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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아름다워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7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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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부터 한국인에게 압도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는 동시대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지만, 20년 전만해도 오랜 시간동안 한국인이 제일 사랑한 외국 작가는 헤르만 헤세였다. 유럽에서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많은 작가인데,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있어서 의외라는 유럽의 반응에 나야말로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나 역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데미안 은 청소년들의 제1의 필독서였는데, #데미안 을 재밌게 읽은 많은 독자들은 스스로 찾아서 헤세의 다른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나 역시 #유리알유희 #나르치스와골드문트 #수레바퀴아래서 #싯다르타 를 읽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헤세의 소설은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깨지기 쉬운 예쁜 유리알 같았다.
그 때로부터 20년도 더 지나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소설이라는 장르를 즐기지 않게 되었다. 나는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 20여년 동안 내 감정을 거세시키는 노력에 유독 힘을 기울였고, 감수성과 감정을 증폭시키는 소설을 특히 멀리했다. 그런 와중에 헤세의 신작 #청춘은아름다워 을 만났다. 어린 시절에 또래의 주인공들에게 공감하며 가졌던 그 마음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제목인 #청춘은아름다워 는 이 책에 속한 단편소설 중 하나의 제목으로, 헤세의 전매 특허인 - 사랑의 열병을 앓는 청춘을 그린 단편 소설 중 하나다. 이 책에 수록된
#대리석공장 #라틴어학교학생 #회오리바람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부모와 학교로부터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생의 제2막에 나아가기 직전 짧은 휴가중에 있다. 즉 사회의 때가 묻기 전, 순수함을 간직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헤세 뿐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경외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그 시간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배경은 봄과 여름이다. 소설 속 자연 - 스치는 바람, 코 끝에 닿는 향기, 내리쬐는 햇살, 머리 위의 구름, 밤에 들이는 벌레들의 울음소리, 발 끝에 닿는 풀 한 포기까지 모두 다정하고 싱그럽다. 이렇게 헤세의 소설은 청춘의 싱그러운 냄새가 난다. 여름의 한가운데 주인공들의 고뇌와 사랑의 열병은 절정을 맞지만, 그 여름은 끈적하고 불쾌하며 열대야를 유발하는 여름이 아니다. 덥기도 하지만 많이 따뜻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주인공들의 심란한 마음과 요동치는 감정을 나타내듯 한 낮에 소나기가 내리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더워지고, 더위가 아닌 사랑의 열병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진 여름이다. 돌아갈 수도 없고, 심지어 기억조차 나지 않아 슬프지만 헤세를 통해 그 시절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이제는 그 시절이 훌쩍 지나버렸기 때문일까? 헤세의 작품이라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스타일이 달랐던 중편소설 #클라인과바그너 를 읽는 중에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뒤쫓는 구성이 난해했지만, 심적으로는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한대로 이뤄지며 나의 결정이 옳음에 의심하지 않고 자신만만하던 그 시절은 지나고 후회만 남은 클라인은 자기 비난과 연민 속에서 고통스럽게 분열한다. 중년은 지나온 나의 결정과 인생을 책임지고 평가받는 시간이다. 찬란한 연두빛과 따뜻한 햇살, 싱그러운 물방울로 그려지는 헤세의 젊음과 유독 더 비교되서 처참하고 슬프다.
P162 나는 나의 모든 은밀한 뿌리와 함께 나 자신이 몽땅 뿌리 뽑혀 사정없이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 아래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지금의 나와 나의 어린 시절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벌어졌다. … 그런 직후 나는 한 사람의 성인이 되기 위해, 또 인생을 이겨 내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나갔다. 돌이켜 보면 이런 상황에서 인생 최초의 그늘이 내 곁을 가볍게 스쳐 지나간 것이다.