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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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근대사들과, 625, 일제시대의 독립운동,...

시대의 아픔이 한 둘이 아니겠지만

녹두장군은 더 마음이 아프다.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는

아낌없이 그의 소원대로 백성을 위해서 죽었다.

내가 배운 역사는 구한말 개화파들이 개혁을 주장했지만 

수구파의 권력과 사리사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내용이었지만 

개화파는 소설의 대원군이 그들을 부른 일본당 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도올의 주장대로 동학혁명은 

프랑스 시민혁명처럼 백성이 근간이 되는 혁명으로 

평등사회를 만들고 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사건이기에 역사적 아쉬움이 사무친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기득권과 신분제를 탈피하지 못한 개혁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유림의 노인들이 농민군을 꾸짖으며 

하늘이 제각기 사람을 정하여 내리거늘 

노비의 몸에는 노비의 피가 흐르고 

사대부의 몸에는 사대부의 피가 흐른다는 말에

지금 이 시대에 책을 읽는 나조차도 뭉클한 것이 올라오는데 

그들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미드중에서 "뿌리" 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냥해서 노예로 부리고 짐승으로 생각한다는 것에 

그 야만성에 문화적 쇼크를 받았고 

그 이후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그리고 서양 백인에 대해 다르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좀더 머리가 자라고 나니 

우리나라는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이웃 사람끼리 

노비로 소유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부끄러운 역사를 우리 스스로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이 동학혁명 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자주 들리는 것이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주변 부자 아파트 아이들 부모가 같이 놀지 못하게 하며

신분을 따진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친일파도 있지만

신분제를 상상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들이 존재하는 한 아직도 우린 구한말을 연장하고 살고 있다.

 

전봉준의 고뇌와 인간사를 볼 수 있는 잘 구성된 소설이다.

역사적 아쉬움을 물씬 느끼며 그의 체포와 압송으로 소설은 끝난다.

 

일본이 무력으로 궁궐을 장악하려 할 때 

궁궐수비대의 저항을 고종이 그만두라는 어명을 내렸다.

무장해제를 당하는 그들은 가지고 있던 총을 부수고 군복을 찢으며 

이것은 나라가 아니라고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라 없는 나라의 백성의 아픔이 느껴진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보위만 생각하고 백성은 뒷전일 때 나라 없는 나라가 된다.

지금도 그렇지 않는가? 나라 없는 나라는 그런 식으로 아직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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