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은의 얼굴은 거의 납빛이 되었다. 이마에는 푸른 힘줄이 툭 불거져 있었다. 여유를 가장하기 위해 팔짱을 꼈지만 손은 힘껏주먹을 쥐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다가 그녀는 돌연 하, 하고 숨을 터뜨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단 한 번도 여유를 놓지 않았던 로희마저 당황할 정도로 혜은은 허리를 젖혀 가며 크게 웃었다. 너무 웃어 배가 아프다는 듯 배를 움켜쥐며 한손으로는 눈가를 훔쳤다.
"정말 대단해. 어떻게 열한 살짜리보다 머리를 못 쓸 수 있을까.
김명준은? 나 에이즈인 거 말했을 때 명준 씨 얼굴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오거든."
"왜 그랬어?"
"그 자리는 원래 김명준이 갔어야 할 자리였으니까."
혜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정원을 향해 돌아서며 팔짱을 꼈다. 그녀의 몸이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정면으로 맞받자 오히려 암흑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402

혜은의 인생은 불쌍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했다. 혜은은 말했었다. 세상은 꼭 잘못한 사람에게만 불행을 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로희는 여유 있게 웃었다.
"가르쳐주지 않을 거예요."
동시에 문이 부서지고, 상윤과 형사들이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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