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을 로고스를 생생하게 구현해 주는 본래적인 매체로 특권화하고 대신 문자나 기록 일반은 이러한 음성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도구로 간주하는 이론에서는 어디서든 로고스 중심주의와 음성 중심주의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초기 저작에서 서양의 로고스 중심주의를 해체하면서 문자 기록을 복권하고 텍스트의 복잡성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데리다 사상은 처음부터 기술에 대한 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자 기록은 음성이라는 자연적 매체를 통한 현존의 생생한 전유가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꿈이라는 것을 보여 주며, 차연(差延)은 시간과 공간의 질서가 항상 이미 지연과 차이화의 작용 결과라는 점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의 기술론은 구성적 기술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자연적 시공간 자체가 항상 이미 기술에 의해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기술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인가? 여기에서 데리다의 ‘탈전유(exappropriation)’라는 신조어가 중요해진다.

기술을 원칙적으로 거부하고 무소유를 주장하는 비전유(exppropriation)와 기술의 도구적 효용만을 중시하는 전유(appropriation) 사이에서 유한한 전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이다.

데리다는 자기 면역 개념을 이중적인 의미로 탈구축한다. 이는 먼저 외부(이슬람 세력 같은)의 침입에 맞서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민주주의를 지연시키려는 서양 민주주의의 경향을 가리킨다.

이러한 끊임없는 자기비판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폐쇄적인 일자로 고착되지 않고 무한정한 개선을 이룩할 수 있다.

국내 독자들의 불운은, 세 권의 책 가운데 한글로 읽을 만한 책은 『목소리와 현상』 정도라는 점이다.

세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국역본으로는 독서가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며, 『글쓰기와 차이』의 경우 그보다는 조금 낫지만, 그래도 이 번역본으로는 데리다의 논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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