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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새벽 3시. 고요 속 시계 초침소리만 요란하고. 잠은 오지 않는다. 아, 이런! 아침에 늦잠을 잔 탓도 있겠고 조금 전 결국 참지 못하고 달작지근 흐뭇하게 마신 커피 탓도 있을 것이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좀, 괴롭다! 결국 책을 뽑아든다. 무슨 책을 읽을까 손가락으로 책장을 스르륵 훑다가 비야언니 책에 시선이 멈춘다. 아, 비야언니는 여기서 한비야를 말한다. 얼굴 한 번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나는 거침없이 그녀를 ‘비야언니’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냥 그녀에게는 비야언니가 어울린다. 훗날 육 십이 되고 칠 십이 되어도 한비야는 만 년 ‘비야언니’가 될 것 같다.
한밤에 읽어도 그녀의 글은 가슴을 뛰게 한다. ‘그건 사랑이었네’ 그녀가 200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출간한 책이다. 그녀의 오지 여행 경험담과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현장 팀장으로서 전쟁터나 지진발생지, 지뢰밭에서 보고 겪고 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간간히 나온다. 그것을 빼놓고는 그녀를 말하기가 어렵다. 늘 그녀가 있는 곳에는 가난과 굶주림과 폭력과 질병으로 인해 한 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따금씩 인용되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겨 있는 이야기다.
그녀는 자신이 쓴 책에 항상 이런 메시지를 남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가슴 뛰는 일을 하라!’ 하지만 그것이 무리한 요구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우선 자기 길을 찾을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게 한 가지 있다.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나는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낙타로 태어난 사람과 호랑이로 태어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낙타로 태어났으며 사막에, 호랑이로 태어났으면 숲 속에 있어야만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쓰면서 살 수 있다. 숲에 사는 낙타, 사막에 사는 호랑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자신이 호랑이인지 낙타인지 얼른 파악을 한 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끝까지 물고 늘어지라는 것이다. 한비야가 좋아하는 작전이 바로 ‘물귀신 작전’이다. 희미하던 것이 또렷하게 보일 때까지. 조언은 많이 들을수록 좋고 결정은 자신이. 그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늘 무쇠같은 힘과 차갑고 반짝이는 이성과 철저한 계획과 투철한 실천력!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그녀에게도 시큰둥한 날이 있고 귀찮고 예민해질 때가 있다니, 사람들은 믿지 않을 지도 모른다.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아니, 한비야가? 하지만 그녀도 사람인 것을! 그녀도 이럴 적이 있다니 나는 참 좋다. 완벽하기만 한 사람 앞에서는 왠지 멀게만 느껴지고 주눅이 들고 기도 팍 죽지 않던가. 철철 넘치는 그런 인간미에, 한 번 안아주고플 만큼 그녀에게 친근감이 샘솟는다. 기분이 가라앉거나 풀이 죽어 있을 때, 설마 한비야가? 아니, 한비야 맞아? 이렇게 놀랄 것이 아니라 한비야같은 사람도 그럴 때가 있구나!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다만 노력과 끈기, 용기와 실천으로써 존경받으며 저 자리에 있는 거로구나. 나도 좀 잘 살아봐야겠는 걸! 이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한비야 글의 매력이다.
억지 부리는 강자 앞에 머리 숙이지 않고 항상 약자 편에서 행동하는 그녀. 아이들이 독초를 먹으며 굶어죽는 아프가니스탄 긴급구호 현장에서 지나는 차가 일으키는 먼지를 보며 ‘저게 다 밀가루였다면, 저 누렇게 마른 풀이 모두 고단백 비스킷이었다면’ 간절했다던 마음 따뜻한 그녀.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구호현장에서 만년 일하고 싶어 승진을 거부하고 있다는 그녀. 대중교통이나 여가를 이용해 1년에 100권 이상 책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부지런한 그녀.
이렇듯 그녀에게 본 받을 점은 끝이 없다. ‘네티즌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1위’‘신지식 5인중 한 사람’ ‘평화를 만드는 사람에 선정’‘YWCA 젊은 지도자 상’ 수상 등.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절망의 수렁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홍보하기 위해 지금도 향학에 불타고 있을 그녀에게, 이 야밤에 독자는 응원을 보낸다. 비야언니, 파이팅!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