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떤 한 종의 어느 구조 부분이 다른 종의 이익을 위해서만 형성되었음이 증명된다면, 내 이론은 완전히 박살날 것이다. 그러한 일은 자연 선택을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은 오로지 그 개체의 이익에 의해서만, 또 이익을 위해서만 작용하므로 절대로 그 개체에게 해로운 것은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다.

자연 선택은 동일한 지역에서 서식하면서 서로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할 다른 개체들만큼 혹은 그보다 조금 더 각각의 개체들을 완전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나의 이론에서 유형의 통일성은 유래의 동일성으로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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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백Frédéric Back17이라는 캐나다의 애니메이션 감독을 지브리 미술관에서 스튜디오까지 모실 때 여기저기를 보여주면서 돌아다녔다. 그랬더니 그도 "도쿄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습니까!"라며 좋아했다.

미야가 얼굴을 내밀면 모두 마음 편하게 작업할 수 없다. 미야가 원하는 것은 상대방 안에서 장점을 찾아내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분신’일 뿐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긴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덕분에 좋은 영화를 만들 수도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투자가 정해졌다고 해서 곧바로 닛폰 TV의 전원이 협조해주는 건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각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와 연출가에게 굿즈를 나눠주면서 인사하러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쿠타와 같이 굿즈를 들고 닛폰 TV 안을 돌아다녔다.
‘아하! 홍보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군.’
홍보가 얼마나 힘든지 절실하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 제작에 전념하고 싶은데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홍보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 다음에는 미리 계획을 짜서 확실하게 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미야는 성실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자신이 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내딛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타입이다. 반면에 다카하타는 하루 종일 빈둥거려도 행복하게만 살면 된다는 사람으로, 그 연장선에서 영화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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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을 로고스를 생생하게 구현해 주는 본래적인 매체로 특권화하고 대신 문자나 기록 일반은 이러한 음성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도구로 간주하는 이론에서는 어디서든 로고스 중심주의와 음성 중심주의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초기 저작에서 서양의 로고스 중심주의를 해체하면서 문자 기록을 복권하고 텍스트의 복잡성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데리다 사상은 처음부터 기술에 대한 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자 기록은 음성이라는 자연적 매체를 통한 현존의 생생한 전유가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꿈이라는 것을 보여 주며, 차연(差延)은 시간과 공간의 질서가 항상 이미 지연과 차이화의 작용 결과라는 점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의 기술론은 구성적 기술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자연적 시공간 자체가 항상 이미 기술에 의해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기술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인가? 여기에서 데리다의 ‘탈전유(exappropriation)’라는 신조어가 중요해진다.

기술을 원칙적으로 거부하고 무소유를 주장하는 비전유(exppropriation)와 기술의 도구적 효용만을 중시하는 전유(appropriation) 사이에서 유한한 전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이다.

데리다는 자기 면역 개념을 이중적인 의미로 탈구축한다. 이는 먼저 외부(이슬람 세력 같은)의 침입에 맞서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민주주의를 지연시키려는 서양 민주주의의 경향을 가리킨다.

이러한 끊임없는 자기비판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폐쇄적인 일자로 고착되지 않고 무한정한 개선을 이룩할 수 있다.

국내 독자들의 불운은, 세 권의 책 가운데 한글로 읽을 만한 책은 『목소리와 현상』 정도라는 점이다.

세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국역본으로는 독서가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며, 『글쓰기와 차이』의 경우 그보다는 조금 낫지만, 그래도 이 번역본으로는 데리다의 논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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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은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 인식이란 없으며 오직 각각의 시대마다 새로운 인식이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두 번의 단절로 이루어지는 세 개의 시기는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이나 푸코의 궁극적 주장은 이 두 번의 단절에 이어지는 세 번째 단절, 곧 네 번째 시기가 와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역사적 공헌은 그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록 시리즈에서 개진하고 있는 통치성의 관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버마스 사상의 핵심을 찾는다면, 그것은 이성적 대화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합리적 대화를 통한 해방과 화해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왔고, 이러한 근본 직관에 의거하여 자신의 사회 이론은 물론 민주주의 이론 또한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철학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는 주체와 주체 사이의 의사소통에 주목하여 근대 의식 철학이 전제해 온 고립된 주체와 그로부터 귀결되는 이성의 도구화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니체를 탈근대의 전환점으로 규정하면서, 하이데거와 데리다로 대변되는 형이상학 비판의 흐름과 바타유와 푸코로 대변되는 권력 비판의 흐름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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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냐시오 성당-구리로 만든 입구 문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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