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사나이
김성종 지음 / 뿔(웅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모두가 안개 속에서 헤맨다. 그러나 아무도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안개의 사나이>는 안개 속 가려진 살인 청부업자와 그를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살인 청부업자인 '나'의 고백과 형사들의 수사노트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나(문삼식)'는 해외입양자로 고국이 그리워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외면과 괴리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련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KGB에 의해 스파이가
되고, 냉전이 끝난 후 KGB 출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적인 청부살인조직 Q25의
청부살인업자가 된다. 대외적으로는 '구림'이라는 유명한 추리소설작가이지만
그의 보여지는 모습은 허상에 불과하다. 결혼조차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일뿐,
그의 삶에 진실은 있어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자유평화연대' 한국 지부의 회장인 그는
'난징대학살 추모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 전에, 안개 속에서
유명 정치인 유달희를 청부살해한다. 안개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고,앞서 출발한
일행이 탄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인 전원이 사망하게 되면서 사망자이름에 오른
그는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유달희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너구리'라는
별칭의 수사전담팀은 탐문수사를 하던 중, 죽은 줄 알았던 문삼식이 살아 있고,
살인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유력 용의자로 추적해한다.


<안개의 사나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안개'가 소설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문삼식든 안개 속에서 유명 정치인을 청부살인한다. 안개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돼 일행을 놓치게 되고, 일행들이 타고 먼저 출발한 비행기가 안개로 인해 추락해
탑승 전원이 사망하고, 그 사망자명단에 자신의 이름까지 들어가 있어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문삼식을 추적하면서 그의 행방이 묘연하자 수사팀이 그를
'안개의 사나이'라 부른다.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안개 속을 헤매는 그,
결국 그의 정체는 안개 속에서 가려진 채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영원히
안개 속에 갇혀버리게 된다. 어느 누구의 표현처럼 비정하고 씁쓸한 결말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문삼식이 살인이라는 파렴치한 범죄행각을 저질렀지만,
안개처럼 불완전한 그의 삶의 이면에는 사회의 비정함과 외면에 지친,
그리고 외로운 또 다른 그가 존재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그를 안개 속으로 몰아 세운 건 우리 사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추리소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긴박한 두뇌플레이를 좋아해 추리 소설을
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추리소설을 읽은 경험은 거의 전무했다. 솔직히 스케일이
크고, 디테일한 추리소설을 좋아하다보니 외국추리소설만을 편식해 읽었다. 그렇기에
<안개의 사나이>를 접했을 때의 감회는 남달랐던 것 같다.
김성종 작가의 꾸밈없는 솔직하고 건조한 문체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 아주 감명 깊게 보았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원작자.
일제강점기부터 남북의 분열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격동적으로 잘 표현했던 그의 이번 작품은 솔직히 밋밋하게 다가왔다.
기존 추리 소설과 달리, 범인의 관점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다 보니, 범인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두뇌싸움도 없고, 긴박감도 덜 했다. -물론 형사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그를 추적하는 모습에서 긴장감을 느끼긴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하지만 안개 속 가려진 범인을 따라가면서, 그의 고백을 읽어가면서, 그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인간미와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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