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까? - 윤상원 vs 전두환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9
이계형 지음, 남기영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주년입니다.

5.18에 대한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아서..

가슴아프기만 합니다.

늘 가정의 달 5월이었는데,

5월 18일 하면 가슴아픈 날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우리도 이렇게 가슴아픈데..

희생자 가족분들, 또 직접 겪으신 분들께서는

정말 상상이상의 고통 속에서 사셨을 것 같아서

정말 마음 아픕니다.

자음과모음의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이렇게 5.18 민주화운동으로 첫 만남을 갖게 되네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왜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까?>의

등장인물은

원고 측 대표 윤상원과 그의 변호사인 명석한,

그리고 원고측 증인인 정승화, 박남선, 이희성 등이

원고측 증인으로 등장합니다.

 

피고측의 등장인물은,

역시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죠.

전두환, 그리고 그의 변호사 모호한,

피고측 증인으로는 정호용, 최세창 최웅 입니다.

 

 

"광주 시민들은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길 바랐을 뿐입니다!"

프로롤그의 배경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수백 명의 희생자들의 연합회 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의 영혼 재판이 열리기로

하는 것입니다.

당시, 시민군을 이끌고 도청에서 최후까지

맞서다 희생된 윤상원이 회장이며,

윤상원이 염라대왕에게 긴글을 써서

윤상원과 정승화가 저승사자와 함께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이승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에요.

 

5.18 민주화 운동 영혼 재판이 열립니다.

판사는 피고가 정군을 잡기 위해 벌였던 일부터

차근차근 밟아보고자 합니다.

'서울의 봄'과 '12.12사태'에 대해서

변론을 듣기로 합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죽어서

더이상의 독재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빗대어 이름을 붙인거예요.

피곤인 전두환은 12.12일 갑자기

상관인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체포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군산반란을 일으키기 위한

전제로 여겨지는 것인거죠.

그리고 피고는 언론을 통제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1980년 5월 초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가 등장했구요.

피고는 5월 17일 밤 10시 40분경

국무회의에서 계엄령 확대가 통과되자마자

공포 하기 전에 영장없이

김대중, 김종필 등 26명을 연행하고,

김영상은 가택 연금 시킵니다.

김대중을 연행하면 광주 시민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

이것이 바로 광주의 비극의 시작이 된것입니다.

 

왜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가 과격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공수 부대를 투입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에 피고측 변호사인 모호한 변호사는

광주지역의 학생 시위는 다른 지역과 달리 거세고

지속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000 여 명의 경찰이 저지하기에 역부족이라서

오죽했으면 전라남도 지역 31시단 병력까지

동원했겠냐고 하지요.

이에, 명석한 변호사는

경찰과 충돌은 없었다고 반박합니다.

오히려 경찰은 학생들의 평화 시위를 보장하고,

교통정리를 해주는 등 협조했다고 해요.

저승에서 올라온 윤상원이 증인으로 나와서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해줍니다.

먼저, 윤상원은 '폭동, 광주사태'

'5.18민주화 운동'으로 바뀌고 당시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것에

감격스럽다고 전합니다.

윤상원은 5월 16일 시위를 해산하면서

휴교령이나 비상조치가 내려지면

전남대 정문에서 집결하자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공수 수대원들이 학생들에게 돌진 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에 모호한 변호사는

휴교령에 학교에 들어간 학생들 잘못이라며,

공수 부대원들은 학생과 시민을 보호하려고 한

행동히라고 합니다.

 

시위는 극에 달합니다. 선량한 시민들은

무참히 죽어가고 있었던 거예요.

국민을 보호해야할 군인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게

된 것입니다.

아이도, 학생도, 여자도..무자비하게

겨눈 총에...살아날 수가 있었을까요...

 

모호한 변호사는 시위대는 폭도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시위대에 공수 부대원들이

위협을 느꼈다고 주장합니다.

모호한 변호사의 변호를 읽고 있자니..

읽는 나도 울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이렇게까지 해서 전두환을 변호하고 싶은건지..

정말 민주주의 시민이 맞는건지...

역사공화국 속 법정의 이야기이지만...

읽으면서도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광주를 고립시키고, 광주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면서까지

피고가 얻는 것은 국민들은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인식하게 했고, 피고는 이들을 물리친 위인으로

포장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고, 그러면서 그의 모든 죄악으

감춰져 버렸고, 진실은 묻히고 만 것이죠.

 

특별히 올해는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 입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까?>를 읽었던지라

5월 18일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영상 자료들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마침, 유튜브에서 5.18 광주항쟁 40주년 기념

온라인문화제를 했어요.

1980년 5월 18일 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지금의 촛불이 있게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까?>를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던 우리 12살 소년.

특히나 읽기 전에, 12살의 눈으로는

5.18 민주화운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TV에서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속 피고의

모습도 보았던 적이 있어서...

현존하는 인물의 과거를 알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잔인하고, 무섭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대통령이 되어야했냐며....

왜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시민들을 죽여야 했는지..

1980년도면, 불과 40년전의 일인데,

40년전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게

믿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른으로서 부끄럽지 않냐고

묻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까?>를 읽고난 소감을

짧게 적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적은 것을 그대로 옮겨 볼게요.

"5.18의 대해 읽고나서 저는 전두환이 이런 행동들을

하였구나, 광주 시민들은 어떻게 싸웠고, 왜 싸웠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라 참으로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또, 시대적 배경과 어떠한 시위가 얼마동안 이어졌는지와

더불어 신군부가 어떤 행동을 했고, 누가 동참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두환과 5.18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기 원합니다."

라고 12살 아이가 적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이

밝혀지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두환 할아버지! 더이상의 유행어 만들지 마시고,

어른으로서, 존경받는 어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면,

정말..더 늦기전에 꼭.. 진실을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