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손
김한나 지음 / 가하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전작인 <해토머리>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기생 연홍과 신혁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약손>. ‘얼었던 땅이 녹아 풀리기 시작할 무렵’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제 낭군을 향해 닫혔던 정인의 마음이 서서히 풀려가는 과정을 다뤘던 <해토머리>와 같이 <약손>도 그 제목이 뜻하는 바,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고 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한 남녀의 사랑과 의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비가 억울하게 역모의 누명을 쓰게 되면서 양친을 잃고 양반에서 천민으로 전락해 연홍이라는 이름의 기생으로, 원치 않았으면서도 살기 위해 뭇사내들의 술시중을 들어야 했던 묘운은 그녀의 신분이 복권되면서 기적에서 이름을 빼게 되고, 무엇을 하고 지내야할지 모른 채 유랑하다 의녀 출신의 유 객주를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의술을 배우기에 이른다. 그리고 도망치듯 떠났던 한양으로 돌아와 그녀가 가진 재산을 팔아 굶주린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며 의술을 펼치다, 친 오라비와 다름 없는 혜민서 의관으로 재직중인 신혁과 재회하는데……. 오누이 같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인연이었던 것일까. 떨어져 있음에도 양반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의관의 삶을 선택한 두 사람은 한 길을 바라보며 점점 서로에 대해 연모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해토머리> 때부터 조연이었던 연홍과 신혁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실제로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약손>을 읽게 되면서 둘을 더 애정하게 된 것 같다. 한때 정인의 낭군인 휘의 마음을 온통 차지한 연홍으로 인해 정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휘에게 야속함을 느끼고 연홍에게도 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구한 삶과 처지에 안쓰러워, 자태만큼이나 고운 마음씨를 가진 그녀였기에 결국 미워하려야 할 수 없었었다. 그래서 그런 그녀와 전작에서도 멋지다 생각했던 신혁의 사랑을 담은 <약손>이 더욱 반가웠다. 

  묘운의 손은 그야말로 어미가 제 아이의 아픈 배를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약손이자 세상에서 가잔 어진 손이었다. 곱디곱던 손이 약재를 갈무리하고 환자들을 씻기며 보살피느라 거칠어지고 주름졌지만 그 어느 이의 손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제 아픈 손가락은 돌보지 않고 아픈 환자들을 치유하기 바쁜 그녀의 모습이 미련하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성인(聖人)같은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의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교훈으로 다가왔다. 신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양반으로서 영위할 수 있는 삶을 버리고 남들이 천시하는 의관의 삶을 살아가는 멋진 사내인 그의 강직한 심성과 연심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 오누이처럼 서로를 아끼는 묘운과 신혁이 서서히 상대를 의식하고 연심을 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흐뭇했다. 상처 입었던 그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사랑이 찾아온 것에 기뻤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걸으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누이로 생각했던 묘운에 대한 자신의 연심을 깨닫고 밀어붙이는 그의 솔직한 사랑법이 마음에 들었다. 제 사랑을 향해서만 광인인 모습도.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도성에 역병이 창궐하면서 두 사람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내고 행복한 부부가 된 그들의 모습에 안도했다. 

  활옷을 지으면 혼인해주겠다는 묘운의 말에 선뜻 약조해버린 신혁이 이미 안해나 마찬가지인 묘운을 정식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바느질 하고 있는 것에 웃음이 지어졌다.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했던 의술, 누이 같은 이의 손가락을 고쳐주기 위해 시작했던 의술. 결국 그 바람처럼 묘운의 아픈 손가락이 나은 것도 반갑기 그지없었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교훈을 주는 <약손>. 자극적이지 않은, 서서히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글이었다. 한 남녀의 예쁜 애정사와 인생사를 잔잔하면서도 물 흐르듯이 풀어냈다. 작가의 처녀작인 <해토머리>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약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물적인 매력으로 봤을 때는 훨씬 더 호감이 갔지만, 신혁과 묘운 두 사람 다 의술을 펼치는 만큼 그러한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들의 삶을 예쁘게 포장하는 장치로밖에 빛을 발하지 못한 듯했기에. 전문적이면서도 실감 나는 에피소드들이 더 등장했다면 더 매력적인 조선 메디컬 로맨스가 되었을 듯싶다. 과거 두 사람에게 다른 사랑이 있었던 만큼 오누이 같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연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도 좀 더 세세하게 진행되었더라면 더 완성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소소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묘운과 신혁 두 사람의 사랑과 쉽지 않은 시대물을 무리 없이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작가의 필력을 다시 한 번 느낀 만큼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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