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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ㅣ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평점 :
용서가 아름다운 미덕이라는 것은 알지만, 가끔 용서하기 힘든 대상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자다.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는 그들을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정신적 세뇌와 육체적 린치를 가하는 것은 몹쓸 짓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이야기는 비정상적인 복지센터에서부터 시작된다. 버려진 사람들을 수용하여 그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이 복지시설의 정상개념이지만 이곳은 그렇지가 않다. 겉에서 볼 때는 그들의 쉼터이며 안식처로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그것이 아니다. 약물과 폭력으로써 사람들을 조종하고 길들이는 악덕 복지사들, 정신과 치료가 시급한 시설의 원장 아래에서 그들은 점점 목석인간이 되어간다.
복지시설의 비인간적인 대우가 외부에 알려지고 원장과 주먹 복지사들 외 관계자 몇 명은 감옥에 수감된다. 시설을 나온 이들은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데, ‘나’와 시봉이 밥벌이를 위해 시작한 사업(?)이 바로 사과를 대신해 주는 일이다.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가 ‘사과를 대신 해 줄테니 수수료를 내라’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 이웃 사람들을 관찰하며 크고 작은 사과거리를 지적해 주고 없는 죄는 만들어서 사과하게끔 하는데 나중에는 시연의 동거남이 나서서 광고까지 내고 찾아온 손님의 사과를 대신해 준다. 이는 시설 안에서 복지사들의 강제 억압으로 만들어진 행동인데 그들은 지금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시설로 들어와 몇 년을 함께 보낸 서술자 ‘나’와 시봉, 술과 웃음을 팔아 하루를 연명하는 시봉의 동생 시연, 열 여섯 살 차이 유부남이며 도박에 절어 한 탕을 꿈꾸는 전형적인 사기꾼인 시연의 기둥서방 등 작품속의 이런 인물들을 우리는 하류인생이라고 부른다. 왜 저렇게 살까, 질펀한 하류인생의 삶이 펼쳐지는데 이상한 것은 읽으면서도 그들을 향해 욕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상행동을 보는 이웃들 입으로 ‘미친놈들’을 시도때도 없이 듣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작가의 글솜씨에 있는 것 같다.
작가의 능력이 십분 발휘된 소설, 말끔하고 빛이 난다. 아마츄어 독자의 눈으로 봐도 흠잡을 곳이 없는 문체의 흐름이다. 막힘없는 이야기 전개 속에 살아남은 이들 앞날에 야유가 아닌 동정과 연민을 갖게 한다. 욕을 먹어야 마땅한 인물들인데도 그들의 엉뚱한 언행에 싫지 않은 웃음이 나오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그것은 작가의 능력! 참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