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체 어떤 심장을 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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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평점 :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심장을 가졌을까! 아무래도 내 것과는 근본이 다를 것만 같다. 체 게바라! 그와 관련된 서적에 사람들이 열광할 때 나는 발 벗고 달려 들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읽어보리!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그에 대한 ‘열정’은 아니더라도 은근한 관심은 있었기에 이 책을 받아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이사람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책을 읽기 전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세계사를 꽤고 있는 사회선생님한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신속하리라. 체 게바라가 활동하던 시기의 사회적 시대적인 배경은? 아르헨티나 사람인 그가 왜 쿠바 혁명을 일으켰으며? 왜 이 나라 저 나라 원정까지 가서 게릴라전을?
사회선생님은 자신도 체 게바라에 빠져 산 적이 있단다. 묻지 않은 그의 가정사까지 열을 올린다. 음, 이제 어느 정도 맥이 잡힌다. 좋다! 그럼 이제 읽어 볼까나!
총칼이 난무한 게릴라전 속에서 시라니, 하지만 그가 시도 연애도 모르는 오직 혁명을 위한 혁명가이기만 했다면 그의 매력이 덜 했을 것 같다. 1967년 총살 당시 그의 배낭 안에서 발견된 두 권의 비망록은 이미 책으로 출간되었고 나머지 한권 -녹색노트-의 사연이 최근 40여 년 만에 밝혀져 이렇게 내 손 안에 멋진 책으로 쥐어져 있다. 필사한 69편의 저자와 제목들, 체 게바라가 좋아했던 네 명의 시인.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 그들의 시들을 한 권의 노트에 필사하여 넣고 다녔던 것인데, 이 책의 글쓴이는 아프리카 시절과 쿠바시절 그리고 볼리비아 시절로 나누어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시절에 필사한 니콜라스 기옌의 시를 읽을 때는 이 독자도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훌륭한 교수에게서 중남미 시문학 강의를 듣고 그 시들에 흠뻑 빠져 든 느낌?! 한 편의 시속에 체 게바라의 심경과 상황이 환하게 드러나 있어서 그를 이해하는 데 훨씬 수월하다. 체 게바라의 전기와 시와의 조화! 짧은 한 덩이 속에 방대한 시대상황을 함축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시만의 매력이 아닐까.
알고 지내는 동생이 말하기를 “언니, 저 이 사람 너무 좋아요.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보셨어요?” 한다. 아, 그게 또 무슨 영화란 말인가. 인터넷 뒤져 보니 2004년에 개봉작이다. 그 때 난 뭐 하고 있었을까. 왜 이 영화를 놓쳤을까. 무진장 바빴나보다. 꼭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결국 DVD를 신청한다. 이 사람의 책을 읽은 후에 이 사람을 영화화한 DVD를 기다리면서 설렌다. 이 사람, 양파 속 같다. 더 알고 싶다.
180분짜리 원작을 110분으로 편집해 놓으니 뚝뚝 끊기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 영화의 핵심만큼은 뚜렷하다. 젊은 날의 이 여행은 오늘 날 그를 있게 한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여행은, 이렇게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행하면서 사람들의 가난과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눈 앞에서 보고 분노도 한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분노를 하다가 말겠지! 돌아와서 의대졸업을 하고 의사가 되어 안락한 가정을 꾸려 가겠지! 그러나 체의 가슴에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활화산같은 것이 끓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의 자리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보다는 불평등과 피눈물속에서 신음하는 민중을 위하여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다시 이 책을 든다. 아무래도 한참 빠져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왕 내친 김에 그의 자서전도 주문한다.
‘지구상에 제국주의가 있고 그 아래 신음하는 민중들이 있는 한, 체 게바라는 살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체와 같은 혁명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회가 진정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한다.’
나도 두 손을 번쩍 들어 온 마음을 다해 이 말에 무게를 싣는다. 식민지 제국주의하에 인종차별하에 신음하는 민중이 없어지는 그 날을 위하여! 체 게바라는 우리의 가슴에 기리고 그를 원하는 핍박받는 민중은 더 이상 없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