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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이응준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이응준'을 소개 해준 것은 내 친구였다. 녀석은 그가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난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난 그의 소설을 샀다. 그리고 읽고 또 읽었다. 그의 소설에 줄을 쳤고 외웠다. 나란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사주기도 했다. 그 만큼 그가 쓰는 언어 그가 하는 이야기는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문체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한마디로 '문체'이다. 다른 것보다도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에 열광하는 것이 단지 무체라면, 난 신경숙이나 김승옥에도 열광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승옥과 신경숙은 좋아하기는 하지만, 열광 정도는 아니었다.즉,이응준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확실히 뭔가가 다르다.
이 사람이 '달 뒤편으로 떠나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의 후기에서 이렇게 써 놓았다. 내 글을 읽기 위해 필요한 사전 지식이나 교양 따위는 애초부터 없다. 그냥 당신이 스스로를 외롭다고 느끼면 그것으로 족하다. 사는 게 무지무지 행복하다고 여기는 당신이 있다면, 제발 덮어두고 돌아가 그 삶을 더 즐기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사는 게 정녕 슬프고 지루하다 여기는 당신이 어떤 구원 내지는 해답을 바라고 이 소설들을 읽고자 한다면, 난 그에게도 어쨌거나 비슷한 말을 해줄 수밖에 없다. 나는 당신들에게 한 줄 잠언조차 들려줄 수 없을 뿐더러, 그런 꿈의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에서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다 읽고 난 내 독자들이 누군가에게 다가가, 지금 외로워 몹시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어봐줄 수 있었음 하는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응준에 열광했던 것은 아마도 나와 내 친구가 진정 서로 외로웠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그 것으로 내가 열광하는 이유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의 글쓰기가 갖지 못한 '서정성'을 그가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다. 무언가 부족한 것들은 무언가 남는 것들에게 끌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니까.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그의 이러한 미덕이 가장 잘 드러났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단편집인 것 같다. 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는 그의 이러한 서정적인 문체가 싫다고 말했으며, 실지로, 그의 새로운 소설에서는 이러한 서정성을 버렸다고 한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라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