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옷을 입는다고 토끼가 될까!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
전아리 지음 / 포럼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대 초반의 남자가 있다. 회사에서는 정리해고를 당했고 아내는 남자와 별거를 작심하고 이삿짐을 싣고 떠난다.  혼자다.  혼자의 자유가 싫지 않다.  정리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집안이 편안하다.  냉장고에 얼려있던 음식도 바닥이 난다.  어느 날 길목 쓰레기 더미에서 토끼옷을 발견한다.  왕방울만한 눈이 달려 있는 토끼 모자와 엉덩이 부분에 꼬리가 붙은 토끼바지, 남자는 그 토끼옷을 주워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부터 남자는 토끼다. 토끼의 삶을 살기로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그 토끼 의상을 하고 다닌다.

  주인공 남자의 이야기다.  소심하고 소극적이던 그에게 발견된 토끼의상은 그를 다른 삶 즉 토끼로 살아야지 하는 계기가 된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다닐만 하다.  토끼옷은 없어서는 안 될 자신의 보물 1호가 된다.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현재 삶이 대부분 무미건조하다.  일상의 반복이다.  숨통을 열 탈출구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다른 성격으로 살아 봤으면 좋겠다.  곰옷도 좋고 호랑이옷도 좋다.  자신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파격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을 이상적인 성격으로 확 바꾸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가!

 주인공 남자도 토끼옷을 입고 활보하지만 껍데기만 토끼일 뿐이다.  그것도 모자와 꼬리달린 바지만 있는. 호랑이옷을 입는다고 호랑이가 될 수 없고 곰옷을 입는다고 해서 곰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본연의 자신은 쉽게 바꿀 수가 없다.  그러니 결국은 자신으로 돌아올 수 밖에.  자신으로 살면서 조금씩 매일 깨고 다듬을 수 밖에!  그렇게 해서 새롭게 성숙하고 발전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  자신의 현재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회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이만 먹고 사는 막걸리집 할아버지도 있다. 텔레비전에서 취재도 나와 기인으로 소개되니 사람들은 호기심에 할아버지 막걸리집을 찾는다. 술안주의 맛은? 형편없다.  그래도 매상이 오르는 이유는? 사람들의 호기심! 삼 시 세 때를 오이만으로 연명한다니 기이하지 않은가. 술과 안주를 먹으러 오기보다는 진기명기, 할아버지를 구경하러 오는 것인데, 어느 깊은 밤 막걸리집을 찾은 주인공 토끼의상 남자에게 라면 끓여 먹는 것을 들키고 만다.  “이 세상은 연출을 잘 하는 놈이 성공하는 것여.” 남자는 할아버지의 말에 공감하며 눈감아 주기로 하는데, 결국 오잇물을 토하며 죽어가는 할아버지 이야기.

  오세리라는 젊은 여자,  포르노 잡지의 야설 작가.  20대 초반의 자수성가 억척녀 박정은, 시골에서 상경하여 보험 설계사로 그 나이 또래에 비해 경제적 기틀을 일찍 다져놓은 야무진 여자, 미혼모가 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고 아이 아빠를 기다리며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찌보면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사람들 같지만 사실 생뚱맞은 사람들은 아니다. 조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색안경 속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겉으로는 비상식적이고 기괴해 보여도 속은 여리고 상처받은 사람들. 그래서 그들에게 더욱 연민이 느껴진다.  거기에 작가의 유머러스하고 명랑한 문체가 어우러져 재미난 한 권의 소설이 된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토끼옷을 입는다고 토끼가 될까!
    from 꽃방글의 서재 2009-09-22 14:38 
      30대 초반의 남자가 있다. 회사에서는 정리해고를 당했고 아내는 남자와 별거를 작심하고 이삿짐을 싣고 떠난다.  혼자다.  혼자의 자유가 싫지 않다.  정리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집안이 편안하다.  냉장고에 얼려있던 음식도 바닥이 난다.  어느 날 길목 쓰레기 더미에서 토끼옷을 발견한다.  왕방울만한 눈이 달려 있는 토끼 모자와 엉덩이 부분에 꼬리가 붙은 토끼바지, 남자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