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 P188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둠이 바로 사랑이다. - P210

미리 말하지만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특별사유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다 통용되는 앞서의 세 가지 사랑 메모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사랑을 가려냈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 P218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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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P127

나는몹시궁금했다.그가 나영규이든 김장우이든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이든 간에, 이 사람과 결혼하고야 말겠어. 라는 결심은언제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지금 결혼하여 살고 있는 다른 많은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 P164

진모의 행동을 꾸짖는 천사의 얼굴은 엄격했다. 그건 옳은 말이었다. 졸개들과 더불어 연적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갈겨대는 짓따위는 해서는 안 될 일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나라면 주리처럼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P173

"너 이런 말 알아? 결혼은 여자에겐 이십 년 징역이고, 남자에겐 평생 집행유예 같은 것이래.할 수 있으면 형량을 좀 가볍게 해야 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열심히 계산해서 가능한 한 견디기 쉬운 징역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 P175

마침내 입을 열던 주리가 너희 아버진, 하고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내 눈길을 피해 얼른 다음 말을 이었다.
"가족을 책임지지 않았어. 그건 옳지 못한 거야. 어떤 이유로도합리화될 수 없어. 그렇지 않다면 평생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가는수많은 아버지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니? 그런 아버지들이 잘못 살은 거야? 그런 거야? 잘못된 것은 언제라도 잘못된 거야. 왜거기에 자꾸 설명이 필요한지 나는 모르겠다." - P178

그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내 이종사촌들에 대해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나와 그들 사이에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것을. 그러나 그 많은 시간들이 우리들 사이의 소통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절실하게깨달았던 것이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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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의 얼굴은 거의 납빛이 되었다. 이마에는 푸른 힘줄이 툭 불거져 있었다. 여유를 가장하기 위해 팔짱을 꼈지만 손은 힘껏주먹을 쥐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다가 그녀는 돌연 하, 하고 숨을 터뜨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단 한 번도 여유를 놓지 않았던 로희마저 당황할 정도로 혜은은 허리를 젖혀 가며 크게 웃었다. 너무 웃어 배가 아프다는 듯 배를 움켜쥐며 한손으로는 눈가를 훔쳤다.
"정말 대단해. 어떻게 열한 살짜리보다 머리를 못 쓸 수 있을까.
김명준은? 나 에이즈인 거 말했을 때 명준 씨 얼굴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오거든."
"왜 그랬어?"
"그 자리는 원래 김명준이 갔어야 할 자리였으니까."
혜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정원을 향해 돌아서며 팔짱을 꼈다. 그녀의 몸이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정면으로 맞받자 오히려 암흑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402

혜은의 인생은 불쌍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했다. 혜은은 말했었다. 세상은 꼭 잘못한 사람에게만 불행을 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로희는 여유 있게 웃었다.
"가르쳐주지 않을 거예요."
동시에 문이 부서지고, 상윤과 형사들이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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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맞서면서 살 수는 없어, 지연아. 그냥 피하면 돼. 그게지혜로운 거야."
"난 다 피했어, 엄마. 그래서 이렇게 됐잖아. 내가 무슨 기분인지도모르게 됐어. 눈물은 줄줄 흐르는데 가슴은 텅 비어서 아무 느낌도없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피하는 게 너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말이야."
"날 때리는데 가만히 맞고 있는 게 날 보호하는 거야?"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끝내면 되는 거야."
"내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어."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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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주제도 한둘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어쩌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2002)에서 - P288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그게 화수였다. 균형 감각이 좋았다. 온화하면서 단호한 성격, 과거를 돌아보되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되 틀어져도 유연한 태도, 살면서 만나는 누구와도 알맞은 거리감을 유지하는 판단력, 일과 삶에 에너지를 배분하는 감각......이를테면 요새 유행하는 명상 앱의 차분한 목소리를 닮았던 것이다. 현재에 건강히 집중하는 모습이. 그런 화수가 넘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넘어져도 바로 일어설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떤 미친놈의 태클에 이렇게 오래 엎드려 있을 줄은 몰랐다. - P300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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