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황진순 지음 / 가하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내내 흡족함을 느끼게 했던 황진순 작가의 <그림자>. 대개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재벌가의 딸과 달리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해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수완과 오직 수완의, 수완에 의한, 수완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수완의 그림자 휘건. 두 사람의 일편단심 강렬하고 강인한 사랑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없는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 짙은 소유욕은 부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  

  <그림자>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정통 로설에서 벗어난 듯한 남녀의 구도였다. 수완과 휘건, 두 사람 사이에서 굳이 강자를 고르자면 단연 수완이다. 탄탄한 뒷배경을 지니고도 있지만 외모, 능력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수완은 지금껏 모든 것을 제 힘으로 이뤄냈다. 누군가에게 굴복해본 적도 없고 정상에서 사람들을 명령하는데 익숙한, 마초적인 성격의 여자이다. 재벌가의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그 누구보다 제 할아버지를 닮아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그녀를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녀의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직 제 능력으로 젊은 나이에 백화점 대표이사의 자리까지 오른, 사업에 있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수완이기에. 그런 수완은 휘건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우위에 있다. 사업적인 일에서만큼은 제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면서 휘건과 함께 하는 사적인 시간에는 온전히 그에게 대접받길 원한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다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이기심이 있기에 그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어떠한 장애물에도 굴복하지 않고 제 사랑을 지킬 줄 안다. 지극히 여성스러운 외모와 달리 거칠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 수완.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어서 이 글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보통 남녀 주인공 중 한 캐릭터가 강하면 다른 캐릭터가 그에 밀려 묻히곤 하는데 <그림자>는 달랐다. 강하고 매력적인 수완만큼이나 강인하고 남자다운 휘건, 그는 결코 수완에게 밀리지 않는 멋진 남자였다. 경호 팀장으로서 수완의 그림자인양 그녀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는 그는 그 누구보다 수완을 사랑할 뿐 아니라 소유욕도 강한 남자이다. 수완에 비해서 배경이 밀릴 뿐이지, 그 외에는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그. 조각 같은 외모와 몸매에 예의 바르고 성격 좋지, 능력 있지 싸움도 잘하는 휘건은 그 누구보다 남자답다. 그런 그가 수완 앞에서만큼은 한 없이 약하다. 파워면에서 약한 게 아니라 그저 제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져주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수완이 싫어하는 건 하기 싫고 수완에게 상처 되는 일은 하고도 싶지 않은 그야말로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수완 바라기인 그의 모습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제 여자밖에 모르는데다 소유욕 짙은 절륜남인 그를 그 누가 사랑하지 않을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네가 백날 날뛰어봐야 휘건 형 손바닥 안이란 말이지. 형이 얼마나 약았는데.” 

-<그림자> 272쪽 中 민완의 대사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수완과 휘건 두 사람 중 수완이 휘건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고 그를 리드한다고 느껴지지만 수완의 둘째오빠인 민완의 말처럼 휘건이 더하면 더했지 견주어 결코 모자라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미팅이나 해볼까 하고 그냥 내뱉은 수완의 말에 네가 미팅을 하면 나도 하겠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법으로 그녀를 단속하는 휘건의 귀여운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아닌 듯 보이지만 두 사람 관계를 리드하는 사람은 바로 휘건이라 생각한다. 

 “수완이만 보고 살겠습니다. 평생 그녀석의 수족이 되어 외롭지 않게 하겠습니다. 수완이 위해서만 존재하겠습니다. 사는 동안 그 녀석을 위해서만 살겠습니다. 그 녀석 없인 숨도 쉬지 않겠습니다.” 

-<그림자> 296쪽 中 수완의 母 조경자 여사에게 제 진심을 고하는 휘건

 멋진 한 남녀의 뜨겁고도 강인한 사랑. 그 모습에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휘건의 멋진 사랑을 받을만한 수완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 수완이 부러웠다. 수완 없이 숨도 쉬지 않겠다는 멋진 남자, 휘건.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황진순 작가가 그려내는 남주는 아주 멋지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 휘건이 그야말로 넘버 원! 수완과 식사를 할 때도 그녀를 실컷 챙겨주고서야 제 수저를 들고, 바쁜 와중에도 제 아내의 속옷과 스타킹을 정성껏 손빨래하는 바람직한 남편상까지 보여주는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달라지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대로 쭉 살 거야. 달라지지 않아. 달라질 생각 없어. 달라지기 위해 노력 같은 것도 하지 않아. 배려 안 해. 나 말고 다른 건 신경 안 써. 오직 나만 중요해. 지금껏 그렇게 살았고, 남은 날들이라고 다를 것 없어. 나 이수완은 결혼을 해도 이수완이야. 아내가 할 일 같은 거 몰라. 집안일 따위는 더더욱 몰라. 배울 생각도 없어. 나밖에 모르고, 내 것밖에는 모르는 이수완. 그게 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결혼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 오빠도 달라지지 마. 내가 달라질 수 없는 것처럼, 오빠도 달라질 수 없어. 허락 못 해. 불공평해도 할 수 없어. 이미 말했다시피 난 나밖에 몰라. 그러니 오빠가 참아. 오빠가 숙여. 오빠가 배려해. 오늘처럼, 어제처럼,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매사 다 오빠가 져줘. 오빠가 굽혀. 무조건 나부터 챙겨. 나만 봐. 나 없는 곳에선 웃지 마. 나 아닌 여자와는 밥도 먹지 마. 나 아닌 여자가 오빠 훔쳐보게도 하지 마. 그 꼴 안 봐. 발톱부터 머리칼 한 올까지 강휘건의 속속들이 다 나 이수완 거야. 명심해. 절대 잊지 마. 사는 동안도 그렇지만, 죽어 뼈가 썩어도 강휘건은 나 이수완 거야.” 

-<그림자> 318~319쪽 中 휘건에게 청혼하는 수완의 대사

 비록 사생아이긴 하나 재벌가의 딸이자 그룹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수완이 휘건과 맺어지는 게 쉽지 않는 게 당연지사. 애초부터 휘건을 수완의 배필로 생각했던 조부 이 회장과 달리, 딸인 수완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보이는 수완의 모 조 여사. 그녀는 제가 배 아파 낳은 딸임에도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하기 위해 딸을 수단으로 삼고 어느새 진정한 모정을 잊어간다. 휘건을 무시, 냉대하고 갖은 수단을 통해 딸과 휘건의 사이를 방해하려 한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온갖 호사를 누리지만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 그녀였기에. 시아버지에게 인정 받지 못하고 남편과도 멀어지고, 딸인 수완과도 여느 모녀와는 다른 메마른 사이가 되어버린 조 여사. 그 모든 게 그녀의 업보이고 자업자득이지만…….    

 남이 반대한다고 제 의지를 꺾을 수완이 아니기에,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을 휘건이었기에 조 여사의 반대는 오히려 수완과 휘건의 사이를 견고하게 한다. 수완이 휘건과의 결혼을 속행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뒤늦게라도 조 여사가 뉘우치고 휘건에게 사위 사랑을 펼쳐서 다행이었다. 끝까지 수완과의 관계가 개선되지는 않지만 점점 변해가는 조 여사이니 시나브로 달라지겠지. 

 에필로그에서 수완을 빼닮은 수완과 휘건의 2세, 은서의 등장에 빵 터졌다. 어린 게 얼마나 야무지고 고집이 센지! 수완과 휘건의 우수한 인자만 이어받은 은서의 영악한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제 어미인 수완이 먼저 휘건을 찜했듯 <갈증>의 주인공이었던 태욱과 서인의 2세인 인욱을 찜해버리는 은서. 은서와 인욱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했는데 외전에서나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살짝 엿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제 짝으로 먼저 점찍은 것도 휘건을 곁에 두기 위해 먼저 행동한 이도 수완. 청혼마저도 먼저 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수완 답다고 생각했다.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그녀, 배려 받는 이도 이기는 이도 항상 자신이라는 이기적인 그녀이지만 결코 밉지가 않은 수완이다.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더 사랑스러운 건 왜일까.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한 그녀이지만 그 누구보다 휘건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킬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변하지 않겠다는 말이 휘건을 향한 그녀의 마음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임을 알기에 그저 그녀의 용기 있고 당찬 사랑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매력적인 주인공들, 강렬하면서도 견고한 사랑. 작가의 힘 있는 필력과 흡입력 느껴지는 전개에 몰입이 잘 되었다. 열정적인 캐릭터만큼이나 정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수완과 휘건의 모습도 흥미로웠지만 캐릭터의 개성적인 성격과 구도, 스토리가 매력적이었던 <그림자>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손
김한나 지음 / 가하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인 <해토머리>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기생 연홍과 신혁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약손>. ‘얼었던 땅이 녹아 풀리기 시작할 무렵’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제 낭군을 향해 닫혔던 정인의 마음이 서서히 풀려가는 과정을 다뤘던 <해토머리>와 같이 <약손>도 그 제목이 뜻하는 바,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고 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한 남녀의 사랑과 의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비가 억울하게 역모의 누명을 쓰게 되면서 양친을 잃고 양반에서 천민으로 전락해 연홍이라는 이름의 기생으로, 원치 않았으면서도 살기 위해 뭇사내들의 술시중을 들어야 했던 묘운은 그녀의 신분이 복권되면서 기적에서 이름을 빼게 되고, 무엇을 하고 지내야할지 모른 채 유랑하다 의녀 출신의 유 객주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의술을 배우기에 이른다. 그리고 도망치듯 떠났던 한양으로 돌아와 그녀가 가진 재산을 팔아 굶주린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며 의술을 펼치다, 친 오라비와 다름 없는 혜민서 의관으로 재직중인 신혁과 재회하는데……. 오누이 같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인연이었던 것일까. 떨어져 있음에도 양반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의관의 삶을 선택한 두 사람은 한 길을 바라보며 점점 서로에 대해 연모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해토머리> 때부터 조연이었던 연홍과 신혁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실제로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약손>을 읽게 되면서 둘을 더 애정하게 된 것 같다. 한때 정인의 낭군인 휘의 마음을 온통 차지한 연홍으로 인해 정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휘에게 야속함을 느끼고 연홍에게도 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구한 삶과 처지에 안쓰러워, 자태만큼이나 고운 마음씨를 가진 그녀였기에 결국 미워하려야 할 수 없었었다. 그래서 그런 그녀와 전작에서도 멋지다 생각했던 신혁의 사랑을 담은 <약손>이 더욱 반가웠다. 

  묘운의 손은 그야말로 어미가 제 아이의 아픈 배를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약손이자 세상에서 가잔 어진 손이었다. 곱디곱던 손이 약재를 갈무리하고 환자들을 씻기며 보살피느라 거칠어지고 주름졌지만 그 어느 이의 손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제 아픈 손가락은 돌보지 않고 아픈 환자들을 치유하기 바쁜 그녀의 모습이 미련하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성인(聖人)같은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의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교훈으로 다가왔다. 신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양반으로서 영위할 수 있는 삶을 버리고 남들이 천시하는 의관의 삶을 살아가는 멋진 사내인 그의 강직한 심성과 연심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 오누이처럼 서로를 아끼는 묘운과 신혁이 서서히 상대를 의식하고 연심을 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흐뭇했다. 상처 입었던 그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사랑이 찾아온 것에 기뻤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걸으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누이로 생각했던 묘운에 대한 자신의 연심을 깨닫고 밀어붙이는 그의 솔직한 사랑법이 마음에 들었다. 제 사랑을 향해서만 광인인 모습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도성에 역병이 창궐하면서 두 사람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내고 행복한 부부가 된 그들의 모습에 안도했다. 

  활옷을 지으면 혼인해주겠다는 묘운의 말에 선뜻 약조해버린 신혁이 이미 안해나 마찬가지인 묘운을 정식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바느질 하고 있는 것에 웃음이 지어졌다.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했던 의술, 누이 같은 이의 손가락을 고쳐주기 위해 시작했던 의술. 결국 그 바람처럼 묘운의 아픈 손가락이 나은 것도 반갑기 그지없었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교훈을 주는 <약손>. 자극적이지 않은, 서서히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글이었다. 한 남녀의 예쁜 애정사와 인생사를 잔잔하면서도 물 흐르듯이 풀어냈다. 작가의 처녀작인 <해토머리>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약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물적인 매력으로 봤을 때는 훨씬 더 호감이 갔지만, 신혁과 묘운 두 사람 다 의술을 펼치는 만큼 그러한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들의 삶을 예쁘게 포장하는 장치로밖에 빛을 발하지 못한 듯했기에. 전문적이면서도 실감 나는 에피소드들이 더 등장했다면 더 매력적인 조선 메디컬 로맨스가 되었을 듯싶다. 과거 두 사람에게 다른 사랑이 있었던 만큼 오누이 같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연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도 좀 더 세세하게 진행되었더라면 더 완성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소소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묘운과 신혁 두 사람의 사랑과 쉽지 않은 시대물을 무리 없이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작가의 필력을 다시 한 번 느낀 만큼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되는 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우스허즈번드
정지원 지음 / 가하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우스허즈번드>, ‘전업남편’이라는 뜻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전업남편이 있었으면 하는 한 여자와 전업남편이 되어 아내를 외조했으면 하는 한 남자의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러브스토리다. 그리고 정지원 작가의 전작인 <길들여지다>, <민들레 한 송이>의 시리즈이자 <길들여지다>에서 등장했던 남조 찬웅의 이야기이다. <길들여지다>를 읽었을 당시, 비록 조연으로 잠깐 등장하지만 어딘가 모자라 보이고 어리바리한 모습에 순진한 찬웅이 정이 가고 끌렸는데 <하우스허즈번드>에서는 남주로 승격, 그와 딱 어울리는 여자를 만나 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외조의 황제라는 직업을 갖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국내에서 손꼽히는 회사인 일신제지 최상무 회장의 둘째 아들 최찬웅은 워커홀릭에 아버지를 보좌하며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형 현웅과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삶을 즐기며 살고 싶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아버지의 기대 밖으로 벗어난 지 오래이다.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한 자리 차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느니 부모님이 물려주신 돈으로 그냥 즐기면서 살고 싶은 그는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인 신세. 약혼녀였던 태영을 세진에게 양보하고 오히려 연적이었던 세진과 친구까지 먹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속 없고 또 어떻게 보면 참 정이 많은 남자이다. 남들은 그가 여자 좋아하는 바람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는 양다리라고는 걸쳐 본 적도 없는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미 넘치는 남자이다. 그는 매순간 누구에게든지 최선을 다했을 뿐! 그의 겉모습을 보고 그의 재산을 보고 여자들이 들러붙고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좋아, 누군가를 챙기는 것이 좋아 그냥 이용 당해주는 남자로 과거 화려한 전적과는 달리 순진하기 그지없다.
 

 그 동안 여자들에게 이용만 당했던 그가 똑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전 약혼녀 태영으로 인해 현명하고 자립적인, 자신을 이끌어줄 여자로 이상형이 바뀌게 되면서 마음에 담게 되는 사람이 바로 그의 아버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팀장 민효진이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계약직으로 입사하지만 실제로 그는 직장에서도 인정 하나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본인도 계약기간만 채우고 그만둘 생각으로 열심히 하지 않지만 남들도 그에겐 기대조차 하지 않는 그런 그. 사실 이런 면을 봤을 때는 기존 로맨스소설 남주들에 비해 아주 모자란 점이 많아 과연 매력적인 남자라 할 수 있을까,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했는데 이 남자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볼매남이었다. 물론 카리스마나 능력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요리나 뷰티, 패션, 쇼핑, 여행 같은 것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이 분야에서만큼은 특출한 센스를 발휘하는 그의 모습에서 여성을 향한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고,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고 강아지 같이 귀엽고 거기다 절륜남이라는 점에서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여주인 효진은 겉모습에서도 매력이 철철 넘치지만 성격도 호탕하고, 사업적 수완도 좋고 현명해서 직장에서 인정 받는 커리어우먼이다. 서른네 살,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지만 집에서 가사일을 하는 것보다 밖에서 일을 하는 게 더 좋은 그녀는 하우스허즈번드와 결혼을 했으면 하는 우스갯소리를 종종하고 한다. 과연 그런 남자가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그런데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일은 제대로 못하고 실수투성이지만 강아지처럼 귀엽게만 느껴져 그녀가 찜해뒀던 남자 서른둘 찬웅이 바로 그 상대. 마음 같아서야 홀라당 잡아 먹고 싶은 심정이지만 사내연애는 껄끄럽기에 참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이 일본출장을 가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오니! 그런데 이 남자 그녀가 다니는 일신제지 사주의 아들이란다. 거기다 출장 와서는 사주의 아들인 자신이 책임질 테니 일은 미뤄두고 함께 놀자는 철없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나 결국 면박을 주고만다. 그로인해 두 사람은 출장길에서 돌아와 일본에서 보냈던 뜨거운 밤은 어디 가고 서먹한 사이가 되는데…….
 

 그녀가 너무 심했나 하면서도 사주의 아들에 철없어 보이는 찬웅과 연애를 했다가는 뒤탈이 있을 것 같아 머뭇거리는 효진은 조금씩 변화하는 찬웅의 모습에 다시 호감이 간다. 효진의 면박에 한동안 삐쳐 있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을 통해서 잘하지는 못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찬웅은 비록 효진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회사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내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실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열심히 하긴 했지만 실적적인 면에서 성과가 없었던 찬웅은 결국 재계약을 하지 못하지만 처음부터 계약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그는 퇴사 후 본격적으로 효진과 연애를 하게 된다.
 

 능력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도 좋지만 어리바리해도 여성의 마음을 잘 알고 배려할 줄 아는 남자도 멋있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찬웅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모자란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인을 향해 딸랑딸랑 꼬리를 치듯 오직 제 여자인 효진을 향해서만 왈왈 짓는 강아지 같은 모습이 호감을 가지게 했다. 뭐, 효진의 연적으로 등장한 시영에게 보이는 우유부단함은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로서는 순수한 의도였으니. 형수의 소개로 알게 된 시영은 남자의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러 실수를 하고 제가 찍은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사로잡으려는 얄미운 완전체 여성이다. 찬웅이 처음부터 관심 없다, 애인이 있다고 했음에도 친구랍시고 그의 곁에 들러붙어서는 마치 제가 여자친구인 척하는 뻔뻔함을 보면서 얼마나 얄밉던지! 이런 여자는 초기에 떨쳐버려야지, 여성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그는 시영에게 저도 모르게 이리저리 휘둘리다 결국은 세진의 도움으로 그녀를 떨쳐버리게 된다. 앞서 말했지만 어리바리한 점은 그의 귀엽고 섬세한 감정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시영이 간교한 수술을 썼다고는 하나 시영이 그를 찍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이나, 심심하다고 제 애인을 두고 그냥 친구랍시고 같이 쇼핑을 하고 나들이를 가는 모습 등의 우유부단함 모습은 그의 매력을 깎을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결혼해서 진짜 하우스허즈번드가 되어 가사, 육아를 전담하며 제 아내 외조를 톡톡히 하는 팔불출 남편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찬웅의 모습에서 다시 만회했지만 말이다. 아주 재밌고 신선했다. 부부 중 맞벌이를 안 해도 한 사람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충분하면 성별을 떠나 제 적성에 맞게 전업주부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분명 <하우스허즈번드>는 기존의 로맨스소설과는 전혀 다른 글이다. 통념적인 남녀의 역할이 바뀌어있는, 남자가 리드하는 게 아니라 여자가 리드하고 스토리의 글이다. 카리스마 있고 능력 있는 완벽한 남주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어리바리하긴 해도 찬웅 같은 남자라면 매력적인 남주로서 손색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남자와의 결혼을 상상해보지 않을까! 그런 여자의 상상을 충족시켜주는 유쾌한 글이었다.
 

 정지원 작가의 글은 여주의 캐릭터가 아주 강한 것 같다. 시리즈인 <길들여지다>의 태영이나 <민들레 한 송이>의 정연도 그러했지만 이번 글에서도 당당하고 자립적인 여주인 효진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런 바람직한 여주 아주 좋다. 남주들의 성격은 저마다 매우 달랐지만 그럼에도 세 커플 다 아주 잘 어울리는 환상의 커플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전작들 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느낌의 글이다. 임팩트 강한 글은 아니지만 남녀의 역할이 바뀐 신선한 커플 구도에 어리바리하지만 귀엽고 매력 있는 남자와 당당하고 아름다운 커리어우먼인 여자의 유쾌한 사랑이야기가 취향에 맞다면 재밌게 다가올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월의 페리도트
코이시카 지음 / 데이즈엔터(주)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슴 한 구석이 몽글몽글거리는 설렘을 선사하는 <8월의 페리도트>.
여섯 살 차이의 연상연하 커플 보혜와 유리, 두 사람의 잔잔하면서도 예쁜 사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하고 가슴이 따스해지게 만들었다.

 有緣天里 來相會(유연천리 래상회, 인연이 있다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만난다.)라는 말처럼 우연히 스쳐 지나갈 법했던 가출소년과 순댓국 그녀의 만남은 단순한 스침이 아니라 인연이었던지 5년 후, 인기가수와 스타일리스로 다시 재회하게 된다.

 탁월한 재능과 센스로 일류 스타일리스트였던 보혜는 담당했던 인기가수인 석호의 자살로 인해 상처를 받고 도피하듯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 진실이 아니었음에도 그녀를 석호의 자살 이유로 꼽으며 손가락질하며 상처를 준 사람들, 그녀를 향한 질타의 시선들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과 문을 닫고 살았었던 그녀는 유리의 스타일리스트 제의를 기회로 2년 만에 세상에, 연예계에 다시 한발자국 들어서기로 용기를 낸다. 여전히 위축되기 십상이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유리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일을 해나가면서, 그리고 유리의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자연스런 배려로 인해 사람들과 조금씩 어울리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보혜. 자신을 향한 유리의 뜨거운 눈빛에 가슴이 설레고 긴장이 된다.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여자보다 더 고운 외모를 지녔지만 남자다운 탄탄한 몸매를 지닌 유리는 24살로 아이돌 스타이자 천재 뮤지션이다. 데뷔 2년 만에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로 뻗어가는 인기가수인 그지만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모자랄 것 없는 부유한 집에서 자라왔지만 정(情)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고팠던 그는 한때 반항심리로 가출을 감행했었다. 거지 같은 꼴로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던 그때 따뜻한 순댓국을 사주며 따스한 말과 함께 음악이 든 mp3를 선물해준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보혜다. 유리는 보혜가 자신의 스타일리스가 되면서 그녀와 사랑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
태어나 처음으로 간절히 소망하는 게 생겼다. 보혜, 그녀를 갖고 싶다.

 스캔들 하나 없었을 뿐 아니라 여자에게는 관심조차 없었던 유리가 보혜에게만은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고 애교도 부리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 같은 유리에게 끌리면서도 그를 부담스러워했던 보혜도 결국 그런 그의 모습에 마음을 열게 되고 두 사람은 비밀스런 연애를 해간다. 한 여자만을 향한 남자의 일편단심 애정행각은 역시 설렘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녀의 옆에 누가 있는 게 싫어 비행기 옆자리까지 예약해버릴 정도로 소유욕을 보여주는 모습 또한.

 보혜가 친구이자 동료에 불과한 스타일리스트 찰스와의 스캔들로 엮이게 되면서 한때 유리가 오해를 하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고비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잘 이겨낸다. 오해 속에서도 보혜를 놓지 않고 사랑고백을 하는 유리를 보면서 애잔하게 다가왔다. 보혜를 믿어줬다면 더 감동이었겠지만.
 사랑하는 여자와의 사랑이 반대 당하는 시련 앞에서 다시는 기타를 치기 힘들 정도로 제 손을 수석으로 찧는 모습까지 보이며 결단을 보여주는 유리의 모습은 정말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한결 같은 사랑을 받는 보혜가 부러웠다.

 해프닝에 불과할 줄 알았던 찰스와의 스캔들이 주변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추한 스캔들로 변질되면서 보혜가 매도당하는 것을 보면서 속상했다. 주변인들의 거짓말에 유리가 또 현혹되는 것은 아닐까, 오해해서 보혜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괜한 기우였던 것일까 여전히 보혜를 믿고 오히려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는 멋진 남자 유리. 아, 역시 매력적인 남정네이다. 이 일로 인해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세상에 공개되고 열렬한 호응을 얻게 되면서 두 사람은 더 이상 비밀연인이 아닌 공개 연인으로 거듭나니.

 유리와 보혜의 설렘 가득한 사랑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 글이다. 작은 고비들이 있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이겨내고 모두의 축복까지 받으며 사랑을 이어가는 두 사람의 예쁜 모습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아쉬움이라면 두 사람의 결혼 후 모습이나 5년 전 순댓국집에서 보여줬던 보혜의 당찬 모습이 그리웠다는 점이랄까.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지난 상처로 여전히 남의 시선을 생각하는 보혜의 모습을 보면서, 유리의 바람처럼 순댓국집에서 그에게 순댓국을 사주며 당찬 모습을 보여줬던 보혜의 옛 모습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의 뒷이야기를 다룬 후속편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예감
정미림 지음 / 청어람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처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글, <행복예감>.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 익숙해지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글이었고, 인간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 속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 우정, 가족애, 그리고 이웃 간의 정, 인간 간의 아름다운 감정을 여러 가지 색깔로 접할 수 있었다.

 지후의 말처럼 ‘가족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어머니의 병환과 어린 동생 둘을 돌보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생업에 뛰어드느라 변변한 연애도 해보지 못하고 여자로서의 삶은 제대로 살아오지도 못한 한지. 자신을 꾸미기보다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 일하는 따뜻한 심성을 지닌 한지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힘든 상황에서도 매사 밝은 모습으로,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한지의 모습에서, 부족할수록 더 나눌 줄 아는 그녀의 모습에서 깨닫는 점이 많았다. 한지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택시기사를 하는 한지가 우연찮게 그녀의 차에 천재 과학자 지후를 태우게 되면서 두 사람은 스쳐가는 인연인 듯했다. 이때만 해도 지력, 외모, 배경 등 여러 면을 봤을 때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주위 사람들이 보기엔 한 쪽으로 너무 기우는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미국에서의 사업체를 정리하고 입양된 양부모의 고향이자 누나인 지련이 있는 운봉시 민들레마을로 온 지후는 그곳에 의료 테마파크를 세우고자 한다. 천재라는 이유로 관심이 집중되고 남들에게 이용당했던 상처를 지닌 지후는 자신이 곁을 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믿지도 곁을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처음 택시기사인 한지를 자신의 임시 운전기사로 둘 때까지만 해도, 말 많은 그녀를 귀찮게 느꼈다. 하나, 한지의 밝음과 고운 심성에 조금씩 매력을 느낀 지후는 어느새 그녀를 마음에 두게 되고. 한지 또한 과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 지후에게 마음이 간다. 

 서로의 마음은 통했으나 자격지심, 주위 사람들의 시선, 지후를 노리는 경미와 그녀로 인해 한지를 오해한 지후의 누나 지련으로 인해 한지는 쉽사리 지후를 허락하지 못했다. 마음에도 없으면서 경미와 연결시켜 주려고도 했고. 그러나 멋지고 현명한 지후로 인해 두 사람은 곧 이어지고 만다. 서로의 마음이 통한 것도 잠시, 지후의 양부모의 죽음과 누나 지련을 다치게 한 교통사고 범인인 백민기의 아비인 백 의원이 지후의 의료 테마파크 사업을 방해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비열한 방법을 쓰게 되는데……. 하지만 지후의 지략과 한지, 동생 한철이 힘을 합쳐 이겨내고, 민들레마을은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지는데…….

 용주님 지후와 용인님 한지, 두 사람 사이에 강렬한 애정신 같은 것은 없지만 달콤한 입맞춤, 따뜻한 손잡기 등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애정이 깊은지를 느낄 수 있는 로맨틱한 글이었다. <행복예감>은 예쁘고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들이 백미였다. 제 한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아는, 뭐든지 열심인 열혈처자 한지와 무뚝뚝한 것 같지만 진진하고 자상할뿐더러 의외로 로맨틱하기까진 한 멋진 남자 지후. 두 사람의 사랑 뿐 아니라 한지 엄마 권 여사와 욕쟁이 마산할매, 무한도전 아이들 등의 감초 같은 조연들이 엮어가는 이야기 속에서는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로맨스&휴먼소설이었다. 지후가 과학자인 만큼 대사 하나 하나에서 과학상식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글의 잔재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 속 지나쳤던 현상들에 대한 지후의 과학적인 설명들. 한지의 가벼운 질문에도 진지하게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한지를 보면서, 그들에게 밝은 웃음을 내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간이 나빠서, 신장이 나빠서, 심장이 나빠서 그렇다고 툴툴거리는 지후의 귀여운 질투가 웃음을 더했다. 

<행복예감>은 캐릭터도, 스토리도 다 마음에 드는 따뜻하고 예쁜 글이었다. 자극적인 소재나 강렬한 애정신이 아닌, 휴머니즘과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 로맨스소설이다. 정미림 작가의 책은 갈수록 더 인간미 있어지고 따뜻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동안 훈훈한 기운이 스며들었고 기분 좋아짐을 느꼈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예쁜 이야기를 담았을 까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