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의 얼굴들 - 철학은 지적장애를 어떻게 보아왔는가
리시아 칼슨 지음, 이예린.유기훈 옮김 / 심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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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였다면 수용시설에 들어갔을 몸상태인데도 무작정 나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성급히 이야기 하는것에 일단 자기자신에게 크나큰 유감을 느낀다.


우리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우리를 대할 때 우리를 어떻게 판단하고 바라보고 있는지 확실히 느낀다. 즉 지나친 판단과 이론적인 접근을 하며 판단하는걸 느끼거나, 그로인해 편견어린 행동으로 무례하게 굴었을떄 상대방이 도덕적으로 무례하게 군다고 장애의 정도가 어떻든 본능적으로 느낀다는 말이다. 


나는 장애인 입장에서 비장애인들이 제 아무리 판단을 하던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최소한의 윤리의식이 있다고 믿는다.


즉, 우리는 판단을 유보하지 않고 보고싶은데로 보고 이론을 성립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상태든 '도덕적으로 결여되있다' 고 분명히 느낀다는 말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결여되있다고 느꼈으면 좋겠는가?)


18~19세기 때 '정신박약인', '백치', '천치' 등으로 수용대상, 장애인들이 판단되고 심지어 동물보다 못하거나 동물과 비슷한 (즉 일반 인간과는 다른 계급의) 수준이라고 무시당했다는 것이 굉장히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수용대상, 장애인들을 판단할 때 장애인들이 그 시선을 모르거나 혹은 그들이 보는 입장이니 구지 알아서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또한 크나큰 유감을 느낀다.


자신의 입에서 말을 뱉거나, 글을 쓰거나, 생각을 할때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뱉고 판단하고, 유보하지 않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느낀다.


즉 입에서 뱉은 말, 생각한 말, 판단한 말은 그 내용이 어쨌던 (특히 말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지나친 판단으로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다면 내가 어떤 판단을 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판단하고 타인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집안에 장애인이 있으십니까?' 묻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편견을 받는 나 조차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창피하고 어이가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으며,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무작정 성급하게 판단, 아니 정의 내리는 이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나 조차도)


나도 이런 가족이나 장애인을 접했을 때 '애정어린 무지'를 실천하는 모범 시민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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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중증 지적상애의 어떤 차원은 철학자 혹은 가족이나 옹호자의 인식론적 이해 범위를 영원히 넘어서는 영역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이를 인정하는 일은 "애정어린 무지"의 한 형태에 관여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는 마지막 두 형태의 무지 (알지 못함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와 알 수 없음 자체를 받아들이는 무지) 사이의 긴장은 중증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제기하는 도전과 교훈의 일부를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들과 가까운 애정어린 형태의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흥미로운 사실은 권위, 겸손, 그리고 인식적 책임에 대한 재고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억압에 맞서 싸우고 지적장애 당사자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맥락에서 무지를 되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잠재적으로 위험한 개념이다. 철학적 맥락에서 얼마나 기이하게 들리는 표현인가. 또한 인식론을 연구하는 학자에게는 얼마나 터무니없는 구호인가. _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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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나에게 힘든건 질환이 아니다, 남이 나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이다. 나는 내 질환 자체에 대해 어느 면에서든 부정적이고 뼈아픈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건 그저 시선과 판단, 태도, 말,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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