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열두가지 얼굴 – 당신의 행복을 위한 돈의 인문학류상철, 박종호, 정태관한길사표지와 제목을 봤을 때 당신의 첫 느낌은 어땠을까? 직관적이지만 매력적이지는 않은 제목. 땡기지 않는 제목이란 생각을 난 했다. 내가 이런 말을 먼저하고마는 이유는 페이지를 열자마다 반전 매력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아쉬운 부분역시 제목이었다. “호모머니페이스”나 “호모머니데우스”는 안되나, 이 책은 국내에만 머물기엔 좀 아깝다. 이런 욕심 '하인'마인든가 싶지만 이 책을 읽고 생긴 애정이라고 정리해 본다.서평을 쓰다보면 이런게 재미있다. 아는 거라곤 출판사정도가 익숙해서랄까. 경제학관련 학자의 책인가 큰 기대없이 열었다. 정말 경제에 무지한 나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한 배경, 저자의 위치가 호기심을 키워나갔다. 돈이라면 눈이 짓무르도록 봐왔을 은행근무 36년의 경력자인 저자가 정년퇴직을 하면서 남긴 질문이 “그래서, 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자신에게 던진 이 물음이 어디로 향할지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6년이 지나고서도 남는 혹은 그제야 남은 이 질문을 이 정년의 저자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말이다. 거기에 더 흥미로운 것은 그와 함께 독서모임 트레비스의 회원들이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조합이 주는 흥미로움은 이 책 전반에 거쳐 녹아들어 있다. 돈의 또 다른 고찰과 예시에 대해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하나씩 주워가자면 『헨델과 그레텔』의 조약돌을 줍는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역사, 영화, 고전 등에 이르기까지 독서의 다층적 눈높이를 다시한번 실감하기도 했다. 그는 뻐기지 않고 꾸며대지 않으며 천천히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렇게 적절할까. 내 눈높이 ‘끌어올려~~~’ 저자가 열어놓은 창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도 정말 아이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저자의 어깨에 무등을 타고 보는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운 경제서적보다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나의 청소년기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주었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읽어보라 권했다. 또다른 세상을 열어 보여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눈부신 흰 바탕에 초록의 반짝임이 더해진 귀엽고 작은 책이다. 설렘을 표현한다면 이런 분위기일까. 뒷표지의 초록색 부채 역시 체호프 시대의 사랑을 담아낸 듯하다. 체호프의 단편 네 편이 묶인 이 책은 읽는 내내 내게 조용한 질문을 던졌다.처음 읽을 때는 그 질문이 뭔지 몰랐다. 그저 나와는 먼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네 편의 사랑 이야기를 다 읽었을 때도, 난 그들 곁에 온전히 서 있었던 것 같지 않다. 그저 시대 배경이 달라서 생긴 거리감일까 싶었는데, 책장을 덮으며 비로소 알았다. 아, 우리 시대와는 전혀 다른 사랑의 유형이라서 그랬구나, 하고.직설적이고 즉각적인 사랑이 익숙한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체호프의 사랑은 답답하고 막막하다. 체호프 시대의 사랑이 '부채'라면, 지금 우리의 사랑은 '에어컨'이고 '서큘레이터'이지 않나. 사람들은 가끔 얇고 작은 책들을 우스워하기도 한다. '벽돌책 읽기'처럼 두껍고 무거운 책을 읽는 것만이 지성의 무게인 양 생각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이 얇고 작은 책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인공적인 바람에 익숙해져 자연 바람을 잊고 살던 내게, 이 작은 책은 묵직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1984』를 다시 읽었다. 블랙으로 블러처리된 “1984”는 빛에 따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독서를 또다른 출판사로 접할수 있다는건 다른 결의 설레임을 준다. 이미 좋은 걸 아는 책의 경우 더 그렇다. 고전을 다시 출판하는데 있어서의 편집자의 고뇌를 내가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풍날의 ‘보물찾기’ 같은 기대랄까. 내가 읽었던 다른 출판사의 버전들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는데 펭귄의 귤색 1984는 술술 읽히는 편안함이 있었다. 내용을 알고 있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1984를 처음 읽는 누군가라면 펭귄출판사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몇 년 전 읽었을 때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재독의 즐거움을 느낀 기회였다. AI와 AGI의 발전이 상업화되면서 조지오웰이 고발하던 사회상은 변이를 거듭하며 개인을 가두고 있는게 아닐까. 빅브라더, 골드스타인, 오브라이언의 변형을 뛰어넘는 다른 색과 질감의 빅브라더를 생각게 했다. 윈스턴의 눈물의 의미, 각자의 101호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속도도 머무는 시간의 무게도 달랐다. 밖에서 안으로, 세계에서 개인으로 수렴되는 책읽기의 향유는 읽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읽지 않은 이들에게 1984의 줄거리나 주제의식은 툭하고 나올만큼 익숙할 수 있다. 그 주제의식이 냉전시대에 머물기만 했던 카테고리에서 이 시간과 미래로 가져와도 좋을 것 같다. AI발전과 윤리적 딜레마에서 고민하며 읽는 비문학과도 함께 읽을 만한 병행도서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이 책은 시작과 함께 독자의 머릿속에 거대한 파놉티콘을 건축하면서 시작한다. 독자는 그 파놉티콘의 수감자로서 서 있다. 이렇게 참여자로 만들어버리는 부분이 책을 읽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저자의 질문을 함께 따라가고 그 답을 같이 만든다. 저자는 원형 감옥 파놉티콘을 통해 구현한 감시의 메커니즘을 빅데이터-인공지능에 녹아든 감시문화와 프라이버시 침해, 역감시의 가능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된 효율중심의 설계가 20세기 이후 정보수집과 간접감시로 진화했는지 따라 가다보면 한 개인의 삶이 산업의 발전양상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아왔는지를 조망하게 된다. 읽다보면 아날로그로 살아야하나란 생각도 없지 않아 든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국내 굴지의 기업들에서 개인정보유출이 있었다. 사고일 때도 있고 팔릴 때도 있었다. 반복되다보니 처음엔 신선한 정보였을 우리의 정보들이 지금쯤은 ‘공공재’가 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유출에 대한 책임보다는 유출이후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로 그 기업마인드를 판단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떻게 감시를 받아들였는가, 쓸데없다고 생각한 자질구레한 자투리 정보들이 어떻게 마케팅으로 수집되었는가. 데이터저항에 힘쓰고 그 권력에 STOP을 외친 누군가 덕분에 내 데이터들이 보호되고 있었구나 싶기도 했다. 생물학적으로 잘 살고 잘 죽어가는데 포인트를 맞추는 요즘, 디지털프라이버시도 내가 잘 쓰고 잘 거두어야 할 부분이라는 또 다른 숙제와 관심포인트를 남긴다. 비문학 특히 과학이야기는 원문이어야 나와 같은 문외한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재미있게 잘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쓴 서평입니다>“117년 노포서점의 유튜브&브랜딩 생존기”라는 부제는 나중에야 발견했다. 주제목은 사랑받기 위한 개인의 노력, “사장님”의 노력인가란 인상을 주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읽다가 다시 표지를 보고나서야 상대적으로 작은 부제를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아날로그를 간직한 117년의 노포서점이 어떤 식으로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서는지를 보여준다. 옛정서를 가진 일본의 노포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사랑과 관심을 위한 노력의 형태가 어떤 식일지 궁금했으나 내가 예상한대로의 노력은 아니었다. 치밀하면서도 냉정한 진단과 개선의 솔루션이 들어가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사랑받기는 곤란한 상태인가 싶기도 했다. 사랑받기 위한 기술자문을 충실히 수행하는 하야시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나라도 한때 열광했던 ‘벤치마킹’에 대한 적극적 도입과 적절한 대입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벤치마킹보다는 좀더 신선한 아이디어를 더 찾으려는데 집중해 있다는 생각도 했다. 결국 기술기획자문으로서의 하야시의 리더쉽는 큰 성공을 거둔다. 독립서점 정도의 규모의 노포가 사랑받는 것을 생각한 나에게 하야시가 컨설팅한 유린도, 유세카의 성공은 갭차이가 컸지만 어떤 목표를 두고 냉정하게 이끄는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고 생각게 한 부분이 있었다. 채널 마스코트 ‘붓코로’의 컬러풀한 그림이 더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