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법치주의 탐구 태학역사지남 5
정긍식 지음 / 태학사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훌륭한 조선법학사 입문서 및 후학들을 위한 길잡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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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그들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정치과정에서 해결하지 않고 고소·고발로 사법부에 넘겨버리는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하다. 정치란 타협과 조정의 과정과 결과라고볼 때, 이를 스스로 방기하는 것은 그들의 존재이유와 그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모순이다. 반면에 조선의 경우 ‘사법의 정치화‘가 보인다. 대표적인 것은 예송논쟁인데,
그 핵심은 경전의 서자의 의미다. 초기에는 이에 대한 해석이 중심이었지만, 상소 등으로 법적 논쟁이 정치투쟁으로 확대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국왕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최종결정을 내렸으며, 마침내 환국으로 정치적으로 귀결되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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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통령과 과거 조선의 국왕, 누가 더 큰 권한을 누렸을까? 누가 더 적은 책임을 졌을까? 제도로 규정된 권력은 그만큼의 권력만 행사할 수 있지만, 책임도 그 범위 내에서만 질 뿐이다. 또 명문의 제한규정이 없는 영역에서는 권한을 견제할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이는 정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법의 정치에 대한 우위가 역전되는 상황이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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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법치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이며, 이의 실현을 위해 국가권력을 제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한 법의 우위성이 필수‘이다. 수많은법치주의의 요소들이 동시에 구비된 제도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우며, 결국 사회의 발전단계와 정치력의 동향에 따라 최적화의 방식으로 실현된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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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최종적인 견제는
‘역사‘이다. 조선시대에는 역사기록을 철저히 하였다. 그 산물이「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은 국왕의 사후에 관련 자료인 사초를 모아 편집하여 작성한다. 그리고 실록의 편찬이 끝나면사초는 세초(洗草)하여 그 원형을 알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역사기록은 국왕은 물론, 후대의 왕도 직접 볼 수 없었다. 만약실록을 열람할 경우가 있으면 관리를 시켜 해당부분을 초록하도록 하였다. 역사기록은 제도적이지는 않지만, 가장 강력하고 최종적인 왕권에 대한 견제였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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