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인들은 굉장히 많은 물건을 소유한다. 하지만 가장 필수적인 것 같은 침대나 의자, 식기 같은 기본적인 물건들조차 보통의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굉장히 최근에야 이루어진 일이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기 전, 물건은 장인들의 수공업에 의존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굉장한 가치와 의미를 지녔다. 귀한 물건은 소중히 여겨졌고,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물건은 흔해졌고, 유행에 따라 한 철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되어 버렸다. 대를 걸쳐 쓰는 명품이라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백들 조차도 잇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2-3년 남짓 사랑 받다 장농에 처박히기 일쑤다.

이런 세상에서 작가 윤광준은 오래오래 곁에 두고 쓸만한 생활명품을 소개한다. 그가 소개하는 101개의 물건들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본질과 기능에 충실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바람같은 유행에도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자리를 지킨다.

작가가 소개하는 생활명품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낭만적이지만, 기능적으로 디지털화된 물건보다 불편하거나 대체 가능성이 높은 물건일 확률이 높다. 핸드폰 카메라로 대체되는 라이카 카메라, 핸드폰의 계산기로 대체 가능한 브라운사의 계산기, 자동 와인 오프너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누구나 손쉽게 작동할 수 있지만, 작가는 디지털이 가지고 있는 기능 만능주의를 경계한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기능과 생각은 과학을 발전 시키고, 인류의 부를 늘렸지만, 행복감을 상승시키는데는 실패했다.

유현준 교수는 늘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가난한 자는 온라인에 머무르고 부자들은 오프라인의 세상으로 나온다고 얘기한다. 인생의 참 즐거움은 오감의 만족을 경험하는 데서 나온다.

디지털은 과정이 축약된 반면 아날로그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 한다. 아날로그는 오감을 이용하는 과정에 충실하다. 그런 감각하는 과정의 매 순간들이 모여서 인생을 이룬다.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은 경험의 양이 월등히 많다. 이는 그의 인생이 풍부해짐을 의미한다.

생활명품이라는 제목처럼 작가가 소개하는 물건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부피가 크지 않은 생활용품이 주를 이룬다. 명품이라고 하지만 굉장한 고가의 물건도 아니다. 하지만 사용하는 이로 하여금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P327 간편하다 해서 모든 걸 대치할 수는 없다. 현재의 관점과 기준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일은 위험하다. 여전히 간직하고 싶은 가치와 깊이가 있다. 첨단의 기술이 밀어내지 못하는 건 사람의 마음과 습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