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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니
이희영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8월
평점 :
이희영 작가의 『너는 누구니』. 꽃잎 흩날리는 분홍빛 배경에 아름다운 한 소년과 한 소녀가 등장하는 표지만 봤을 때는, 설렘 가득하고 풋풋한 하이틴 로맨스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누구니』는 브릿G 로맨스릴러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에서 드러나듯이, 단순한 하이틴 로맨스를 다룬 글이 아니라 스릴러 요소를 가미한 글이다. 정확하게는 스릴러보다는 비밀을 파헤쳐가는 미스터리물이 가깝다고 할까. 글의 마지막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에 연결되는 도입부인 ‘시작하는 이야기’에서부터 『너는 누구니』가 단순한 로맨스 이야기가 아님을, 예진과 서하를 중심으로 지운, 태영 사이에는 큰 비밀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과연 이들 사이에 갈등 요소인 그 비밀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밝혀질 것인가.
열여덟 그 소녀, 강예진.
아버지의 오랜 암 투병으로 빚은 점점 늘어나고, S시에서 살았지만 지방으로 더 좁은 집으로 옮겨가야만 했던 예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다시 S시로 돌아온다. 그녀만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어머니를 위해 예진은 집안일을 거들며 필사적으로 공부한다. 아무 걱정 없이 또래들과 수다를 꽃피우는 시간은 그녀에게 사치이다. 무언가 쫓기듯 맹목적으로 공부하려는 그녀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열여덟 그 소년, 최서하.
햇살을 닮은 수려한 외모의 서하는 전교 1등의 성적에 원만한 교우관계를 지닌, 학교의 스타이다. 친구들과 잘 지내지만 누구도 그와 방과후에 어울려본 적이 없으며, 그의 집을 방문한 적도 없다. 확실히 그 또래의 남자아이와는 다른 서하. 달콤하면서도 서늘한 아이스크림 같은, 신비로운 그에겐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도서관에서 이루어진 서하와 예진의 첫 만남. 예진을 뚫어지듯 바라보고, 책을 핑계 삼아 예진에게 말을 거는 서하의 모습은 설렘을 느끼게 한다. 그런 아름다운 서하에게 예진 또한 끌리지만, 아빠와의 약속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고자 그를 피하기도 한다. 서하가 숨긴 예진의 문제집을 찾는 과정에서의 소원 들어주기 내기로 서하와 예진은 사귀게 되고, 학업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풋풋하고 설렘 가득한 연애를 이어간다.
바닥에서 전교 1등으로 끌어올린 성적, 극과 극을 넘나드는 입맛, 운동을 못하는 듯하면서도 이따금 나타나는 반사 신경, 순하디순한 듯하면서 한 번씩 날카롭게 폭발하는 모습. 예진은 그런 서하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며 짧은 점심시간, 도서관에서의 30분을 함께 하며 서하에 대한 마음을 키워간다. 순조로울 것만 같던 두 사람의 관계는 서하의 오랜 친구인 태영의 등장과 함께 위태로워지고, 예진은 서하의 비밀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서하와 예진의 비밀이 큰 줄기인 만큼, 자칫 스포가 될 수 있기에 더 이상의 스토리를 언급하는 것은 자제하고자 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이었다. 작가의 친절한 복선 제시 덕분에 이들 사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서하와 예진 두 사람이 보여주는 풋풋하고 설렘 가득한 연애 모습은 가슴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였지만, 자신을 삭이며 씩씩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예진이 안쓰러웠고,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하지만 자신을 죽이며 살아가는 서하가 안타까웠다.
인간은 결코 타인을 욕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누구나 자신의 안에 스스로도 모르는 괴물을 키우고 있을 테니까. 그 괴물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테니까. 내가 손가락질 한 누군가의 모습이 한순간 내가 될 수도 있었다.(193쪽 중에서)
누구나 가면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때때로 진실된 모습보다 가면 쓴 모습을 진실인 양 내비치는 순간이 있다. 상처 받기 싫어서 혹은 날 것 그대로의 나를 보이기가 부끄럽거나 껄끄러워서, 현재의 감정을 숨기는 게 더 편해서……. 대부분 가면을 쓴 날보다는 그렇지 않은 날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서하처럼. 그는 가면 쓴 날이 가면을 벗은 날보다 많았다. 어느새 어느 게 가면이고 어느 게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모를 정도로 그는 필사적으로 가면을 써왔다. 그 가면에 균열을 일으킨 존재가 자신의 숨겨둔 얼굴과 마주하기 어려워하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예진이다. 서하와 예진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깊어짐과 동시에 가면을 벗은 서로의 민낯, 그리고 숨겨둔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미스터리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순식간에 책을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지금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시작하는 글’로 끝맺는 만큼,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 호기심을 자극하고 몰입하게끔 하는 매력적인 글이었지만, 점점 흥미 있어지고 있는 지점에서 끝이 나는 바람에 여운이라고 해야 할지 미완성 같다고 해야 할지. 서로의 민낯을 마주한 후, 예진과 서하가 어떻게 이겨내고 행복을 찾을 것인지 궁금했는데 잠정적 수용으로 끝난 마무리가 다소 아쉬웠다. 그리고 스토리만으로 제목인 ‘너는 누구니’가 잘 다가오는 것에도 불구하고, 중간 중간 ‘너는 누구니’를 언급하며 제목 및 주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왼쪽 정렬로 된 편집 정렬도 읽기에 다소 불편했다.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미스터리하면서도 설렘을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로맨스를 마주해서 읽는 동안 즐거웠다. 중간 중간 다른 작가의 소설을 언급하며 복선과 비유를 드는 것 또한 마음에 드는 전개방식이었다. 이희영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