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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선 버뮤다
범유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4월
평점 :
가족이라고는 진월이 하나뿐인 진양, 돌봄센터에서 일하면서 동료들에게 동정당하고, 심지어 황세정이라는 동료는 대놓고 욕하기까지 한다. 국회의원의 아들인 박태석이 잘해준다는 이유다. 3개월 전 진월이 응암역 개찰구 앞에서 어느 남자의 흉기에 찔려 죽었다. 그 후 법원의 사형 구형을 기다리고 있다. 6호선 응암역에서 겨우 내려 일어나려는데 왠 무당한복을 입은 여자가 못가게 붙잡고 아끼는 삼각김밥 인형을 내놓으라며 난리다. 결국 인형은 되찾았지만 나가보니 죽었던 진월이 나와있다. 4월 15일, 진월이 죽었던 날이다. 진월이 살아있다 진월을 살려야한다. 16.. 17.. 18.. 3개월 전후로 매일매일 돌아가며 응암역앞에서 운명을 바꾼다. 돌아오면 내가 바꿔버린 또다른 현재로 돌아온다. 이 어이없는 상황은 뭘까,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사랑하는 내동생, 진월을 살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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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집착‘, ˝도저히, 난 너밖에 없어서 널 놔줄 수 없어˝ 그게 과연 사랑일까.. 진양은 죽은 진월을 놓지 못한다. 아버지는 엄마가 의문사로 죽은 후 계속해서 새로운 여자를 데려오고, 이젠 새장가를 들기위해 죽은 진월의 보험금을 달라며 너네집 전세금이라도 빼라고 한다. 매일매일이 두통의 연속이다. 나도 동생을 잃지 못하고, 세상은 동생만 찾고, 나는 동생을 잃은 불쌍한 년이며, 모든 위로는 동생 위주로 한다. 심지어 아버지도 죽은 동생의 돈을 노린다. ~딸, ~아들 ~의 언니 ~의 오빠 ~동생.. 한국에서 중요시 여기는 이런 가족관계의 호칭들이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고 옥죄어 온다. 심지어 나도 그에 편승해 잃은사람을 잊지 못하고 그 안에 메어산다. 그렇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는 또 얼마나 잔혹한다. 그냥 위로할 말이 없는것이다. 너 참 불쌍하다고 할 수가 없어서. 누군가는 가족의 죽음으로 장례비를 뜯어내려하고 보험금을 달라그러며 돈을 노리기도 한다. 모든 것은 살아남은 사람의 몫이다. 시선도 돈도, 동정도 모두. 우리는 ‘우리‘에서 ‘나‘가 되려고 해야만 한다. ‘나‘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누군가의 호칭이 되기보단 나 자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우리자신도 다른사람들을 누군가의 속칭으로 보면 안된다. 그 사람은 그저 그 사람이다. ‘나‘는 가족의 죽음에 어느 무엇도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내 죽은 가족의 과거를 빚어줄 수 없다. 살아있는 동안 ‘나‘라는 주체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못해줬다고 무슨 욕을 먹들 최선을 다한다 하여 그것이 최선이겠는가. 개인을 개인으로 보는 사회, 그 기준을 잃을 때 한국식 오컬트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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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뮤다 삼각지대에 대해 생각한다. 1945년 실종되었던 이들은 그때 갓 성인이었다 해도 살아 있다면 백 살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거다. 그들을 기다리던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도 기다릴까? 아니면 실종된 이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까? 언젠가 사라진 이가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다녀왔어˝ 라고 인사하는 날을 꿈꿀까? 그 꿈을 꾸는게 행복할까? 아니면 그 꿈조차 잊어버리게 될까? _ 194
나는 범인의 팔다리를 누르는 경찰의 옆을 지나, 우산을 쓴 인파 속으로 향했다. 이젠 집에 가면 진월이 있을 거다. 오늘이 지나도 죽지 않고 내일을 맞이할 거다. 나와 함께. 이야기의 끝은 ‘자매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좋은 법이다. _ 104
나쁜 호랑이는 우물에 떨어지는 정도로는 안대. 해와 달이 영원히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영양분이 되어줘야지. 근데 언니, 우리가 주인공인 이 이야기를 언니가 지은 게 아니면 누구야? 누가 우리를 위한 해와 달의 이야기를 만들었어? _ 084~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