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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이 말은 영원한 혁명가로 기억되고 있는 체게바라가 한 말로 비겁한 삶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는 의미를 전해준다. 그 의미를 주인공 인서는 자신의 자퇴서에 씀으로써 결연함을 전해주고 있다.
우리 소설의 정체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함을 갖게 한다. 우리 국문학의 태두인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밝혀내고 나서 오히려 학업을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던 한 대학원생의 이야기. ‘이명원 사태’가 소설 속의 이기라는 것, 당시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음에도 은밀히 정리되었던 이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선학의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 얼마나 금기시되어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는 저자의 말에 부와 명예, 권위에 대한 도전은 무모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해졌다.
이 이야기에서 ‘김윤식 교수 표절 사건’의 중심인 김윤식 교수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주변 인물을 통해 그가 우리 문학의 커다란 봉우리로 100여권의 저서를 집필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존경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그는 학계에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할 권위와 명성을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막강한 권력자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논문 표절을 밝힌 사람은 이인서이다.
인서는 대학4학년 때 논문을 쓰다가 우연히 김윤식 교수의 표절을 알게 되었고 학문적 의지로 그 사례를 논문에 실어 발표했지만 교수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히려 그를 아비를 죽이는 못된 자식으로 몰아갔고 박사시험에서도 탈락하는 결과를 갖게 했다. 그 후로 인서는 대학원에서 조교 생활을 하며 틈틈이 짬을 내어 비평글을 쓰는 것으로 보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대학생 문학상 비평부문에서 당선 된 후 문학비평가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김진현 기자는 정치성향이 짙은 ‘말’잡지사의 기자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해야 하는 기자의 몫을 해내고 있다. 겉보기와는 달리 살아있는 눈빛으로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그 눈빛에 걸린 것이 바로 ‘김윤식 교수 표절’이었다. 예전부터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았었는데 그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 그 사건을 밝힌 사람이 이인서라는 것을 알고는 기사를 쓰기로 한다. 그래서 인서의 대학선배로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장세영 사장을 통해 논문을 받아보고 인서를 만나 인터뷰도 하게 된다.
인서와 함께 대학생 문학상에서 소설 부문에 당선했던 정세영 사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성에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바른 방법으로 책을 출간하는 그는 인서를 통해 김윤식 교수의 표절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타는 혀’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게 된다.
대학교수치고 한 번이라도 표절 안 해본 사감이 어디 있냐는 어느 교수의 말처럼 논문 표절은 대학가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학문을 배우는 과정인 우리들에게도 리포트를 제출할 대 심심치 않게 행해지는 것도. 하지만 표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비단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 이외 우리들 삶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기본적인 자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서 다른 무엇은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서슴없이 표절을 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런 잘못들 바로 잡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우리 주변에는 그렇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현실에 비추어보면 김진현 기자나 정세영 사장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한 순간에 바뀌지 않더라도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감내하는 것은 누군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들 머릿속에 그리는 투명하고 밝은 사회를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그 반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어리석게 보였을 것이다. 김윤식 교수의 표절이 사실이라는 것을 자신들도 알고 있지만 굳이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득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생각처럼 인서는 결국 자퇴를 선언했으니 마음이 개운칠 않다. 그래도 암암리에 학계에서 서로 눈치를 보고 신문사에서는 김윤식교수를 심사위원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은 조금의 여지를 남겨준다.
인서가 현실적으로 닥친 어려움이 앞으로도 계속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것 같은 우려도 있지만 그만큼 그의 의지도 강하리라는 믿음으로 마음을 다스려본다.
책을 통해 들여다본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에 괜히 화가 난다. 적어도 학문을 논하거나 배움의 깊이를 더하거나 창작의 글로 우리의 삶을 정신적으로 넉넉하게 해주는 분야만큼은 뭔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수와 제자간의 넘을 수 없는, 넘어서는 안 되는, 묵시적으로 금기시되어있는 사안들, 그리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계속 이어지는 끊을 수 없는 관계는 배우고 있는 나에게도 적용되고 잇다. 만약 내가 인서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나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감동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나의 이중적인 행동으로 비롯된다고 생각하니 일말의 책임감도 갖게 된다. 나의 감동이 오롯이 삶에 젖어들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들여다 보는 내 삶의 진정함도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