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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마노, 달의 여행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AD 2세기경. 낮고 볼품없는 산 밑에 터전을 이루고 살던 촌부락 규모의 모르민족. 지도자인 네오길레우스는 서방에 들어와 소수민족의 터전을 잔인하게 짓밟는 훈족이 언제 그들에게도 손을 뻗칠지 몰라 고심 끝에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모르민족이 향한 곳은 지형이 험악해 인적이 드문 락키슈숲. 그들은 우거진 숲의 중앙으로 나아가 자리를 잡고, 그 작은 세계에 금방 적응해 안락한 생활을 영위한다. 어느새 모르민족에게는 락키슈숲은 유일한 세상이자 넘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벽이 되었다.
AD 13세기경, 비옥한 락키슈숲의 풍요 덕분에 모르민족은 번영을 이룬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여전히 락키슈숲에 한정되어 있었다.
모르민족의 한 어린 소년 알로마노가 있다. 하늘까지 높이 솟아 있는 아르토스산, 그 꼭대기에서 떠오르는 달을 찾아 험한 산을 오르는 사람들. 달의 흙이 가진 젊음을 유지하고 청춘을 돌려주는 힘 때문에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산을 오르고, 달이 움푹 파인 이유는 젊음을 유지해주는 달의 흙을 퍼간 흔적이라며,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달의 전설은 알로마노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알로마노는 그 전설을 들으며 매일 상상하고 꿈꾼다. 언젠가 달의 여행을 떠나겠다고.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자라며 형제 같은 아르곤도 홍일점 친구 루우비도, 함께 달의 여행을 떠나겠다고 약속했지만 달의 전설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알로마노가 락키슈숲을 떠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년의 꿈은 한결 같았다. 그리고 장성한 알로마노는 어릴 적부터 꿈꿔온 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모두의 반대와 걱정의 무릅쓰고 달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알로마노는 꿈의 원정대를 꾸린다. 알로마노와 아르곤, 루우비 이렇게 셋이었지만 루우비가 두려움을 느끼며 동행을 망설이자 결국 두 사람만 달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친구들을 떠나보낸 뒤 우울함에 빠진 루우비도 결국 길을 나서긴 하지만.
그들은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하고 여러 시련을 겪기도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은 더 단단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아르토스산을 오르면서 포기하고 싶은 위험한 순간들도 찾아오지만 알로마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우비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알로마노는 꿈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올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꿈을 지지해주기 위해 심하게 다치고 동상에 걸렸음에도 참고 동행하던 아르곤은 자신이 루우비와 내려갈 테니 알로마노에게 꿈을, 여행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잠시의 이별을 뒤로 하고 끝내 아르토스산의 정상을 밟은 알로마노. 그는 달과 마주했을까, 달의 전설을 눈으로 확인했을까.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달의 전설은 허상에 불과했다. 산 정상에 올라서도 달은 저 높은 하늘에 떠 있었고, 그의 눈앞에는 드넓은 세상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알로마노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일까. 그의 여행은 헛된 것이었을까. 글쎄, 물론 알로마노의 허탈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아르토스산을 밟기까지의 그 과정을 보면 결코 그렇다고 생각할 수 없다. 꿈을 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루기 위해 용감하게 길을 나섰던 모습, 여러 시련이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산을 올랐던 것, 드넓은 세상을 제 눈으로 확인한 것 등 그것만으로도 그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지지를 아끼지 않은 아르곤과 루우비, 두 친구와 더 돈독해졌다는 것. 아르곤과 루우비가 없었다면 그들의 지지와 희생이 없었다면, 알로마노의 여행은 순탄치 못했을 것이다. 함께 꿈꿔 주고 독려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알로마노가 아르토스산의 정상을 밟을 수 있었고, 그 정상의 모습이 자신이 꿈꾸던 것과 거리가 멀었음에도 실망하지 않고 웃을 수 있었다. 그가 꿈꿔온 세상과는 달랐지만 꿈꿨듯이 아르토산의 정상을 밟았기에 100%는 아니더라도 그의 꿈은 이뤄졌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같이 꿈꿔준 친구들을 실망시키기 싫은 마음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만난 친구들에게 꿈을 이뤘다고 말하는 것처럼.
<알로마노 달의 여행>에서는 그 결과보다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꿈의 끝이 어떤 모습이든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작가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달의 여행을 떠난 알로마노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알로마노 달의 여행>이 들려주는 스토리나 의미만을 봤을 때는 꽤 인상적인 글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솔직히 글의 구성이나 전개 방식, 표현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전개되는 방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짧은 에피소드 식으로 글을 구성한 것이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이야기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에 초반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점차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생각,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개성을 찾는 것을 좋아하는데, 문장이나 표현이 단순해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적어서 아쉬웠다. 뭔가 설익은 느낌을 곳곳에서 받았다고 할까. 픽션이라고는 하지만 알로마노가 달의 여행을 꿈꾸고 떠나는 부분도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좀 더 자연스럽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렇지만 꿈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끔 하는, 의미 있는 글이기도 했다. 아직 작가가 이십대 초중반이고, 이번이 네 번째 장편소설인 만큼 앞으로는 더 완성도 있고 깊이 있는 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