이 멸종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거 같다. 일간지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내 커리어에 대해 "망하는 업계에서 망하는 업계로 이직했다"고 농담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내심 빨리 망하는 업계에서 천천히 망하는 업계로 옮겨왔다고 생각한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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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백포도주를 홀짝거렸고 나는 맥주를 들이켜면서 기다렸다. "다 됐어요. 촛불을 켜세요."
- P191

어떤 번지르르한 어구를 사용한다 해도 죽음은 보편적으로 평화롭게(자다가) 혹은 용감하게 싸운 뒤에 (암) 일어난다.
한 번씩 여자들은 남편을 잃는다(내가 그 사람을 어디에다 두었더라?), 어떤 표현들은 활자체로는 그리 흔히 쓰이지 않는다. 데이지를 밀어 올리다 Push up Daisies (‘죽어서 땅에 묻히다" 라는 뜻을 가진 영어 표현 옮긴이), 양동이를 발로 차다Kick the Bucket (스스로 목숨을끊다‘, ‘죽다‘를 속되게 이르는 영어 표현_ 옮긴이), 거꾸러지다Croak (‘죽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 옮긴이), 농장을 사다 Buy the Farm (‘죽다‘라는 뜻을가진 영어 표현 옮긴이), 현금으로 바꾸다Cash in One‘s Chips(‘죽다‘라는뜻을 가진 영어 표현_옮긴이). 모든 완곡어법은 우리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숨이 막히면서 푸르게 변하는 것을 감추어준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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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헷갈린다. 40년쯤 비슷한 표정을 짓고 한 말투를 사용하다 보면 거기에 정말 그 사람의 정수가 스며들게 되는걸까? 나로 말하자면 첫인상 때문에 오해한 사람의 진가를 나중에 깨달은 적이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의 진심이나 역량을 단숨에 간파하는 능력보다는, 표정이나 목소리로 상대를 판단하려 들지 않는 신중함과 겸손함을 얻고 싶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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