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 또한 사유이자 진리의 생산이다.

오늘날 서로 손을 굳게 맞잡은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오로지 다수결로만 나아가는 견해들의 잔치에 불과한 길, 그리하여 실재적 해방을 위한 결심의 과정 또는 진리의 과정이 전무한 길

모든 특수주의와 추상적인 일반성을 거부하고 진정한 보편성을 위해 싸운 사건의 주체, 바로 이것이 바디우가 오늘날 새로운 투사의 전형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바울이다.

모든 특수주의와 추상적인 일반성을 거부하고 진정한 보편성을 위해 싸운 사건의 주체, 바로 이것이 바디우가 오늘날 새로운 투사의 전형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바울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진리에 충실한 사건의 주체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영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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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가 보기에 가장 엄밀한 철학 중 하나인 후설의 현상학도 이처럼 음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라마톨로지의 문제 설정의 필요성이 입증된다.

데리다가 유령론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재독해하는 것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는 생생한 현실과 가상, 물질과 이데올로기(곧 유령)를 집요하게 대립시키는 마르크스 사상에 함축된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기 위함이다. 이는 기호적 매개와 독립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 초기 작업의 연속이다.

둘째, 이러한 대립은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 혁명의 동력을 이루는 것이 대중의 해방의 열망, 곧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유령론은 초기 저작에서 수행되었던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 작업을 계승하며 확장하는 문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디우는 철학, 진리, 주체의 종말을 선고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에 대항하여 철학의 가능성, 보편적 진리, 진리에 충실한 주체를 구해 내고자 한다.

바디우는 현대의 의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진리에 기초한 혁명적 정치의 가능성을 선언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존재와 사건』이 순수 존재론이라면, 『세계의 논리』는 진리의 출현 논리를 담은 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디우에 따르면, 예술은 진리를 생산하는 네 가지 절차 중 하나이고, 따라서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철학을 존립게 하는, 철학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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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완성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게."
이런 경우에 미야는 반드시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기는 이렇게 되고, 여기는 이렇게 돼"라고 참견을 한다.

작품의 품격을 정하는 미술을 예로 들면, 미야는 항상 복잡한 건물을 설계하고, 그 건물 안에서 캐릭터를 왔다 갔다 하게 함으로써 재미있는 장면을 만든다.

애니메이터가 캐릭터의 연기를 그릴 때, 가장 힘든 것은 일상의 평범한 동작이다.

영화는 기획도 중요하고 제작도 중요하며 홍보도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배급이다. 만들고, 팔고, 보여준다. 이 단계가 하나로 이어지지 않으면 히트작은 태어나지 않는다.

훌륭한 경영자는 사내의 정보 수집에 빈틈이 없다. 즉, 사내의 도처에 스파이를 심어두고 모든 정보를 수시로 받아보는 것이다.

지브리에는 일명 ‘어항’이라고 부르는 투명한 유리방이 있는데, 그곳에 둘이 틀어박혀 여덟 시간 정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브리의 경우, 작화의 생산 속도는 아무리 기를 써도 한 달에 5분이 고작이다.

미야의 독서는 대부분 그런 식이다. 작가가 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자기 안에서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서 그 안을 즐겁게 돌아다닌다. 그 때문에 미야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책의 제목에는 ‘정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많다. 책 속에 있는 정원을 자기 나름대로 설계하는 것을 즐긴다고나 할까?

그림 콘티를 그리기 전에 우연히 미야와 같이 전철을 탔을 때, 앞쪽에서 중학생 소녀 대여섯 명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초수를 쟀다. 그것을 근거로 그 장면을 설계한 것이다.

"미야 씨, 이노우에 씨의 그림을 따라서 그릴 바에야 차라리 본인에게 그리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미야에게는 그런 발상이 없었는지, 처음에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수가 적고 속마음을 잘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가슴 안쪽에서는 뜨거운 덩어리가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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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를 거쳐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는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에크리튀르, 곧 문자 기록을 폄하하고 음성이나 말을 중시하는 태도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어 왔다는 점이다.

데리다는 이처럼 진리 내지 로고스와의 관계에서 배제되고 억압된 문자 기록이 사실은 로고스 자체를 성립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임을 보여 주려 한다.

해체의 일반 전략은 단순히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위계 구조 자체의 탈구축을 시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엄밀한 의미의 탈구축이란, 가령 문자 기록을 음성에 대해 우월한 것으로 확립하거나 서양의 알파벳 같은 표음 문자에 대해 표의 문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 요컨대 ‘음성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기록 중심주의’의 주창을 뜻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언어는 일종의 문자 기록이라는 점이다. 곧 문자 기록은 언어 그 자체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어떠한 매체든 간에 생생한 현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으며, 모든 매체는 항상 재–현적이고 매개적인 지위를 갖는다.

더 나아가 ‘생생한 현존’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생생한 현존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차이들의 체계의 산물이며, 그러한 체계를 통해 성립하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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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건축 전시회 ‘김수근, 사이를 잇는 사람의 가치’ 전시회의 일환으로 출판된 책. 출생부터 타계까지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였다. 부여박물관 등 몇몇 이슈의 관련된 아티클과 공간지에 투고된 김수근 본인의 아티클도 수록되어 있다. 김수근을 회고하고 그의 작품의 변화를 훑어보기 좋다. 덤으로 표지 디자인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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