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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허즈번드
정지원 지음 / 가하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하우스허즈번드>, ‘전업남편’이라는 뜻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전업남편이 있었으면 하는 한 여자와 전업남편이 되어 아내를 외조했으면 하는 한 남자의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러브스토리다. 그리고 정지원 작가의 전작인 <길들여지다>, <민들레 한 송이>의 시리즈이자 <길들여지다>에서 등장했던 남조 찬웅의 이야기이다. <길들여지다>를 읽었을 당시, 비록 조연으로 잠깐 등장하지만 어딘가 모자라 보이고 어리바리한 모습에 순진한 찬웅이 정이 가고 끌렸는데 <하우스허즈번드>에서는 남주로 승격, 그와 딱 어울리는 여자를 만나 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외조의 황제라는 직업을 갖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국내에서 손꼽히는 회사인 일신제지 최상무 회장의 둘째 아들 최찬웅은 워커홀릭에 아버지를 보좌하며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형 현웅과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삶을 즐기며 살고 싶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아버지의 기대 밖으로 벗어난 지 오래이다.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한 자리 차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느니 부모님이 물려주신 돈으로 그냥 즐기면서 살고 싶은 그는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인 신세. 약혼녀였던 태영을 세진에게 양보하고 오히려 연적이었던 세진과 친구까지 먹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속 없고 또 어떻게 보면 참 정이 많은 남자이다. 남들은 그가 여자 좋아하는 바람둥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는 양다리라고는 걸쳐 본 적도 없는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미 넘치는 남자이다. 그는 매순간 누구에게든지 최선을 다했을 뿐! 그의 겉모습을 보고 그의 재산을 보고 여자들이 들러붙고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좋아, 누군가를 챙기는 것이 좋아 그냥 이용 당해주는 남자로 과거 화려한 전적과는 달리 순진하기 그지없다.
그 동안 여자들에게 이용만 당했던 그가 똑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전 약혼녀 태영으로 인해 현명하고 자립적인, 자신을 이끌어줄 여자로 이상형이 바뀌게 되면서 마음에 담게 되는 사람이 바로 그의 아버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팀장 민효진이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계약직으로 입사하지만 실제로 그는 직장에서도 인정 하나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본인도 계약기간만 채우고 그만둘 생각으로 열심히 하지 않지만 남들도 그에겐 기대조차 하지 않는 그런 그. 사실 이런 면을 봤을 때는 기존 로맨스소설 남주들에 비해 아주 모자란 점이 많아 과연 매력적인 남자라 할 수 있을까,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했는데 이 남자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볼매남이었다. 물론 카리스마나 능력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요리나 뷰티, 패션, 쇼핑, 여행 같은 것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이 분야에서만큼은 특출한 센스를 발휘하는 그의 모습에서 여성을 향한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고,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고 강아지 같이 귀엽고 거기다 절륜남이라는 점에서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다.
여주인 효진은 겉모습에서도 매력이 철철 넘치지만 성격도 호탕하고, 사업적 수완도 좋고 현명해서 직장에서 인정 받는 커리어우먼이다. 서른네 살,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지만 집에서 가사일을 하는 것보다 밖에서 일을 하는 게 더 좋은 그녀는 하우스허즈번드와 결혼을 했으면 하는 우스갯소리를 종종하고 한다. 과연 그런 남자가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그런데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일은 제대로 못하고 실수투성이지만 강아지처럼 귀엽게만 느껴져 그녀가 찜해뒀던 남자 서른둘 찬웅이 바로 그 상대. 마음 같아서야 홀라당 잡아 먹고 싶은 심정이지만 사내연애는 껄끄럽기에 참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이 일본출장을 가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오니! 그런데 이 남자 그녀가 다니는 일신제지 사주의 아들이란다. 거기다 출장 와서는 사주의 아들인 자신이 책임질 테니 일은 미뤄두고 함께 놀자는 철없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나 결국 면박을 주고만다. 그로인해 두 사람은 출장길에서 돌아와 일본에서 보냈던 뜨거운 밤은 어디 가고 서먹한 사이가 되는데…….
그녀가 너무 심했나 하면서도 사주의 아들에 철없어 보이는 찬웅과 연애를 했다가는 뒤탈이 있을 것 같아 머뭇거리는 효진은 조금씩 변화하는 찬웅의 모습에 다시 호감이 간다. 효진의 면박에 한동안 삐쳐 있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을 통해서 잘하지는 못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찬웅은 비록 효진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회사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내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실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열심히 하긴 했지만 실적적인 면에서 성과가 없었던 찬웅은 결국 재계약을 하지 못하지만 처음부터 계약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그는 퇴사 후 본격적으로 효진과 연애를 하게 된다.
능력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도 좋지만 어리바리해도 여성의 마음을 잘 알고 배려할 줄 아는 남자도 멋있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찬웅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모자란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인을 향해 딸랑딸랑 꼬리를 치듯 오직 제 여자인 효진을 향해서만 왈왈 짓는 강아지 같은 모습이 호감을 가지게 했다. 뭐, 효진의 연적으로 등장한 시영에게 보이는 우유부단함은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로서는 순수한 의도였으니. 형수의 소개로 알게 된 시영은 남자의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러 실수를 하고 제가 찍은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사로잡으려는 얄미운 완전체 여성이다. 찬웅이 처음부터 관심 없다, 애인이 있다고 했음에도 친구랍시고 그의 곁에 들러붙어서는 마치 제가 여자친구인 척하는 뻔뻔함을 보면서 얼마나 얄밉던지! 이런 여자는 초기에 떨쳐버려야지, 여성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그는 시영에게 저도 모르게 이리저리 휘둘리다 결국은 세진의 도움으로 그녀를 떨쳐버리게 된다. 앞서 말했지만 어리바리한 점은 그의 귀엽고 섬세한 감정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시영이 간교한 수술을 썼다고는 하나 시영이 그를 찍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이나, 심심하다고 제 애인을 두고 그냥 친구랍시고 같이 쇼핑을 하고 나들이를 가는 모습 등의 우유부단함 모습은 그의 매력을 깎을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결혼해서 진짜 하우스허즈번드가 되어 가사, 육아를 전담하며 제 아내 외조를 톡톡히 하는 팔불출 남편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찬웅의 모습에서 다시 만회했지만 말이다. 아주 재밌고 신선했다. 부부 중 맞벌이를 안 해도 한 사람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충분하면 성별을 떠나 제 적성에 맞게 전업주부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분명 <하우스허즈번드>는 기존의 로맨스소설과는 전혀 다른 글이다. 통념적인 남녀의 역할이 바뀌어있는, 남자가 리드하는 게 아니라 여자가 리드하고 스토리의 글이다. 카리스마 있고 능력 있는 완벽한 남주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어리바리하긴 해도 찬웅 같은 남자라면 매력적인 남주로서 손색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남자와의 결혼을 상상해보지 않을까! 그런 여자의 상상을 충족시켜주는 유쾌한 글이었다.
정지원 작가의 글은 여주의 캐릭터가 아주 강한 것 같다. 시리즈인 <길들여지다>의 태영이나 <민들레 한 송이>의 정연도 그러했지만 이번 글에서도 당당하고 자립적인 여주인 효진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런 바람직한 여주 아주 좋다. 남주들의 성격은 저마다 매우 달랐지만 그럼에도 세 커플 다 아주 잘 어울리는 환상의 커플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전작들 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느낌의 글이다. 임팩트 강한 글은 아니지만 남녀의 역할이 바뀐 신선한 커플 구도에 어리바리하지만 귀엽고 매력 있는 남자와 당당하고 아름다운 커리어우먼인 여자의 유쾌한 사랑이야기가 취향에 맞다면 재밌게 다가올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