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유명한 시대를 관통하는 책이 아닌가. 특히 이번 개정판은 앞으로 더 큰 사랑을 받게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사실 오역 이슈 등으로 인해 선뜻 손이 가지 않아 '그림의 떡'처럼 바라만 보던 차였다. 이토록 깊은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개정번역판을 세상에 내놓아준 김선욱 교수님과 한길사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이 책은 소장 욕구와 독서욕을 동시에 자극한다. 종이의 질감, 여백의 구성, 활자의 크기까지—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미학적으로 담겨 있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기분이 고양된다. 내용의 무게와는 별개로, 책이라는 사물이 주는 즐거움 덕분에 이 묵직한 텍스트를 더욱 '맛있게' 소화하고 싶어진다.1940년 수용소를 탈출했던 한나 아렌트가 2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예루살렘 재판장으로 향했을 때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다시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유대인의 참상을 기억하는 이스라엘의 '또 다른 얼굴'을 목도하고 있다.이런 시점에 이 책을 다시 펼치는 것은 잔인한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만약 20년 전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과 같은 감각을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렌트가 집요하게 추적했던 '악의 평범성'에서, 나는 이제 시대를 타고 흐르는 '악의 유동성'을 느낀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기위해 긴 길을 타고 갔던 아렌트의 얼음같은 불꽃이 지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금 이 책을 다시 읽고 사유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차이를 지우는" 폭력 때문이다. 과거의 폭력이 지금 다른 형태와 칼날로 자행되는데 우리의 "사유"가 필요한 때이고 과거의 아렌트와 조우하고 그 조우를 돕는 학자들의 손길과 출판되기까지 연결된 흐름이 우리가 끊임없이 "사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 몇일전 딸아이가 보내준 봄의 대곡선이라는 - 별자리와도 같았다. 아렌트의 시선과 글의 흐름이 가진 건조함이 읽는동안 삼켜진 서글픔으로 자국을 남겼다. 이 냉정함이 지금 현재까지도 효용한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잃는것이 많다. 자기비판을 넘어서지 못하는 자들이 여전히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음에 아렌트의 시각과 뼈를 때리는 각도는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 "사유의 무능에 기인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 악의 평범성은 '평범한 사람 누구나일상적으로'라는 식의 범위나 빈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없이 살아가는 태도가 일상화된 상태를 표현한다. 그 모습이 너무 뻔해서 진부해 보일 정도의 상태 말이다. 이는 "당신도 상황만 주어지면 악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독립적으로 사유할 수 있고, 비판적 시각으로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살펴볼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렌트가 전제한 생각이다. (역자서문 중)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기위해 움직인 그녀의 행동에 담겨진 울분과 냉정이 우리의 현재를 비춘다. 나는 사유하고 있는가. 나는 올바로 사유하고 있는가. 나는.나는.나는...
12명의 작가들이 뽑아낸 12편의 이야기, 앤솔로지. 차례에 앞선 "사랑"에 대한 풀이를 마주했으므로 나는 설명된 바와같은 "몽글몽글"함을 표집하려고 작정하고 책장을 연게 아닌가 싶다. 이 작품집은 달달함을 기대한 아줌마를 무색케한 만화경과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사랑에 대해 늘 같은 설레임을 생각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집을 열어보는 것이 좋겠다.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루 한편의 작품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단편이 주는 속도감이 하루를 가득 채울 것이다. 내가 생각해온 사랑이 무엇이든간에... 앤솔로지에 대해 약간의 편견이 있던 나에게 새로운 각도로 앵글을 잡아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적인 형태로의 사랑을 알고 있던 나에게 "사랑"은 어디에나 어느 형태로나 있다는 것을 새로이 환기시켜주기도 했다.
젊은이의 뜻이란 무엇일까우리시대 젊은이들의 뜻은 그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젊은이는 나이가 들어도 그가 젊은날 품었던 푸른 뜻은 나이들지 않는다."살아있는 자가 감당해야 할 몫은 무엇인가"이봉창과 윤봉길을 앞서 보낸 김구는 한평생 부끄러웠다고 한다. 임시정부의 어머니라 불리던 정정화여사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미생여사, 곽낙원여사,등 낯익은 이름들이 풍경처럼 지나간다. 그들이 겪어낸 시절의 풍랑을 숨쉬는 듯 자기것으로 만들면서 한발한발 나아간다. 그들과 더불어 실패에도 좌절하지않고 밝은 눈으로 세상흐름을 배우는 청년들. 타향에서 고향에서 풀뿌리처럼 일어나 바람에 맞서는 민중들이 자란다. 임정의 출발과성장을 발목잡는 이들, 밀정들, 이승만에 대한 불신, 개조파와 창조파로 나뉜 국민대표회의 분열, 이데올로기와 열강의 개입으로 나뉘는 땅, 이승만을 앞세운 우익정렬. 반민특위의 횡포, 민중에 비해 그들의 힘은 거세다. 악은 왜이리 독한걸까. 이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후안무치하다.이 책의 두께가 두꺼운 이유를 읽으면서 알게된다. 한국사에서 몇줄로 요약되던 수십년간의 사건들을 켜켜이 담고 일렁여야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꿈꾸던 세상을 우리가 정확히 살고 있다고는 못하겠다. 다만 지금의 젊은이도 과거의 젊은이들도 한발한발 나아가고있다. 계엄아래에서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의 과거 젊은이들이 피로 가르쳤기에 이들은 서로의 피가 아니라 서로의 빛으로 밝혀 상처를 남기지않는 역사를 남기고자 걷는중이다. 더디고 주저앉히려는 힘이 거센중에도 자존을 걸고 나아가는 중이다. 우리 문화의 힘을 널리 떨치고자했던 백범선생의 꿈을 우리는 현실로 보고 있다. 누구를 누르기위해서가 아니라 앞서기위해서가 아니라 말이다.
2004년 출판된 책이 한국에서는 2026년에 이르러서여 출판되었다. 늦었다고 하기엔 이 책에 담긴 2700년의 흑해 역사를 생각하자면 미미하다. 이제 한국에 상륙했으니 이후의 독자들은 흑해를 읽을 수 있다. 황금양털을 찾으러 모험을 떠날때의 바다가 흑해였던 것 같다. 메데이아가 불쌍했던 기억, 영웅이라는 이아손이 왜 영웅인지 의문이 남은.저자의 시각과 시점이 무엇일까가 가장 먼저 궁금했다. 낯선 이름으로 불려지는 "흑해"의 다른 이름들을 목차에서 확인하고보니 그 시간적 배경의 역사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도록 네비게이션을 켠듯했다.흑해를 둘러싼 시기마다의 지도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왜 완전한 시간흐름으로서의 나열이 아니었을까, 불편함을 느끼려다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지금의 독자에게 인식된 지금의 흑해를 상정한것이 먼저였던것 같다. 그래야 2700년 역사 속으로 독자를 끌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어둡고 침울했다가도 환대하는 바다, "냉전의 이분법"에 가려진 현대의 흑해를 오래전 잊혀진 "풍부한 지역정체성"으로의 회복, "장벽보다는 다리역할을 더 자주"해온 "젊은 이름"으로의 흑해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흑해를 구성하는 해류와 심해을 다 담아내기에 이 책은 부족함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시선을 환기하기에는 충분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시대 모험을 떠나기 위한 동쪽 끝, 이아손의 아르고호가 흑해 곳곳에 현재로 남아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오르한파묵의 먼산의 기억을 보다 이 시집의 한부분과 닮은 부분을 발견했다. 수많은 장단의 괄호들의 나열. 빈 괄호 안에서 침묵 중인 단어가 주는 공간을, 방울방울 수직으로 흐르다가 수평의 강물 혹은 바다가 되는 어느때는 수직으로 서기도 하는.시를 읽을때 불완결함을 좋아하는 나는 시들이 남기는 잔상을 오래 들여다보는걸 좋아한다.시는 '나'의 이야기가 깊어지고 고이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김선오라는 미지인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시인 김선오는 꿈과 몸을 자기가 할수있는 말로 괄호들을 채운다. 개인서사에 민속학, 인류학, 신화를 더하고 젠더의 속박을 던지고 풀어 詩로 흐르도록 둔다. 시집이라고만 묶이기는 아까운 변주에 즐겁고 설레였음을 고백한다. 젠더를 향한 여정이 강렬한 소비로 휘발되는게 아닌가 싶은 요즘,시인의 물아, 그의 세계에 들어서거든 휘감겨 오는 새로운 질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이분법적 성으로서 늙어가는 내게 참 빛나는 이야기들이다. 김선오의 시집은 햇살을 품고 흐르는 강물 같았다. 흐르는 강물에 햇살이 빛나는 면면을 누구도 쥐어줄수 없듯 흐르는 강물앞에 앉아 그저 윤슬을 보듯, 그렇게 눈부시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