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아케치 씨가 이쪽으로 몸을 돌려 달려오려는 차에 밑에서 뻗어 나온 손이 아케치 씨의 발목을 잡았다.
위험하다고 소리칠 틈도 없었다. 야윈 여자 좀비가 무정하게도 장딴지를 물었다.
"아앗."
훤칠한 몸이 비틀거리다가 뒤로 넘어갔다. 그 순간 눈이 마주치자 아케치 씨가 입을 움직였다.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는군.

얼떨떨해하는 것 같다고 할까,웃음과 울상이 섞인 것 같다고 할까,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이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 표정을 마지막으로 아케치 씨는 고작 몇 미터 아래 지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굴러떨어져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 P144

이것은 하늘의 계시다.
되살아난 시체들의 등장도 그렇고, 벼락치듯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도 그렇고, 운명을 조종하는 누군가-신 혹은 악마-가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한동안은 경찰도 여기에 접근할 수 없다.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다.
실행에 옮기라는 뜻이다. 널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놓았다며.
무대가 있다. 수단이 있다. 증오하는 상대가 있다. 그리고각오는 이미 다졌다. 뭘 망설이겠는가. 이날을 위해 이를 갈아왔다.가자. 놈은 방에 있다. 어둡게 타오르는 기쁨을 가슴에 품고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 P173

세상에는 구제불능 쓰레기가 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인간으로서 걸어야 할 길을 너무나 쉽게 벗어나는 짐승이. 놈도 그중 하나다. 그 몹쓸 남자들과 동류다.
그래서 저질렀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목적은 달성했다.
다만 그녀에게는 미안하다.
그녀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주히 애쓰는 줄 알면서 나는 태연히 거짓말을 하려고 하니까.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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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특별한 존재이길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무수히 자신이 얼마나 별 볼일 없고 뻔한 존재인지 자각하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시험에 붙고 떨어지고 하는 문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속물 근성, 이기심, 뻔뻔함, 냉정함.
남들 안 보는 데서 저지르는 실수들……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드는 자신의 민낯은 언제나 내 뒤를 쫓아온다. 외면해도 소용없다.
그런 주제에 자꾸만 잊어버린다. 욕심이 앞선다. 우쭐해한다. 이미 과분할 만큼 실제 능력 이상의 좋은 결과를 운좋게얻은 주제에 별 노력 없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낼 것 같은 과대망상에 빠질 때가 많다. 보고 들은 건 많아서 눈높이는 하늘 끝까지 가 있으니 문제다. 그러다가 조금만 벽에 부딪혀도,조금만 안 좋은 뒷말을 들어도 마음이 상한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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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은빛 무늬 든
하늘의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과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_W.B. 예이츠, 「하늘의 융단」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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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안전망은 원치 않는 관계들로 인한 억압에서 나를 지키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개인주의자니 뭐니 해도 어차피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끊임없이 군기, 서열,뒷담화, 질투, 무리 짓기와 정치질, 인정투쟁에 시달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렸다.
나는 소인국 릴리퍼트에 표류한 걸리버다(거인국이어도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저 많은 소인들이 뭐라뭐라 지지배배 짹짹거리며 자기들끼리 나를 놓고 찧고 까불고 있다. 그들은 내가 신경쓰이고 불편하고 굴복시키고 싶고 그런 모양인데, 그건 어차피 그들 문제일 뿐 내 문제는 아니다. 난 어차피 여기속하지 않으니까. 이들은 이들끼리 왕이니 대장이니 내가 보기엔 소꿉놀이 같은 구분 짓기를 하며 그들만의 소인국에서경쟁하고 싸우게 내버려두자. 어차피 내가 속하지도 않은 남의 나라에서 이들에게 인정받으면 뭐할 거고, 미움을 받으면 또 어떻겠나. 하물며 ‘소인국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고 용을쓴다는 건 또 무슨 짓이겠나.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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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판단력이 없어서 결혼을 하고, 인내력이 없어서 이혼을 하며, 기억력이 없어서 재혼을 한다는 말이 있다.  - P10

 이 책만큼은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내 즐거움을 위해 쓴다. 언제나 내게 책이란 즐거운 놀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심심해서 재미로읽었고, 재미없으면 망설이지 않고 덮어버렸다. 의미든 지적 성장이든 그것은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부산물에 불과했다. - P10

결국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세상 모든 것에는 배울 점이 있다. ‘성공‘ ‘입시‘ ‘지적으로 보이기‘ 등등 온갖 실용적 목적을 내세우며 ‘엄선한 양서‘ 읽기를 강요하는 건
‘읽기‘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 P14

그게 금이든 사금파리든,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책을 읽었든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는것이 없으면 최소한 현재로서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 P14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두 가지다. 어떤책이든 자기가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혼자만 읽지 말고 용기 내어 ‘책수다‘를 신나게 떨어야 더 많은 이들도 함께 읽게 된다는 것.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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